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26. 2022

스무 살 큰아들의 포옹

"거, 참 꼴 보기 싫네!"


이 상스러운 표현(?) 말고는 최근 스무 살 큰아들 녀석에 대한 내 마음을 더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은 없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나름 뜻한 바 있어 고3 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전단지 알바해서 용돈도 좀 벌다가 취직까지 해서 인턴을 이제 갓 떼고, 정식 직원이 된 스무 살 큰아들.


대견하기도 하고, 스스로도 성인이라고 해서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그 태도는 정말 높이 사고 싶으나...


여친이 생긴 이후로 얼굴 보기는 일주일에 채 몇 번 되지도 않고, 그렇게 늦게 들어와서는 방구석에 틀어 박혀 새벽 내내 전화질(?)이다.


웅성웅성 거리는 통화소리에 밤잠을 설친 것도 몇 번이나 되어 경고를 하고, 알아듣게 이야기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다. 게다가 말만 걸면 자기도 이제 성인이라고 다 안다고 하면서 톡 쏘아대고, 대화는커녕 말 섞어 본 지도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이다.


이에 아내는 특단의 조치로 스무 살 되면 독립해서 나가겠다고 큰소리쳤던 녀석에게 약속한 대로 얼론 독립해서 나가라고 닦달을 하곤 하는데, 나름 계산을 해 봤는지, 지금 현재로는 보증금이 어떻고, 대출이 어떻고 하면서 군대 갈 때까지는 집에 있게 해달라고 한다.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했고 그전에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녀석이어서 그런지, 부모가 이성 관계에 대한 조언을 그렇게 해줘도 정말 콩깍지가 씐 것처럼 정신을(?) 못 차린다. - 나도 그 나이에 그랬겠지만...

그나마 어릴 때부터 부모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유대감은 남아 있어서 간간히 여친과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해 주는 건 다행이다.


그런데, 이 녀석 며칠 전 5월 7일 주말을 이용해서 호텔 숙박 예정라고 호기롭게 가족 카톡방에 톡을 날렸다.

그 전에도 스킨십 이야기를 하면서 1박 2일이라고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말아 달라고, 걱정 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녀석이다.


그것도 어버이날이 낀 5월 7일~8일에.

리버럴 해도 너무 리버럴 하다.


순간 뭐라고 답을 달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쉬움 한 스푼을 담아 답을 달았다. 어버이날인데 알고는 있으라는 취지로 답을 달면서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 날밤...

큰아들 방에서 아내와 함께 즉석 스탠딩 3자 토론 배틀이 벌어졌다.


부모와 상의도 없이 너무 쉽게 1박 2일을 결정했고, 재수 중인 여친도 공부에 집중하게 네가 배려를 해줘야지 시간을 뺐으면 어떻게 하냐 더니, 평상시에 공부 열심히 하기 때문에 주말에 잠깐 쉬어도 된다는 둥, 그렇게 머리를 식혀 주는 게 더 효율이 좋다는 둥, 이미 자기들도 많은 대화를 통해 결정했다는 둥 한다.


아... 또 "거 참 꼴 보기 싫네!" 라는 말이 우~~욱 하고 올라온다.


결국 나는 배틀에서 먼저 빠져나오고, 둘만 2라운드로 1:1 양자토론이 벌어지는 걸 보고 안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들과의 대화로 1박 2일을 가지 않기로 했다고 카톡방에 톡이 올라왔다.


일부러 잠금화면에 뜬 걸 보고는 읽지 않았다. 점심시간 때까지 - 난 정말 뒤끝이 있다. 정말이다!

그렇게 하면 나나 아내가 그래 잘했어! 해주기를 바랐겠지만, 아무런 답이 없자, 또 나와 아내를 멘션 걸어서 톡을 날린다. 여전히 안 읽은 척했다.


점심시간 때 전화가 왔다.

기분 업된 목소리다!


아빠, 아빠, 카톡 봤어요?

어... 아니...

어제 말씀 듣고 여친하고도 상의해 봤는데요. 1박 2일 안 가기로 했습니다.

아빠,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알았다. 끊어라.


이러한 카톡을 뒤늦게 본 둘째는 '잘했음 앞으로는 가족이 먼저이길'이라는 기특한 멘트로 훈훈하게 해 준다. 이런 거 보면 둘째가 더 듬직하다.


그리고, 이틀 후... 퇴근하고 나서 술안주로 오징어 통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아들 녀석이 평소와 다르게 일찍 퇴근을 하고 왔다.


아빠, 제가 오늘부터 준비한 게 있습니다 한다.

아직 100퍼센트 마음이 풀어진 게 아니라 건성건성 퉁명스럽게 뭘 또 준비한 게 있는데 했더니, 요리하는 거 잠깐 멈추고 좀 돌아 서보라고 한다.


무슨 또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워서 하려고 하나 싶어 마지못해 돌아섰더니...

덥석 안으면서 "오늘부터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부모님을 안아 드리기로 했습니다!" 하고는 겸연쩍게 웃는다.


그리고는 거실에 앉아 있던 아내에게도 어머님 좀 일어나 보시지요 능글능글하게 이야기하고는 마지못해 일어난 아내도 덥석 안아준다.

이에 호응해서 아내는 난 참 이렇게 통통한 남자가 좋았는데, 근육질 그런 남자 말고 안았을 때 배도 좀 나오고 살도 통통하게 찐... 하면서 몇 번을 더 안아준다.


"거, 참 꼴 보기 싫네!" 라는 말은 오늘 자로 취소다!



*** 오징어 통찜에 맥주는 주석잔에...



이전 10화 싸이는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