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지적 작가 시점 Jun 09. 2022

남편은 아내와 엄마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까?

아내와 엄마 사이에서 고민했던 나를 위한 결혼생활 지침

20년 전 조사계 파트너였던 여경 홍 경위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 어머, 과장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멀리서 걸어오는 거 봤는데요. 20대랑 똑같아요. 호호.

- 20대 때 겉늙어 보였던 게 이제야 빛을 발하나 봅니다. 홍 경위님은 여전히 소녀 감성이시네요. 하하.


그 예전 전쟁터 같았던 조사계 이야기도 하고, 요즘 들어 글쓰기 재미에 푹 빠진 이야기도 하고, 만화 잘 그리시는 홍 경위님께 브런치 데뷔도 권유드리고.


그러다가...

- 참, 사모님도 잘 지내시죠? 그때 신혼 초라 엄청 알콩달콩 많이 다투셨잖아요.

- 그러고 보니 과장님 얼굴 하나도 안 변한 게 사모님이 관리를 잘해주셔서 그런 거 같아요. 호호.

- 과장님이 결혼은 잘하신 거 같아요.

하신다.



음... 그래, 난 결혼 잘(?)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엄청 싸웠다.

28년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다가 결혼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는가.

그냥 젊은 나이에 결혼하면 다 그렇게 잘들 살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늙어가는 줄 알았는데... 아내 때문에 난 참 많이 변했다.

아니, 많이 만들어졌다고, 사람 되었다고 표현해야 맞겠다.


한창 싸울 때, 우연히 TV에서 결혼 생활 관련 교양 프로그램을 봤다.

강연자가 남편들에게 질문을 했다.


- 물에 아내와 엄마가 빠졌을 때, 한 사람밖에 구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구하시겠어요?


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속으로 답했다.

- 엄마요!!

강연자는 상당수의 초보 남편들이 그렇게 답을 한다고 했다.

내 아내를 포함한 다른 아내분들이 들으면 엄청 섭섭하고 서운하겠지만...


아내는 다시 결혼하면 생기지만, 엄마는 대체 불가이기 때문이리라.

그때까지 나는 어렸던 거고, 아직 남편이 덜 되었던 거였다.


정답은...

"아내를 먼저 구하고, 같이 힘을 합쳐서 엄마를 구한다."였다.


엄청 신박한 그 답을 듣고 한 동안 멍했다.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독설을 퍼붓는 아내를 보면서 꼭 저렇게 말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시간 지나고 보면 다 맞는 말들이 많았다.

특히나 엄마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엄마를 보고 싶어도... 우리 엄마가 원래 그래, 그거 이해 못 해? 60년 넘게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그걸 바꾸시겠어? 등등 계속 남의 편만 드는 남편이었는데, 저 답을 듣고 나서는 아... 엄마와 거리를 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의 아들이기 이전에 이제는 새로 꾸려진 집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저 물에 빠진 엄마보다는 아내를 먼저 구해야 하는 답이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거다.


저 프로그램을 본 이후로 '아내를 먼저 구하고, 힘을 합쳐 엄마를 구한다.'는 격언 같은 말이 모든 결혼 생활의 지침이 되고 있다.


엄마보다는 아내와 우리 집이 먼저다!


(엄마가 내가 브런치에서 글 쓰는 걸 모르는 게 다행이다.)




이전 08화 아내가 무섭지 않은 남편은 여기 남으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