퇴직 후
지역 신문 기사에서 우연히 익숙한 단어에 눈이 멈췄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지역 위원 공개 모집’
ㅇㅇ시 교육청에서 내건 공모였다. 위원회는 총 30명으로 구성되고, 그중 지역 위원 21명은 기초지자체별로 1~3명을 추첨해 선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실 문을 닫은 뒤 찾아온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며 새로운 글감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나조차 내 마음을 정확히 짚을 수는 없었지만, 신청서를 냈다.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후,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지역 위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워크숍과 위촉장 수여식 일정을 알려주고, 혹시 위원장직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위촉식 날, 참석자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예전에 기초지자체 의원으로 활동했던 친구다. 그 친구를 통해 현재 총 동문회장을 맡고 있다는 선배를 소개받았다. 뜻밖의 인연이 이어지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행사는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한 강의로 시작되었고, 위원장을 선출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사회자가 위원장을 희망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하자, 먼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참석자가 손을 들었다. 곧이어 4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도 나섰다. 그리고 담당자가 전화로 물어볼 때 아니라고 했던 나는 어디로 가고, 내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동문을 만나 든든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내 안 어디쯤 숨어 있던 ‘나서기 유전자’가 깨어난 걸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불쑥 올라왔다. 내 뒤로 한 사람이 더 손을 들어, 총 네 명이 위원장직에 도전하게 되었다.
손을 든 순서대로 앞으로 나가 2~3분간 발언을 했다. 첫 번째 젊은이는 자신이 AI 전문가라고 소개하며, 주민참여예산제도에 AI 기술을 접목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두 번째 후보는 주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위원회 운영을 강조했다. 나는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시작되던 시절, 기초지자체 예산팀장으로 제도 도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후보는 위원회 활동이 두 번째라며 자신의 경험을 부각했다.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내가 최고 득표를 했다.
제도 시행 초창기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일부 인사들이 마치 선출된 공직자인 것처럼 착각해 의회 의원처럼 행동하거나, 다수의 주민들이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공무원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이렇듯 제도 시행단계에서 취지와 달리 요식행위에 그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려 한다. 낯선 자리에서 익숙한 일을 하려고 다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