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베트남

by 박신호

한 노인이 웃고 있다. 사진 속 그의 턱수염은 은빛이고 굳건한 입술에는 희미한 미소가 서려있다. 노인의 깊은 동공은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을 말해준다. 지금 나는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치민의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이는 얼마 전 여름휴가로 베트남에 다녀온 아들에게 부탁해서 얻은 것이다.

“1967년 12월, 야만적인 미국 군대는 우리가 사랑하는 어르신, 소녀, 어린이 145명을 학살했다. 이를 후손들은 대대로 마음 깊이 기억하라.”- 투이보촌 위령비


베트남 투이보촌에 있는 위령비는 미군의 만행을 이렇게 적혀있다. 하지만 실제 이날의 학살은 미군이 아닌 따이한 한국군 청룡부대였다. 한국군의 월남 참전이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인지, 대통령 박정희의 제안이었는지 모르겠으나, 1964년부터 가난한 나라 따이한 군들은 남지나해를 거쳐 월남에 속속 도착했다. 오늘날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은 사실상 미국 용병이었으며 파병의 대가로 한국은 경제 발전과 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고 평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월남에 참전했던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를 기억한다. 심지어 맹호부대 군가 한 소절도 부를 수 있다. 국민학교 2학년 때였던가. 월남에서 돌아온 파월부대 환영 행사를 위해 태극기를 들고 나섰던 그날이 선명하다. 나와 반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을 따라서 을지로까지 나갔다.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우리는 걷는 도중에도 군가를 힘차게 불렀다.


수많은 인파가 가득한 을지로에는 맹호, 청룡, 백마와 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의 부대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하고 있었다. 인근 빌딩에서 뿌려진 오색 종이 가루가 눈송이처럼 휘날렸고 남진, 김세레나 같은 당대 인기 연예인들이 그 행렬 사이에 들어가서 파월용사들 목에 화환을 걸어주고 있었다.


그 후 일 년 뒤. 자유 베트남, 월남이 무너졌다. 흑백텔레비전에서는 연일 베트남의 패망이 보도되었고 어른들은 머잖아 북한이 베트콩처럼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쳐들어올 것이라 했다. 진짜 무서웠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어쩐다 전전긍긍하며 등교를 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반공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미친개는 몽둥이”와 같은 멸공 구호와 혹 달린 김일성 마네킹이 불에 타오르면 환호했다. 월남은 북베트남 월맹에게 적화통일 되었지만 북한은 쳐들어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하숙집 아저씨는 교련 선생님이었다. 칠팔 명이 넘은 하숙생의 식사와 도시락을 싸주시던 사모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식사 때면 자주 월남에서의 무공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무적 따이한 부대가 극적으로 승리를 할 때면 하숙생들은 전율 했다. 곤란한 것은 민간인 처형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검으로 여성을 ‘어쩌고 저쩌고’했다는 잔혹한 19금 내용은 몬도가네였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의 민족이라 배웠는데... 교과서가 틀리거나 교련 선생님 말이 거짓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군 현역 판정을 받고서도 섬에 주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고향 완도에서 단기사병으로 근무했다. 물방위는 아니었고 훈련량이 많은 전투 방위였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의 무장 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덕분에 현역병들과 함께 사단 유격 훈련과 십 킬로 구보를 달려야만 했다. 처음엔 대대 작전과에서 열심히 전투지도를 그리던 나는 경찰서장과 대대장 간의 조카들 맞교환으로 예비군 중대에 재배치 받았다.


동기의 부러움 속에서 새로운 부대로 갔더니만 정작 그곳 예비군 중대장은 이상한 사내였다. 그 역시나 해병대원으로 베트남 전에 다녀온 따이한 출신이었다. 분노 조절을 못하는 중대장은 툭하면 고성을 질러댔고 아침 점호 때면 훈시 같은 훈화를 좋아했다. 그의 사택은 부대 옆에 붙어 있었는데 자주 사모님과 다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중대장은 우리들에게 월남전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했다. 이때도 주로 등장한 단어들이 대검, 총살, 수류탄, 머리, 여성 성기, 창자 등... 휴~ 나열하기도 힘든 엽기적인 것들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월남에서 받았다는 훈장이 걸려 있었다. 제대 후 들려온 그에 대한 풍문은 끔찍했다. 중대장 사모님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범인인지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련다. 전쟁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한 가정을 파괴했고 월남전 영웅은 살인범이 되었다.


수업 시간에 베트남 전쟁을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프랑스, 미군을 그곳 사람들이 물리쳤노라고 말해줘도 아이들은 멀뚱멀뚱 별 반응 없다. 이럴 때면 비유까지 동원해서 이렇게 말한다. 고등학교 축구팀이 레알 마드리드를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제야 교실에선 “와”하는 감탄사가 울려 퍼진다. 이어서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니 베트남 노동자나 다문화 친구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더불어 그곳까지 전쟁을 치르러 가야 했던 빈곤했던 대한민국의 처지와 그곳에서 저지른 우리의 잘못을 설명해 준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 대표팀에게 환호하던 베트남 국민들의 모습을 볼 때면 흐뭇했다. 우리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갚은 것 같아서였다. 어느 날 우리 기자가 베트남 현지인에게 물었다. ‘월남 전 때 한국군에게 죽임을 당한 민간인들을 생각하면 한국이 밉지 않냐’고 말이다. 순간 눈빛이 달라진 인터뷰 대상자가 ‘결국 우리가 승리했으니 한국을 용서해 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용서해 준다는 말이 아프게 들려왔다.

호치민 사진을 건네던 아들은 이런 것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왔다. 글쎄... 그냥 지난날 우리의 잘못에 대한 미안함이라 해두자.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눈물을 떨구며 부산항을 떠나야 했던 당시의 파월 군인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5,099'는 월남전에서 전사한 한국군의 숫자이다. 이들의 희생은 가난한 조국의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단국가이자 약소국이란 서러움이 베트남에서 부끄러운 역사를 만든 것은 아닐까.


몇 해 전.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한 사촌동생은 아들까지 얻었고 가정을 알콩달콩 꾸려가고 있다. 이제는 사돈의 나라가 된 베트남. 그들에게 용서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련다. "신짜오, 베트~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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