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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May 23. 2022

싸이는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싸이(PSY) 공연을 가면, 동영상을 찍고 있는 관객들에게 항상 그런다.


- 여러분~ 누군가가 이미 찍고 있고,  

- 나중에 다 어딘가에 올라오니까...

-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하~ 명언이다. 싸이는 공연도 좋지만, 중간중간 멘트가 다 예술이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러한 싸이의 매력에 빠져 데뷔 시절부터 광팬이다.

2005 싸이 올나잇 스탠드 / 2006년 1월 1일 새해를 싸이 콘서트에서 맞이했다. / 2013 싸이 콘서트 해프닝



나는 아이 셋이 태어나는 그 순간에 모두 함께 했다. 탯줄을 모두 내가 자른 거다.


첫째는 2003년 1월, 근무가 끝나자마자 마침 아내의 진통이 있어 병원에 갔더니 몇 시간 만에 분만해서 잘랐다.

둘째는 2006년 9월, 회식에서 잔뜩 마시고 들어왔는데, 예정일보다 앞서 진통이 오는 바람에 술 덜 깬 채로 새벽에 부랴부랴 같이 가서는 잘랐다.

셋째는 2010년 6월, 예정일 맞추어서 하루 휴가 내고 기다리던 중 출산에 맞추어 잘랐다.


셋 모두 그 경이로운 순간을 담아 두기 위해 한쪽 어깨에는 캠코더, 다른 손에는 디카를 들고 분만실에 들어가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탯줄을 잘랐다.


- 아기 머리가 스윽 나와서는... 어깨가 빠지고 몸을 슬쩍 돌리면서 스르륵 다 빠져나왔다.

- 응애... 응애... 응애...

- ○분! 축하드립니다.

(탯줄을 클램프로 집어 놓고, 가위를 건네주며)

- 아버님, 자르세요~


자르고 나서는... 

좀 찍어도 될까요 물으니 그럼요 라고 해서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 후, 가끔 곤 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잊고 있었다. 노트북 하드 '중요폴더' 안에 넣어 두고 말이다.



며칠 전, 방송 프로그램 협조 차 동영상과 사진을 찾던 중 우연히 아이들의 출산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응애... 응애... 귀엽고 사랑스럽고 신비한 그때가 소환되었다.

귀여운 녀석들...

엊그제 같은데, 큰 아이는 19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 어라.

둘째 출산 때 동영상으로 알고 녀석 정말 귀여웠네 하고 한참 보다 보니 아니다! 막내였다!

태어나자 마자 지문표에 아기 발바닥을 찍었다. / 파일 속성


분명 내 기억에는 둘째 태어나자마자 찍은 동영상인데, 파일 속성을 보니 셋째 태어난 해인 2010년이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아기는 둘째인데...  

술 덜 깬 채로 허겁지겁 가서는 탯줄 자르고, 사진도 동영상도 찍은...

그런데, 동영상 속 지문표까지도 2010년 6월, 3.22kg까지 정확히 표시하고 있으니 실제는 막내가 맞을 거다.


기록이 그렇게 보여주니 기억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다시 사진과 동영상 파일에 따라 기억을 재정비했다. 저건 첫째, 저건 둘째, 저건 막내...

첫째 / 둘째 / 셋째 (둘째와 셋째가 닮은 것도 같다. 그래서 내 기억에 오류가 있었는지도...)


아이들과의 추억만큼은 싸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기억하지 않고 기록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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