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by 박신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


그래서 /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었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는 꼴통이다. 타고난 반골이었다. 20세기 독일은 군주제와 공화국. 나치 파시즘. 자본국가 서독과 사회주의 동독으로 종횡을 거듭하면서 영욕을 맛보았다. 혼란의 시대. 브레히트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지켜내고자 애를 썼던 예술가였다. 덕분에 체제와의 불화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하늘이 준 맑은 영혼과 지상에서 얽힌 혈육을 동시에 지켜내기란 쉽지 않았다.


고난의 시절 브레이트는 문 앞에 부착해 둔 이 시를 밤낮으로 읽었으리라. 사랑하는 것들은 지켜내기 위해서. 자칫 방심하면 천 길 아래로 추락할 살얼음의 세월이었다. 그에게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해서>는 생존을 위한 기도문이다. 그런 나날을 보낸 이가 어찌 브레이트뿐이랴. 사랑하는 이, 지켜야 하는 무엇이 있는 이, 살아내야 할 이유가 있는 이라면 두 손 모으고 읽게 되는 시이다.


노량에 쓰러진 충무공이 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조선의 백성이었고, 갖은 모멸을 당하면서도 청과의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이 지켜야 할 것은 종묘사직이었으며,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죽어라 관군의 눈을 피해 보따리를 들고서 도망쳤던 것은 사람이 곧 하늘임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랑한 것을 지켜야만 했던 이들의 삶은 골고다 언덕 위에 있었 다.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말이 절절해질 때면 어른이 된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 거창한 사상이나 이념만은 아니다. 소소한 삶이 더욱 애잔한 법이니, 늙으신 고향 부모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매달 노동의 대가로 이들을 부양하는 가장(家長)의 어깨는 무겁다. 양심과 정의를 거론하는 것이 버거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여 간과 쓸개는 집에 두고서 출근해야 세상의 빗방울을 견뎌낼 수 있다. 버리는 것은 용기이며 얻는 것은 부끄러움. 내가 비겁한 이를 향해 손가락질하기를 주저하는 이유이자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말의 무게를 아는 까닭이다.


소명(召命)은 거룩한 부르심이다. 신에게, 사회에게, 혈육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응답이다. 그러니 만만치 않은 각오와 의지를 갖춰야 할 터. 브레이트는 "나는 정신 차리고"라 했다. 옳다. 정신을 차리고 긴장도 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다.

관옥 이현주 목사님은 정성스럽게 살아보자고 하신다. 자신에게 맡겨 진 소중한 것을 정성껏 모시자는 말씀이다. 얼마 전까지 천방지축으로 광분하며 건방 떨던 권력자 부부의 몰락을 보라. 하늘은 서슴없이 비 맞은 자를 싫어한다. 겁 없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세상을 함부로 살았던 죄' 영화 <빠삐용> 주인공이 하늘로부터 받았던 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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