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와 창작의 온도
나는 2년간 그린 그림을 마무리 짓고, 방전이 돼버렸다. 사실 이 프로젝트가 끝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해 이 이후의 삶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쉬었다. 그림도 그리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뭔가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기다린 셈인데 그때는 꽤 그럴듯한 계획임이 분명했다. 나름 인풋을 넣는답시고 책도 읽기는 했는데 사실 그다지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저 언제쯤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3개월, 4개월이 지나고 나니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기적처럼 영감이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누운 채로 좌절했다. 뭘 그려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걸 이제와 서야 고백한다.
지금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뜨겁게 끓어 넘치는 물과 비슷했다. 창작의 온도가 펄펄 끓어 넘쳐서 당장이라도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 뺏어갈 것처럼, 혹은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불안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어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카톡이 차례로 기다리고 있는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겐 불행하게도 보다 높은 창작의 온도가 요구되는 듯하다. 각 분야의 천재들이 며칠 밤을 꼬박 새워 만들어 놓은 달디 단 결과물들을 따뜻한 이불 밑에서 즐기는 걸 마다하고 의자에 앉게 할 만큼.
딱 그만큼의 창작의 온도가 필요하다.
그와 반대로 슬럼프가 왔다면, 창작의 온도가 미지근해졌거나 차갑게 식어버린 것을 뜻한다. 물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창작의 온도는 주로 언제 낮아지게 될까? 불을 피울 땔감이 부족하거나, 땔감이 다 타버린 경우다. 나의 경우엔 준비해둔 땔감이 모두 소진된 경우였다.
물이 불 위에 있으면 끓고, 불을 끄면 식는 게 당연하듯이 때로는 창작이라는 온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도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 물은 왜 평생 뜨겁게 유지하지 못하고 차가워졌을까 라며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그저 다시 불을 피워 창작의 온도를 높이면 되는 일이다.
내가 어떻게 다시 불을 피울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앞으로 차차 설명하도록 하고, 어느 순간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물이 끓기를 바라고 있었단 걸 4달 만에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길 기다리는 일은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창작의 온도를 높이는 건 불을 지필 괜찮은 땔감만 구해오면 어떻게든 될 테니 가망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요즘 매일 땔감으로 쓰기 좋은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지푸라기를 긁어와 불을 피워 창작이라는 냄비를 다시 끓이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면 미동도 없이 고요하지만, 더운 김이 올라오는 건 느껴진다.
만약 이 글이 퀘퀘한 작가의 서랍 속에서 무사히 꺼내져 세상의 빛을 봤다면, 끓어 넘친 나의 작은 창작 냄비를 축하해주기 바란다.
'아무리 수정해도 완벽하지 않은 글인데~',
'이런 걸 만든다고 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는 거센 바람을 이겨내고 결국 물을 끓여내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뭔가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두려울 만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 몇 달 전의 나처럼 아무것도 쓸 수도, 그릴 수도 없음에 괴로워하는 이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창작의 불씨가 꺼져버려 온도가 차가워진 건 아닌지 확인해 보길 바란다.
나의 경우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이지기만 하면 뭐든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장담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조차도 창작의 온도가 아주 천천히 부글부글 끓다 한순간에 끓어 넘쳐 그림을 그린 게 시작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하늘에서 아이디어가 뚝 떨어졌다고 쉽게 착각한 것이다.
우려한 대로 창작의 불씨가 꺼졌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땔감을 구하러 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