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4월의 첫 화요일 오전 10시경 처음으로 ㅇㅇ군청 6층 브리핑 룸에 발을 들였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준비한 비타민 음료수 두 상자가 작은 위안을 주었다. 지난주 홍보부서 담당자를 만났을 때는 오지 않았으니, 첫 방문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면엔 키보다 높은 칸막이가 서 있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정수기와 캐비닛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 벽면에는 군청의 주간 행사 계획이 정리된 게시판이 붙어 있다.
서너 걸음 옮겨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니 방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가운데엔 회의용 탁자가 놓여 있는데, 중앙일간지 2부와 지역 일간지 20여 종이 보였고, 정면 커다란 창이 햇살을 넉넉히 들이고 있다. 양쪽 벽면엔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나뉜 책상이 왼쪽엔 여섯 개, 오른쪽엔 여덟 개 줄지어 있다. 창과 가까운 왼쪽 끝에는 응접세트와 벽걸이 TV가 있고, 출입문과 가까운 오른쪽 끝엔 팩스기와 복사기가 놓여 있다. 바로 그 옆에는 처음 들어오며 마주쳤던, 눈을 가리는 듯한 높은 칸막이가 있다.
한 사람이 왼쪽 두 번째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명함을 교환했다. 그는 A라는 기자였는데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서로 나이와 고향, 경력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는 나보다 두 살 위였고, 20여 년 전 잠시 기자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사업을 했는데, 지금의 신문사에 들어온 지는 1년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내게 "빈 책상 아무 데나 쓰면 된다"라고 알려주며, 신병을 대하는 선임병처럼 내가 낯선 공간에 적응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잠시 뒤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B와 C, 30대 중후반 D가 차례로 들어와 각기 자신의 자리인 듯 보이는 오른쪽열 책상 앞에 앉았다가 잠시 후 각자 방을 나갔다. 그렇게 이곳의 터줏대감들과 인사를 나눴다. A는 나와 둘만 남았을 때, 브리핑 룸에는 소수의 언론사 기자로 구성된 출입기자단이 있고 기자단에는 간사가 있는데, 자신은 출입기자단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가능하면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누구라고 지칭하진 않았지만,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무성의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일로 며칠 자리를 비운 후 둘째 주 월요일, 다시 브리핑 룸을 찾았다. 이번엔 혼자서 응접 의자에 앉아 무언가 적고 있는 E가 보였다. 내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자, 그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내 명함을 받아 탁자 위에 툭 내려놓고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중요한 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붙이는 게 조심스러워, 며칠 전 A가 앉았던 자리 오른쪽 옆 빈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잠시 후 E가 하던 일을 마친 후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명함 있으면 하나 달라고 하니, 나를 쓱 쳐다본 후 지갑에서 꺼내 내게 주고 나서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응접탁자에 내려놓았던 내 명함을 집어 들었다. A 그리고 B가 차례로 들어왔고, D는 잠깐 들어왔다가 곧바로 나갔다. E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간다 온다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A, B와 함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B는 군청을 40년 넘게 출입하고 있는데, 군 전체가 섬 지역이라 지역 10개 지자체 중 가장 취재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군 관내에 일곱 개 면이 있는데 모두가 어업 중심은 아니고 농업이 주요 산업인 곳도 있다면서, 지역 특성을 잘 살펴서 활동하면 좋을 것이라고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A는 "우리는 이 군청 이외에도 여러 출입처가 있지만, 당신은 여기 한 곳만 담당하니 홍보 담당 직원과 함께 섬을 두루 돌아보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브리핑 룸으로 돌아와 커피 한 잔 나눈 뒤, A는 AI 교육을 받으러 간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나도 남아있던 B에게 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섰다.
이틀째 되는 초보 기자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주간 행사 계획표를 확인하고, 신문을 살펴보고, 몇몇 기자들과 얼굴을 익히고 식사를 함께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천천히, 길게 보고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은 언제나 어색하고 더디지만, 그 속에서도 방향을 찾고, 관계를 만들고,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걸 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