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명상음악에 잠기다.

by 박신호

#1

그해 가을, 김영동의 명상음악을 만났다. 내가 가르치던 검정고시 학원생들과 가을 소풍을 갔었던 날이었다. 학원생 대부분은 정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소풍 날짜가 다가오자 모두가 들떠있었다.


장소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는 조계산이었다. 교사와 학생을 포함해서 서른댓 명이 함께하는 야유회였다. 소년원 출신 승구와 종교적 신념으로 학교를 거부한 준호 그리고 철물점 주인 민수 씨도 설레는 표정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평일 행사인 탓에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여학생들이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을 마치면 학원으로 달려와서 제때로 식사도 못하고 늦은 시간까지 공부했던 아이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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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암사 주차장에서 도착해보니 단풍이 조계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도시락이 든 가방을 메고 산사를 향해 걸었다. 일주문으로 이어진 길은 나무 향기로 가득했고, 며칠 전에 내린 비 덕분에 계곡 물소리도 우렁찼다. 여름 더위에 찌들었던 산하가 가을바람에 숨을 고르고 있었다. 걷다가 마주친 청설모는 달아나기는커녕,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승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일주문이 가까워졌다.


일주문 입구 옆에는 차(茶)와 불교용품을 파는 작은 가계가 있었다. 그곳에서 눈요기를 하고 있는데, 내 옆에 있던 김 선생이 라즈니쉬의 책을 골랐다. 학생들도 작은 염주를 골라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김 선생이 “박 선생님, 김영동 선 명상음악 들어보세요”라며 검은색 표지의 CD를 가리켰다. 평소 도인과 같은 묘한 분위기가 흐르던 그녀의 추천이었지만 빙그레 웃고 나왔다.


선암사를 휘~ 둘러보고 샛길로 들어섰다. 본격 산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한 삼십 분쯤 산길을 걸었는데, 벌써 땀이 배어 나왔다. 다들 곁 옷을 벗어 허리에 묶은 채 걷고 있다. 늘 담배를 물고 살던 영어 선생이 물에 빠진 것처럼 헉헉거렸다. 내게 김영동 CD를 권했던 김 선생은 뒷짐을 짓고 여유롭게 걷고 있다. 부잣집 사고뭉치 훈이가 올라가기 싫다고 요란을 떨자, 철물점 사장 민수 씨가 버럭 소리를 쳤다. 훈이가 시무룩해졌다. 다들 가뿐 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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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산 정상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르막이 급해지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났다. 이번 소풍의 인솔 책임을 맡은 나는 ‘곧 내리막길이 나온다’며 학생들을 달래기 바빴다. 얼마쯤 지났을까? 선두에서 걸었던 몇몇이 “정상이다”라고 소리쳤다. 오만상을 짓고 걷고 있던 훈이가 “이제 살았다”라고 추임새를 크게 넣었다.


#3

어느 넉넉한 공터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꺼냈다. 식사가 끝나자 장기자랑으로 이어졌다. 요즘 같으면 희한한 장면이겠지만, 그때는 당연한 통과의례였다. 나는 그날 송창식 노래를 불렀는데, 아마도 ‘토함산’과 ‘우리는’ 이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유행하던 시절에 통기타 가수 송창식이라니. 학생들이 시무룩해졌다. 이른바 갑분싸가 되어버렸다. 가을 햇볕이 혀를 차고 있었다.


송광사로 이어진 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었다. 숨이 목까지 꽉 찰 무렵이면,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누군가 조계산을 부처님 같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올라올 때 씩씩거렸던 훈이가 머리에 나뭇가지를 꽂고는 요란을 떨고 있다. 간호조무학원 등록이 꿈이라는 미영이가 가을볕이 무섭다며 가방에서 양산을 꺼내더니 펼쳤다. 이 광경을 보던 수학 선생이 “뭐야, 완전 봉숭아 학당이네”라며 어이없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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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산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송광사 우화각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예불 의식까지 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 땀이 식자, 일주문 앞에 있던 ‘불일서적’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 선생이 추천했던 김영동 선 명상 CD를 골랐다.


대웅전에서 십우도를 감상하다가 김 선생과 마주쳤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과 내 손바닥을 마주 보게끔 펴보라더니, 어떤 기운을 느껴보라고 했다. 잠시 후, 두 손바닥 사이에 묵직한 기운이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김 선생이 손을 천천히 움직이자 내 손이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공이 커진 나에게 이것이 바로 기(氣)라고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승구가 ‘와! 도사다’라며 흥분했다.


어둑어둑해지는 대웅전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불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다들 가을 찬바람에 어깨를 구부리고 마당에서 서성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스님들이 줄지어 법당에 입장했고. 우리 일행이 모여있던 종루에도 스님 두 분이 들어갔다. 몇몇 사진작가들이 종루 방향으로 렌즈를 맞추고 있었다. 가을 산이 숨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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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열(法悅)의 감동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대웅전의 황금 불빛과 적막한 가을의 기운. 법고와 운판, 목어 그리고 범종의 울림이 주위에 가득찼다. 검푸른 빛에 둘러싸인 산사에서 울려 퍼지던 법고의 울림에 숨이 멈췄고, 범종의 긴 여운은 산자락을 맴돌고 있었다. 이어서 법당에서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라는 아름다운 운율의 합창에 넋을 잃었다.


#5

예불이 끝나자, 김 선생, 준호와 함께 주차장을 향해서 밤길을 걸어갔다. 광주에 도착할 무렵, 김 선생이 김영동 선 음반은 바로 송광사 예불을 녹음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김영동의 명상음악을 만났다. 이후 <귀소>, <산행>, <바람소리>, <생명의 소리> 등 그의 음악에 침잠했었다.


그날, 기를 체험시켜준 김 선생과 담배를 끊겠다던 영어 선생, 철물점 민수 씨, 훈이, 준호, 승구, 등 모두가 그립다. 이들은 초라했던 내 청춘 시절을 밝혀준 보석들이다. ‘등용문’이란 학원명처럼 자신의 소망대로 살아냈기를 바래본다. 1992년 11월 초, 해 저물던 가을 산사에서 만났던 김영동 선 명상음악을 이번 가을에 다시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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