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알에 그리움을 담아

by 박신호

“엘리사벳 수녀님. 오늘 오전 8시 20분 하느님의 품으로... 기도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휘청인다. 서울 엘리사벳 수녀님께서 선종하셨다. 수녀님은 몇 달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여든이 넘은 노구로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고 계셨다. 얼마 전, 수녀님의 절망적인 병세를 접하고서 매일 기도를 바치는 중이었다.


엘리사벳 수녀님과의 인연은 칠 년 전으로 올라간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때였다. 하루는 주보에 나와 있던 풀꽃관상기도 모임에 참석하고자 신안동 살레지오수도원 사비오 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스물댓 명쯤 교우분들이 앉아있었고, 앞쪽에는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무릎을 꿇고 계셨다. 그분이 바로 엘리사벳 수녀님이었다. 기도 모임은 수녀님의 말씀과 찬양 그리고 묵상으로 이어졌는데 시종일관 영적인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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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낯선 전화가 걸려 왔는데 엘리사벳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어제 기도 모임에 처음 왔냐면서 앞으로 기도 생활에 도움을 주겠노라’는 말씀과 함께 <높은 데서 사슴처럼> 일독을 권하셨다. 그 후 나는 풀꽃관상기도 모임에서 녹음한 수녀님 말씀을 반복해 들으면서 신앙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엘리사벳 수녀님은 여덟 살 때, 전쟁을 피해서 가족과 함께 북에서 내려오셨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국어 교사로 교편생활을 하다가 깊은 신앙의 체험으로 평신도 공동체 ‘가르멜동정녀회’를 시작하셨다. 이후 공동체 자매들과 매달 서울, 광주, 전주, 부산을 다니면서 풀꽃 영성 기도 모임을 이끄셨다. 수녀님은 늘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 생활입니다.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와 같고 마치 한 토막 밤과 비슷하나이다.”를 나지막이 부르시던 수녀님의 가느다란 음성이 들리는듯싶다. 직장도, 가정도 마다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았던 일생이었다. 풀꽃처럼 겸손하고 가난한 기도의 삶을 사셨던 수녀님. 영광의 신비를 바치는 묵주알마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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