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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May 09. 2022

싱글파파, 아빠 육아가 힘들 때 감사일기를 썼다.

아빠 혼자 아들 셋 키우다 보니 힘든 적도 있었다.

4년 동안 아내 없이 아들 셋과 베트남 호찌민에서 산 추억이 되돌아보면,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고 흐뭇했던 기억들로만 가득하다.


물론 힘들었거나 짜증 났던 때도 있었을 텐데... 그땐 왜 그랬을까 생각도 들고, 미리 연출되었던 한 편의 시트콤이 연상되기도 한다.


출근해야 하는데, 셋 다 안 일어나서(7시 20분에 스쿨버스를 타야 했었다.) 부랴 부랴 깨워 놓고, 준비 좀 하다가 보면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서 이불 걷어 치우면서 소리도 지르고, 결국 스쿨버스 놓쳐서 Grab bike라는 쎄옴(xe ôm) 오토바이 택시 태워서 보내기도 하고...
그런 전쟁 같은 매일이 반복되었고, 중간중간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이유로 첫째와 말다툼하다가 몸싸움한 기억 모두가 그렇다.

아침 일찍 일어나 스쿨버스 기다리는 아이들. 지금 생각해 보면 피곤도 했겠다. 1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등교를 해야 하니 더더욱...


스쿨버스를 놓쳐서 등교하는 장면을 나중에는 다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고, 그 때 그 때 사진에 담아 두었다.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아침마다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나서 출근하곤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글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침에 아이가 늦게 일어나서 짜증을 내며 한창을 실랑이하다가 겨우 아이를 보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린 채로 운전을 해서 출근하는 길에 괜히 앞 차에 경음기 빵빵 울려대고, 앞지르기 막 해대고, 과속으로 달리다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

그러면 이 사고는 아이 때문인가, 본인 때문인가?


그렇다.

아이들 때문에 짜증 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짜증은 내가 내는 것이고 화를 못 이겨 내는 것도 내 자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또 며칠 아이들과의 아침을 평온하게 보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SBS 꼬꼬무 방송에 제공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저장된 파일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그 당시 썼던 감사일기 파일을 발견하면서 그때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 올랐다.

그래서 시쳇말로 적자생존(적는 자가 살아남는다?)이 중요한가 보다.


'아... 나도 정말 육아 때문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구나.'

(2016년이면 첫째는 중1, 둘째는 초등 4학년 때이다.)

2016년 9월 5일
1. 아침에 첫째와 둘째가 일찍 일어나 짜증을 내지 않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 내가 그렇게 짜증을 많이 냈어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등굣길에 차 안에서 룰렛을 돌려 달라고(무슨 게임 관련해서 매일 룰렛을 돌려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화를 해 준 첫째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3. 갑자기 아이들 학비가 몰려서 생활비 통장이 마이너스로 될 뻔했는데, 그래도 다른 여윳돈이 있어서 그렇게 되지 않아 감사합니다.
4. 리셉션 직원이 친절하게 수납을 해줘서 감사합니다.
5. 화요일 베트남 공안과 약속이 미뤄져서 내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2016년 9월 6일
1. 아침에 첫째와 둘째가 일찍 일어나 같이 아침을 먹으며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 콜럼비아 아시아 병원에 서류를 떼러 갔는데, 직원들이 친절히 응대해 주어 감사합니다.
3. 발급받은 서류를 본부에 첨부로 해서 보냈는데, 잘 받았다는 회신이 와서 감사합니다.
4. 오랜만에 XX식당에 예약을 했는데, 친절히 응대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5. 첫째와 둘째가 흔쾌히 XX식당에 간다고 해줘서 감사합니다.
6. 집 싱크대 물이 새서 걱정했는데, 푹(리셉션 직원)이 친절하게 고쳐 준다고 해서 감사합니다.
2016년 9월 13일
1. 아침에 첫째는 제 때 일어나 7시에 내려가 줘서 감사합니다.
2. 아침에 둘째가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그래도 웃으며 등교해 줘서 감사합니다.
3. 다음 달 일시 귀국 건강보험 변동 신청서 처리가 잘 되어 감사합니다.
4. 어제부터 시작한 베트남어 과외가 보람이 있어 감사합니다.
5. 그동안 밀렸던 서류 정리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지금 읽어 보면 참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 정도의 메모이지만, 그때는 매 감사일기의 첫 번째가 아이들 깨우는 일이었던 것 보면 정말 육아 스트레스가 많았나 보다.


그 당시 감사일기를 썼던 계기가 어디에선가 육아 관련 글을 봤던 듯하다. 육아가 힘들 때, 사소한 것도 좋으니 하루 다섯 가지 정도의 감사한 일을 떠올리며 감사일기를 써 보라고.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소한 하나하나가 감사했던 것 같다.


아이들 모두 해외에 나와서도 적응 잘하고 있고, 건강하고, 우애 있게 잘 지내고, 빨래도 가끔 잘하고, 아빠가 며칠간 출장 가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학교 잘 다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며칠을 감사일기를 쓰다 보니 사소하게 저녁 먹으러 식당 같이 가주는 아이들도 감사했었고, 리셉션 직원도, 병원 직원도 감사했었고... 그러면서 나 자신도 자연스럽게 생각을 긍정적으로 많이 바꿨던 것 같다.



이제 큰아들은 스무 살, 둘째는 고1, 막내는 초6이다.


아이들 모두 감사하게도 자립심 하나만큼은 강하게 커줘서 지금은 막내 조차도 아침에 안 깨워도 혼자 알아서 척척 일어나 등교하고, 학원도 알아서 시간 맞춰 버스 타고 다닐 정도이다 보니 육아 스트레스는 덜한 것 같다.

6학년 학기 초만 하더라도 담임 선생님의 문자와 전화가 아침에 아내에게 안 오면 섭섭할 정도였다.
"어머님, 오늘도 H가 등교를 안 했네요.", "어머님, 아직도 H가 접속을 안 했네요."


감사일기 덕분만은 아니었겠지만, 그 싱글파파 육아의 터널을 무탈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면에는 감사일기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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