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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Jun 01. 2023

SOUL, 두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적적해진다. 허기짐과는 다른 공허함이 몸을 맴돌기 때문이다. 배 고픈 것 아니건만 마음이 텅 비어있는 기분이다. 이러한 공허를 채우는 음식소울 푸드(soul food). 소울 푸드는 영혼을 채워주는 음식이다.

     

  그냥 푸드(food)가 아닌 소울(soul)에 방점이 있는 소울푸드. 꼬질꼬질한 마음의 때를 씻겨주고 보충해 준다. 마음 한편에 생긴 블랙홀은 소울 푸드로 메워야 한다. 뱃살 따위는 잊어버리고 몸을 통해 마음이 보내오는 신호에 촉을 세우다 보면 어떤 먹거리가 떠오를 것니, 그것이 바로 소울 푸드이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헷갈리는 때가 있다. 첫 직장 시절, 월요일 아침이면 선배들은 주말에 경험한 맛집과 요리 이야기에 열을 내곤 했다. 그렇게 요리와 맛집 품평이 끝나고 나면 대점심 메뉴로 대화가 이어졌다. 다른 요일 아침 대화도 주로 먹고 마시는 이야기뿐. 인문, 사회, 과학 등 세상살이는 다양하건만 저토록 맛집과 음식 이야기뿐이라니, 호모 사피엔스가 맞나 싶었다.


 나는 별미를 찾아다니거나, 대기표를 들고 식당 앞에 서성대는 것이 영 마땅치 않다. 먹방 프로그램 시청에 열을 내는 이 땅의 민중들을 볼 때면 도대체 왜들 저런가 싶어 진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이 아닌가 말이다. 심지어 냉장고를 부탁해를 부탁한다면서 유명 세프들의 무용담을 보여줬던 방송도 있었다. 이처럼 먹는 것에 삐딱한 나도 소울 푸드는 예외다. 치유의 힘을 지닌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 하지만, 정작 나의 소울 푸드는 다소 애매하다. 반찬이든 요리든 딱히 소울적인 음식이 생각나지 않다. , 어묵, 달걀과 같은 식자재 종류와. 오리탕, 삼겹살 또는 해물찜, 라면 따위가 떠오르지만 소울 타이틀을 주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다. 랍스터나 샥스핀, 그라 등은 명성만 들었을 뿐, 맛을 모르니 달리 할 말이 없다.      


 대신 소울 식자재는 있으니, 바로 두부다. 두부는 그 무엇보다 내가 총애하는 식자재이다. 우선 두부가 창출하는 요리를 꼽아보자. 두부조림, 두부 전, 마파두부, 막걸리와 양념 두부, 순두부찌개. 뿐이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에도 두부는 주연 못지않은 조연급이다.  


 두부의 덕은 청출어람에 있다. 일단, 두부는 출신성분이 갑()이다. 두부의 종가는 콩이 아니던가? 콩만큼 찬양을 받는 식자재는 없을 것이다. 자연이 내려 준 완전식품 콩. 콩국수, 콩자반, 콩비지, 메주 심지어 콩고기 등은 모두가 콩의 분신들이다. 하지만 두부야말로 진정한 콩의 맏이다.  

   

 두부는 다른 콩의 아바타들보다 완성되는 과정이 수고스럽다. 일단은 콩을 물에 불려야 한다. 이어서 간을 짜낸 다음 콩물을 끓어서 간수를 넣는다. 간수가 투입된 끓은 콩물은 신기하게도 서로 엉키게 된다. 이렇게 엉킨 콩물을 천에 붓고서 이를 쥐어짜면 두부가 탄생한다. 언젠가 귀농한 선배 집에서 두부 만들기에 도전했었는데 보기와는 달리 쉽지 않았다. 그때 천을 쥐어짜면서 두부를 처음 창조한 고대 중국인을 상상해 보았다. 간수를 넣는다는 발상을 한 그의 무한 상상력에 경탄할 뿐이다.   

  

  두부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실한 영양가에 있다. 이른바 뼈 없는 고기, ‘무골육(無骨肉)’이란 별칭이 있으며, 서양에서도 살찌지 않은 치즈라고 한다. 고단백 저지방이라는 황금비율을 지닌 두부는 서민에게 중요한 먹거리다. 출옥한 이들이 처음 먹는 것도 두부가 아니던가. 사연인즉, 감옥에서 빈약해진 몸을 보충하라는 뜻이란다. 이처럼 두부에는 눈물 젖은 빵보다도 더 진한 사연을 담고 있으니, 소울이라 불린만하다.

 

 두부의 또 다른 매력은 식감에 있다. 씹을 때의 부드러움은 아다지오 선율을 닮았다. 고요하고 순하며 넉넉하게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매운맛에도 두부가 들어가면 평화가 깃든다. 청양고추가 투입된 라면에 순두부를 넣어보라. 찌릿찌릿 매운맛 사이로 순두부는 비폭력 정신을 선보인다. 뿐이겠는가? 막걸리의 파트너 양념 입은 두부는 무리들을 단합하게 만드는 신묘한 힘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두부는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영사기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빛을 받아들이는 하얀 스크린처럼 그저 받아줄 뿐이다. 자극적인 각종 양념, 향신료, 기름, 간장, 고추장과도 다투지 않는다. 마치 오행에서 토()처럼 이 모두를 품고선 각자의 사명을 완성케 한다. 무채색 두부는 마음 착한 시골 아낙네의 수더분한 마음과 같고, 순함은 끝이 없으니 자신을 가르는 칼마저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이 있으니, 콩을 유전자 조작한 GMO 제품으로 만든 두부다. 자연을 손대는 인간의 못 댄 손버릇이건만 어쩌랴. 이 또한 속세의 모습인 것을. 그렇다고 두부를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고소함와 부드러움을 대체할 식자재가 딱히 생각나지 않다. 게다가 두부의 가성비는 주부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값이면 두부 한 모쯤은 넉넉하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직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면 황혼이 깔린다. 정체하는 차량들 사이로 멈췄다 가다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아내가 차려 줄 저녁 식사가 궁금해진다. 신호 대기 중에 아내가 보낸 문자가 들어온다. 들어올 때 마트에서 두부 두 모 사와.”  그럴줄 알았다. 어쩐지 오늘은 두부가 먹고 싶더라니, 소울은 분명 소울인 모양이다. 헛헛한 내 마음이 촉 맑은 아내에게 전해진 모양이다. ~ 어서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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