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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06. 2022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2018년 8월 어느 날의 싱글파파 육아일기

시쳇말로 그 목메달(?)이라는 아들 셋!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아... 나도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쌍 천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는 '신과 함께' 시리즈.

'신과 함께 2'우리 집 길 건너 CGV에서 개봉을 해서 지난번처럼 아들 1호, 2호와 같이 가서 보려 했다.


베트남에서는 이 영화가 16세 이상 관람 가라서, 1편 때도 밤 10시쯤 가서 둘째는 어려서 안된다고 하는 걸, 여기서 한국 영화 잘 개봉하지 않지 않느냐, 손님도 별로 없는데 좀 보여달라, 한국에서는 12세 이상 관람 가다 등등... 겨우 직원한테 사정을 해서 보기도 했던 그 영화다.


어라, 그런데 이번에는 이 녀석들 반응이 영 아니다. 둘째는 아예 다음번에 친구들과 같이 보기로 했다고 안 간다고 한다.


첫째는 계속 시큰둥이다. 어제 겨우 달래서 오후에 축구 클럽 갔다가 8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도 말이다.

축구 끝나고 픽업하려는 순간, "아빠, 그냥 사우나 가서 때나 밀면 안돼?" 한다.


우리 집은 매월 마지막 주말에 사우나 가서 냉온탕욕도 하고, 세신도 하는 게 하나의 리추얼이다.
지난달에는 무슨 심보인지 안 간다고 해서 둘째, 셋째 하고만 다녀왔는데 갑자기 저런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음 주에 가야 맞는 건데, 뜬금없이 지금 가자고 하니 열불이 안 날 수가 없다.


겨우 달래서 그럼 사우나 다녀와서 22시 40분 영화를 보자고 하니, 이번에는 꼭 그걸 봐야 해? 한다.


아~ 갑자기!

"아빠~ 우리 영화 보러 가요~"


하면서 귀여운 딸내미가 팔짱을 착 끼면서 보채는 영화 속의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 딸이 있었다면, 이렇게 사정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지난번에 식사자리에서 그래도 알아들을 만한 첫째를 붙들신세 한탄하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대화 없이 내내 스마트폰만 보길래 밥 먹을 때만큼은 폰 하지 말자고 했었다.


그러자 그 녀석 왈,

나쁜 거 보는 것도 아니고, 뉴스 보고, 축구 결과 보고, 이적시장 정보 보는 건데 왜 그러냐고.


그래서 말했다.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서 각자 자기 폰 보고 있는 거라고.

사람이 서로 대화를 해야지 왜 기계에 대고 소통하고 있냐고 말이다.


그러면서 아빠가 외로워서 그렇다고. 그러니 밥 먹을 때만큼은 폰 하지 말자고.

정말 이건 아들이라도, 자존심 때문에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해 버렸다. 아내 없이 아들 셋과 있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랬더니 알아듣는 거 같더구먼... 아직 밥이 안 나왔으니 밥 오기 전까지만 한다는 둥 하면서 계속한다.


암튼 그런 일도 있었는데, 네가 별로 안 좋아해도 좀 따라가 주면 안 되냐, 나도 너희들은 좋아하는 거지만 난 안 좋아해도 따라가 주는데...

했더니 마지못해 "알았어, 알았어, 갈게, 갈게." 한다.


이쯤 되면 나도 폭발이닷!

"이 녀석아! 그런 기분에 무슨 영화를 보러 가냐? 됐다. 나 혼자 보러 갈 테니, 그렇게 알아라."


그리고, 나중에 아빠가 죽으면 수목장을 하든 납골당에 모시든지 한 후에, 아~ 그때 우리 아빠가 외로워서 혼자 영화 보러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으면 거기에 술 한병 들고 찾아와서 이제 이해가 간다고 해주라.


참, 요즘은 소주가 느껴지더라. 술은  소주 한 병들고 와라 해 놓고는 그 길로 호기롭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혼자 맛있게 쌀국수에 맥주 한 병 쭉 비우고는...


당당하게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딸과 같이 팔짱 끼고 룰루랄라 하면서 영화 보러 간다는 상상을 하고... 그렇게 그렇게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갔다.

80,000동... 한화 4천 원 상당.


그런데 젠장... 현실은 그게 아니다.


한창 영화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린다.

경찰영사는 다른 영사와 달리 24시간 사건사고 비상 전화 응대를 한다. 사무실에서는 물론이고 퇴근해서 취침할 때도 교민들이나 관광객의 긴급 전화를 받는다. 단순 정보를 안내하는 민원도 있지만 현장 출동 사안도 잦다.


겨우 겨우 응대하고, 다시 영화에 집중을 하는데 또 울린다. 이거 뭐 전화받으러 들락날락하느라 뭘 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날 지경이다.


이렇게 영화 한 편 때문에 나도 딸이 있었으면...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이전 01화 싱글파파, 아빠 육아가 힘들 때 감사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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