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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다 Jun 01. 2021

내가 정한 데드라인을, 내가 약속한 만큼만


데드라인을 지키거나, 혹은 지키지 못할 때마다 매번 한 가지의 선택지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전진할지, 뒤로 후퇴할지, 오른쪽으로 빠져버릴지, 왼쪽으로 나아갈지를 선택해야 했고,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늘 새로운 데드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데드라인은 더 이상 없다.


어릴 땐 걸핏하면 데드라인을 만들며 노는 걸 좋아했다.

이 선을 밟으면 죽는 거야! 이 선에서 어긋나면 죽는 거야!

횡단보도의 흰색만 밟아야 살 수 있어! 5초 만에 저기까지 달려보자! 누가 가장 오래 버티는지 내기하자!


이겨봤자 부와 명예는 고사하고 잔잔한 박수조차 받지 못하는 이 즉흥적인 결승선이 눈 앞에 나타나면,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검은 선을 밟지 않도록 휘청대며 이상한 걸음걸이로 걸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도 얼핏 중심을 잃어 검은 선을 밟아버리면 슬그머니 이 문장만 중얼거리면 된다.

'이건 사실 연습 게임이었어..'


나는 그렇게 곧잘 의미 없는 데드라인을 만들다 허물기를 반복하며 자랐고, 점차 횡단보도의 흰 선을 밟을지 말지 따위의 데드라인에 조금씩 흥미를 잃었다. 그 무렵, 내 삶엔 크고 작은 모양으로 영향을 주는 '진짜' 데드라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 데드라인들은 때로는 한꺼번에 들이닥치기도, 돌아서면 새롭게 생겨나기도 했다.

데드라인은 마라톤 결승선과는 달리 못 지키면 끝장난다는 긴박함만이 있을 뿐 성취감을 맛보긴 어려웠다. 잘해봐야 본전이지만, 넘지 못하면 꽤나 곤란해지기 때문에 죽을힘을 짜내 돌격해야 했다. 데드라인을 가까스로 넘고 나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음 데드라인을 향해 뛸 준비를 하거나, 데드라인이 없을 얼마간의 여유 위에서 마음껏 느슨해졌다. 마치 다시는 달리지 않을 것처럼.


그랬기에 내가 쉴 때면 나를 조금이라도 긴장시킬 수 있는 데드라인과 데드라인처럼 생긴 것을 모두 치워버렸다.

들여다보고 싶은 만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을 때까지 잠들지 않았고, 게을러질 수 있을 만큼 게을러졌다. 쉬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데드라인을 지키거나, 혹은 지키지 못할 때마다 매번 한 가지의 선택지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전진할지, 뒤로 후퇴할지, 오른쪽으로 빠져버릴지, 왼쪽으로 나아갈지를 선택해야 했고,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늘 새로운 데드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데드라인을 향해 늘 그랬던 것처럼 달리면 되었고, 약간의 휴식을 향해 굴러 떨어질 참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진짜' 데드라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진짜' 데드라인이라는 미로에서 얼떨결에 빠져나와버린 것이다.




내가 정한 데드라인을, 내가 약속한 만큼만


나는 자유라는 초원 위에서 마음껏 뒹굴었다.

'마음껏 뒹굴었다'라는 쿨한 표현을 써도 될 만큼 나의 휴식이 역동적이었는 가에 대해 잠시 의문이 들긴 하나, 대부분 뒹굴거리는 데에 시간을 할애했으니 그다지 틀린 문장도 아닌 듯하다. 저번 주도, 어제도, 오늘도 어김없이 무한정으로 주어지는 자유에 어느 순간 덜컥 겁을 먹은 건 당연하게도 정해진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그 순간부터 광활한 초원은 끝없는 사막처럼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떠한 길도 존재하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떤 의문이 들었다.

'진짜' 데드라인의 정의를 바꿀 때가 된 건 아닐까?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순간부터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던 순간까지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해주던 '진짜' 데드라인들은 언제나 타인에 의해 결정되곤 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기말고사가 돌아왔고, 수능을 치르고, 과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직장에 다녀도 넘어온 데드라인보다 넘어야 할 데드라인은 줄어들긴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착실한 경주마로서의 삶이었다. 슬프게도 나의 경우엔 운이 좋으면 3등, 운이 나쁘면 5등쯤을 기록하며 데드라인 안에 들어온 것에 순순히 만족하는 경주마였지만.


목적지를 잃은 5등 경주마는 결국 제 손으로 데드라인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막상 내 손으로 데드라인을 만들게 되니 저기까지 왜 뛰어야 하는지, 왜 뛰고 싶은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여러 우선순위의 우열을 비교하며 정하는 게 원칙이지만, 내가 정하는 데드라인에서는 역시 '흥미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요소가 무엇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매번 실감하고 있다.



마라토너에게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을 해봤자
1등은 어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요즘 취향이 짙게 깔린 나의 데드라인을 향해 스스로 약속한 만큼 뛰어가고 있다. 나에게 맞는 속도는 뛰는 것보단 차라리 걷는 수준에 가까웠는데, 전직 5등 경주마는 어쩌면 마라톤이 조금 더 적성에 맞았던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마라토너에게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을 해봤자 1등은 어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정한 데드라인을 향해 달릴 때마다 검은 선을 밟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며 걸어가던 그 순간을 요즘도 자주 떠올린다. 얼핏 검은 선을 밟는다고 해서 눈 앞에 'GAME OVER' 문구가 뜨는 것도 아닐 테지만 휘청거리며 매일 조금씩 앞으로 걸어간다.


예전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데드라인을 넘을 때마다 어떤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매일 1줄씩 뭐든 쓰기'라는 데드라인의 첫 결실이 이 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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