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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Apr 13. 2023

사무침으로 피어나는 꽃

비로소 이해가 되는 단어들이 있다. 내게는 ‘사무침’이 그렇다. 그리움보다 짙고 깊은 것이 사무침 것이다. 마치 그것은 어두운 안개와 같아서 헤아리기 어려운 감정이며, 한(恨)이 겹겹이 쌓여있다.      


  요 며칠 부대꼈던 사무친 감정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 때문이. 빨치산 출신 아버지에 대한 비망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고나서부터 먹먹함이 밀려왔다. 그 먹먹함의 정체가 바로 사무침이었다.


 사무침을 소환해 준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출신인 아버지의 죽음을 딸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눌러 담은 소설이다. 작가의 찰진 문장력 덕분에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흡입력을 잃지 않았다. 사무침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책의 결말에 다다를 무렵이었. 줄곧 유쾌하게 슬픔을 버무리던 딸이 통곡하듯 아버지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 가족사라는 호기심 때문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게 되었다. 작품의 강력한 서사적 자력에 끌려 흥미롭게 읽다가, 종국에는 "나의 아버지~"라는 진한 독백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야 말았다. 아마도 칠 년 전 아버지의 유골함을 탑에 안치하던 날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유골함을 열고 굳어가던 당신의 뼛가루를 손으로 휘저을 때 전율하듯 올라왔던 그 감정이 사무침이었다.  


 그날 내 손에는 아버지 육신의 가루가 뒤덮고 있었다. 유골함을 제자리에 모신 후에도 손을 쉽사리 씻을 수 없었다. 가루를 물로 씻어내는 것도 불경한 듯싶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의 온기를 잠시라도 느낄 수 있는 애틋함과 뭉클함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기일(忌日)이 다가온다. 벚꽃 만발한 고운 계절에 돌아가신 당신과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감동이 겹치면서 그때의 사무침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생전에 아버지는 척추신경 마비라는 고통 속에 사셨다. 아버지의 고달픔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회피하려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죽고 싶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워댔다. 욕실에서 당신의 등을 밀어 드릴 때면 한숨과 같이 새어 나오던 그 탄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바람은 진심이었고 신께 드리는 기도처럼 들렸다. 그럴 때면  당신에 얼굴에는 신의 시험에 고통을 당했던 욥이 겹쳐 보였다.

 

 뒤늦게 아버지가 느꼈을 절망과 외로움이 와닿는다. 당신의 고통을 애써 외면했던 내 부끄러운 모습에 한없이 죄송함을 되뇌어본다. 아버지가 소천하셨던 그해 설날이 떠오른다. 세배를 드리는데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덕담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당신께 드리는 마지막 세배라는 느낌은 뚜렷했다.

     


 일제 말에 태어나신 아버지는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으면서 보릿고개를 경험했고, 강원도 최전방에서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청춘을 냈다. 제대 후 아버지는 송광사가 지척인 승주 산골 출신 어머니와 결혼했다. 훗날 어머니는 신혼살림이라곤 장사 밑천이었던 시계 몇 개와 냄비 그릇, 수저 한 두벌이 전부였다며 전설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그 아득함은 가장인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렇게 당신은 이촌향도라는 물결을 타고 서울에 정착했고, 생계의 거친 물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흥, 전주, 보성을 거쳤던 아버지의 여정은 서울을 지나서 완도와 광주로 이어졌고, 형편이 조금 펴질만하자 불구의 몸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고생 끝에 낙'이란 말을 모르고 사셨다.

 

  어느 날 소화가 안 된다는 아버지께 죽을 드시면 어쩌겠냐고 여쭸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셨다. 요즘 죽 전문점 음식이 맛있다고 했지만, 당신은 끝내 먹기 싫다고 하셨다.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니 아부지가 어릴 때 맨날 죽만 먹어서 저런다라고 덧붙였. 그제야 아버지가 겪었던 가난의 실체가 어렴풋하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비롯된 사무침은 아버지의 제삿날로 향하고 있다. 진달래와 철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눈부신 빛깔을 토할 때면 아버지의 제사가 있고, 봄꽃들이 군무를 마칠 때면 어버이날 그쯤이 된다. 이 무렵이면 화원마다 예쁜 카네이션이 가득하다. 카네이션은 여느 봄날의 꽃보다 사무침을 달래 준다.

  

  감사함을 상징하는 꽃으로 선택받은 카네이션은 성모마리아의 눈물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아들 예수의 수난을 피눈물로 지켜보았던 마리아의 눈물이 땅에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카네이션. 카네이션의 전설이 새삼 애절하게 들려온다.

  

 아버지의 지친 영혼은 티벳 독경 소리가 낮게 울리는 깊은 산사에 자리하고 계신다.  다가오는 아버지 기일에는 카네이션을 들고 가야겠다. 그것도 한 다발로 말이다. 그날이면 사무친 마음에 카네이션을 묶어서 당신께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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