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목소리

by 박신호

오늘은 사탄에 대하여 말해보련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satan)은 '하느님께 등진 자'를 뜻하며, 악을 상징한다. 교만한 천사 루시퍼가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으며 동양에서는 마귀 또는 악마라 부른다. 이들과 대적하는 천사가 있으니 추노꾼 미카엘 대천사이다. 반면에 혼령이나 귀신은 사탄 보다 급이 낮은 초자연적 영체로서 데블(Devil)이라 한다.


대명천지에 사탄이라니?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퇴마사나 구마사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무작정 부인하는 것도 어렵다. 매부리코와 날카로운 이빨, 가득한 주름, 머리 양끝에 돋아있는 뿔, 박쥐의 날개, 능글맞은 미소까지. 우리가 흔히 상상하게 되는 사탄의 외모이다. 이들은 고약한 냄새와 음산한 기운을 풍기면서 엄청한 괴력을 자랑하는데, 멘털이 약한 인간 영혼을 숙주 삼아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 게다가 불안과 공포, 증오를 세상에 퍼뜨려서 혼란을 조성하기도 한다.


영화 <곡성>의 오싹했던 장면과 유사한 현상이 실제 한다고 구마사제은 증언한다. 이처럼 사탄은 '엑소시스트' 류의 구마의식과 관련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사탄은 주로 기독교나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중동지역의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사탄은 예수께 쫓겨나는 부정한 악령으로, 구약의 <욥기>에서는 선량한 욥을 놓고서 하느님과 경쟁하기도 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탄의 여성격인 마녀사냥이 종교 재판에서 벌어졌고, AI 시대인 오늘날에도 사탄을 숭배, 추종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탄의 실체에 대한 설명은 불가하지만 신화나 전설에서 종종 인격화된 존재로 나온다. 이들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컬트에 기반한 초현상과 관련 깊다. 세상에 신비로운 현상이 어디 한둘이던가. 윤회, UFO, 채널링, 예지몽 등 곳곳마다 미스터리 한 사건들이 즐비하다.


몇 해 전, 가르멜수도회 재속회원이 된 이후 곤혹스러웠던 것이 사탄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들이 실제 존재하는냥 말하는 회원을 볼 때마다 절로 고개가 갸우뚱했다. 이러한 의구심을 신부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대뜸 내게 반문했다. "형제님은 천사의 존재는 믿나요." 평소 '천사'로 통칭할 수 있는 영체는 존재하리라 믿었기에, 별 고민 없이 "예. 천사는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제야 표정이 밝아진 신부님은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면 악마의 존재도 마찬가지라 했다. 말씀을 들고보니 그럴 것도 같았지만 인격적 존재로서 사탄은 인정할 수 없다. 다만 악마적인 현상이나 어두운 기운은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지난해 12ㆍ3 저녁에 벌어졌던 비상계엄 바로 그런 날 말이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자의 영혼이라면 사탄이 아니겠는가.

가톨릭의 교황 프란시스코는 악마는 존재한다고 했다. 교황은 사탄이 활약하는 방식으로 뒷담을 들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근거 없는 비방을 길삼아 악마가 우리에게 잠입한다는 교황의 말씀은 새겨볼 만하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사탄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또하나의 통로를 알게되었다.


"조급함은 사탄의 언어입니다."


절로 무릎을 치게 하는 말씀이다. 동시에 조급함과 게으름이 죄라던 카프카의 말이 떠올랐다. 조급함과 뒷담이야말로 사탄의 언어였다. 지금껏 내가 저질렀던 숱한 무지와 잘못의 뿌리가 바로 이것들에서 비롯했음을 깨닫는다.


내 영혼이 뭔가에 쫓길 때면 일부러 한 박작 느리게 움직여야겠다. 내면을 성찰하고 행동을 다스리는 것이 사탄을 물리치는 효험 만점의 부적이리라. 조급함과 뒷담이여, 이 못된 마구니들아! 어~여, 물려들 갈지어다. 꺼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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