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 과장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멀리서 걸어오는 거 봤는데요. 20대랑 똑같아요. 호호.
- 20대 때 겉늙어 보였던 게 이제야 빛을 발하나 봅니다. 홍 경위님은 여전히 소녀 감성이시네요. 하하.
그 예전 전쟁터 같았던 조사계 이야기도 하고, 요즘 들어 글쓰기 재미에 푹 빠진 이야기도 하고, 만화 잘 그리시는 홍 경위님께 브런치 데뷔도 권유드리고.
그러다가...
- 참, 사모님도 잘 지내시죠? 그때 신혼 초라 엄청 알콩달콩 많이 다투셨잖아요.
- 그러고 보니 과장님 얼굴 하나도 안 변한 게 사모님이 관리를 잘해주셔서 그런 거 같아요. 호호.
- 과장님이 결혼은 잘하신 거 같아요.
하신다.
음... 그래, 난 결혼 잘(?)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엄청 싸웠다.
28년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다가 결혼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는가.
그냥 젊은 나이에 결혼하면 다 그렇게 잘들 살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늙어가는 줄 알았는데... 아내 때문에 난 참 많이 변했다.
아니, 많이 만들어졌다고, 사람 되었다고 표현해야 맞겠다.
한창 싸울 때, 우연히 TV에서 결혼 생활 관련 교양 프로그램을 봤다.
강연자가 남편들에게 질문을 했다.
- 물에 아내와 엄마가 빠졌을 때, 한 사람밖에 구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구하시겠어요?
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속으로 답했다.
- 엄마요!!
강연자는 상당수의 초보 남편들이 그렇게 답을 한다고 했다.
내 아내를 포함한 다른 아내분들이 들으면 엄청 섭섭하고 서운하겠지만...
아내는 다시 결혼하면 생기지만, 엄마는 대체 불가이기 때문이리라.
그때까지 나는 어렸던 거고, 아직 남편이 덜 되었던 거였다.
정답은...
"아내를 먼저 구하고, 같이 힘을 합쳐서 엄마를 구한다."였다.
엄청 신박한 그 답을 듣고 한 동안 멍했다.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독설을 퍼붓는 아내를 보면서 꼭 저렇게 말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시간 지나고 보면 다 맞는 말들이 많았다.
특히나 엄마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엄마를 보고 싶어도... 우리 엄마가 원래 그래, 그거 이해 못 해? 60년 넘게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그걸 바꾸시겠어? 등등 계속 남의 편만 드는 남편이었는데, 저 답을 듣고 나서는 아... 엄마와 거리를 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의 아들이기 이전에 이제는 새로 꾸려진 집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저 물에 빠진 엄마보다는 아내를 먼저 구해야 하는 답이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거다.
저 프로그램을 본 이후로 '아내를 먼저 구하고, 힘을 합쳐 엄마를 구한다.'는 격언 같은 말이 모든 결혼 생활의 지침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