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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다 Jun 22. 2021

무명의 시간을 대처하는 방법

거대한 기회가 내 인생을 덮치지 않을 확률


언젠간 오겠지만 그다지 빠르게 오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무명인 채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당장 글을 써봤자, 노래를 만들어봤자, 주목도 받지 못할 텐데 왜 해야 하느냐고? 그럼 뭘 하지? 가만히 누워서 구경만 해야 하나?



문명특급 EP160 - 가수 이승기 인터뷰


"저는 한 번쯤 누구에게 큰 파도처럼 몰려오는 기운이 있다고 봐요. 본인의 능력보다 조금 이상으로. 이제 그때 자신이 준비가 좀 돼있어서 그걸 올라타서 서핑을 했는지 아니면 깜짝 놀라서 파도에 적당히 몸만 실었는지 그 차이인 것 같아요."


TV를 틀면 어디서든 그가 나오고 그의 노래가 한 번씩은 꼭 나오던,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전성기를 이승기는 이렇게 정의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든 느낌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의 공포감이었다.

따져보면 이런 말을 난생처음 들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식상할 정도로 자주 스쳐간 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일생에 한번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거라는 믿음은 마치

'(아마) 너한테도 언젠가 무지개가 뜰걸~?'정도의 실체 없는 위로로 다가오곤 했다.


지금까지 기약 없는 무지개인 줄 알았던 기회가 사실은 거대한 파도라면?

그 거대한 파도가 오는 시점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면?

과연 내가 그 파도 위를 올라탈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서핑은커녕 압도적으로 거대한 파도에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갈 게 너무나도 자명했다. 산 위에 뜬금없이 방주를 만들었을 누군가의 불안함이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잠깐 동안 거대한 파도를 부정도 해보았다. 그런 거대한 기회가 내 삶에는 오기 힘들 것이라며 애써 놀란 가슴을 추슬러봤지만 파도 위를 보기 좋게 올라탄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이 마주치고 있는 게 문제였다.

기적적으로 역주행에 성공한 브레이브걸스나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BTS와 같이 머나먼 세계까지 갈 것도 없다. 오늘만 해도 어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조회수가 유독 높은, 소위 '떡상한'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꽤나 많이 봤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이 100년이 좀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선택'과도 같은 큰 파도가 일생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으리라 100%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장담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슬슬 기분이 좀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을 살면서 커다란 기회가 두려워 기회가 오지 않기를 비는 건 나 자신에게 꽤나 실례가 되는 비겁한 마음가짐이니까.

그래서 나는 언제가 될진 몰라도 거대한 파도는 올 것이라는 전설을 믿어보기로 했다.



실패를 자주 반복했다는 건 어쩌면 작은 파도 위에서 지치지 않고 보기 좋게 넘어졌다는 소리일 것이다.

바다의 짠물이 코와 입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어오고, 볼썽사납게 발버둥을 치며 허우적거리겠지만 다시 중심을 잡고 숨을 고르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다시 파도를 타야 할지, 파도 따위 질렸다는 듯 미련 없이 바다를 벗어날지, 그저 안전하게 서핑보드 위에서 둥실둥실 부유할지.


당연하게도 보드에서 가장 많이 굴러 떨어져 본 사람이 서핑보드에서 가장 오래 버틸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핑보드에서 많이 굴러 떨어지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나의 경우엔 서핑보드 위에서 우스꽝스럽게 비틀거리다 바다에 풍덩 빠지는 모습을 비웃지 않을 적당한 무관심이 가장 필요하다. 어차피 바닷물을 코로 마셔야 하고 볼썽사납게 넘어지는 걸 피할 수 없다면, 그 모습을 모두가 구경하게 되는 쪽팔림만큼은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걸 다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누구도 나의 도전에 주목하지 않을 무명의 시간은 실패를 하기에 가장 좋은 연습 시간임이 분명하다.




지금 당장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면


왜 나는 당장 성공하지 못했을까?

왜 아직도 커다란 기회가 오지 못 했을까? 라며 자책하거나 조급한 마음이 들 땐 커다란 파도 같은 기회가 지금 당장 코앞에 다가온 상황을 상상해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만약 지금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몇 천명 앞에서 생방송 강연을 해야 한다면?

어쩌다 외국까지 소문이 나버려 당장 TED 강연의 연사로 무대에 올라야 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원고료를 제시하며 그에 걸맞은 원고를 부탁받는다면?

평소에 가장 존경하던 작가가 갑자기 함께 책을 만들어보자는 연락을 직접 한다면?


이런 파도들이 지금 당장 나를 덮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내가 그 파도에 성공적으로 올라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저 상황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은 두려운 기분이었다. 아직 그 정도로 큰 파도까진 자신이 없을 나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운이 좋게도 무명이라는 연습기간이 아직 남아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첫 시도만에 커다란 파도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얼떨결에 아주 희박한 확률로 큰 파도를 서핑했을 때의 그 거대한 관심과 기대를 받으며 그다음 파도를 과연 성공적으로 서핑할 수 있었을까? 서핑은커녕 거대한 부담감에 짓눌려 바다에서 쫓기듯 도망쳤을 게 뻔하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은 그렇다.


10번의 시도 중 2번째 만에 성공하는 것과 9번째 만에 성공하는 것 중 나는 주저 없이 9번째 만에 성공하는 걸 택할 것이다. 9번 정도 실패를 하고 나면 예고 없이 다가올 커다란 성공에 도망치지 않고 후회 없이 몸을 던질 수 있을 테니.


물론 생각을 고쳐먹는다 한들 실패는 여전히 아프고 쓰라릴 것이다. 그러니 파도를 올라타기 전엔 반드시 파도에서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해야만 한다. 아직 큰 파도를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딘가 부러져 버리는 치명상을 입어버리는 것만큼은 피해야 하니까.



파도는 온다. 그다지 빠르진 않을지라도.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말하다'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비관적 현실주의자를 이렇게 설명했다.

죽음의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낙관적인 사람도, 비관적인 사람도 아닌 비관적 현실주의자였다. '곧 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믿지도, '나는 여기서 죽고 말 거야. 영원히 여기를 떠나지 못할 거야.'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여기서 나가기는 쉽지 않아, 나치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스실에 끌려갈 수 도있겠지. 그렇지만 그때까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그러니 우선 면도를 해야겠다. 수용소에서 무슨 면도를 하느냐고? 그럼 뭘 하지? 가만히 누워서 죽을 때를 기다려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파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오겠지만 그다지 빠르게 오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무명인 채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당장 글을 써봤자, 노래를 만들어봤자, 주목도 받지 못할 텐데 왜 해야 하느냐고? 그럼 뭘 하지? 가만히 누워서 구경만 해야 하나?



큰 파도를 타기 위해선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많은 연습을 하려면 우선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바다에서 오래 살아남아 버텨야 한다.


큰 파도를 기다리는 무명의 예술가들이 누구도 환호해주지 않는 고요한 바다가 조금은 덜 괴로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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