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 - 윤도현
생각보다 그 놈은 네 가까이에 있을 거다.
도대체 누굴까, 내 꿈을 뺏는 자는?
그 범인은 바로 나였다네._
윤도현,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길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때 내가 제작했던 라디오 코너의 게스트였던 그가 이제는 타사에서 당당히 2시간짜리 프로그램의 메인 MC로 활약하고 있었다. 경쾌한 오프닝곡, 능숙한 근황 토크, 청취자 문자에 재치 있게 답하는 그 사람. 우리와 함께 할 때는 서툴렀는데, 이제는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었다. 나는 또 울적해졌다.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울적해지는 라디오 PD라니, 이걸 어쩌나.
생각해 보니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게스트들이 하나같이 잘 나가고 있었다. Y사, S사, M사에서 메인 진행자로 자리 잡은 그들을 보니 그와 대비되는 내 처지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잠식했다.
‘처음 조짐이 보일 때 박차고 나갔어야 하는데... 나이도 경쟁력인데.’_
‘나가면 뭐 갈 데는 있을까? 이직이 쉬운 것도 아니잖아.’_
‘안 나간 게 아니라 못 나간 걸지도 몰라. 그때 내가 나태했던 건 아닐까?’_
고구마 줄기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들. 부정적인 화살은 결국 나를 향했다.
잠시 후 도착한 곳 근처 서점에 들렀다. 눈에 띈 책은 김미경의 ‘딥마인드’. 자기계발서겠거니 하고 펼쳤는데, 뜻밖에도 “열심히 살지 말라”는 구절이 보였다. 열심히 사는 것의 대명사였던 그녀가? 그 낯선 조언에 호기심이 생겼다.
책에서 김미경 씨는 말했다.
“나도 화려해 보이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너무 외부적인 기준에 맞춰 살고 있었다는 걸.”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외부 기준에 휘둘리지 말라는 이야기.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외부의 기준에 상처받던 그녀는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하 100층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고.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맞다. 지금 이 시간은 내가 바라던 시간이다. 조직에 매여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성장을 하고 있잖아. 자영업자로 살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머리를 느긋하게 말려줄 수 있는 이 시간...이건 내가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행복이잖아.’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내가 머리를 말려주는 내내 노래 부르며 앉은 채 춤을 추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제야 이 시간이 ‘패배자’의 시간이 아닌 ‘기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면, 나는 또 다른 멋진 모습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며칠 전, 우연히 배우 주지훈 씨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배우 지망생인 후배가 물었다.
“오디션에서 떨어졌는데, 제가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주지훈 씨는 답했다.
“형들한테 배운 건데, 이를 악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돼. 문제’라는 단어 대신 ‘해석의 차이’라고 생각해 봐. 내 해석과 제작진의 해석이 달랐을 뿐이라고.”
맞다. 나이 들수록 이를 악물고 의도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공격은 더 치열하고 거세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게 명령어를 어떻게 입력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라고 묻는 것과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라고 묻는 건 다르다.
우리의 뇌와 마음도 마찬가지다. 외부 기준에 맞춰 ‘문제’를 찾으며 나를 공격하지 말자. 이를 악물고 긍정적으로 질문해 보자. ‘어떻게 하면 나는 이 불안을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외쳐보자. '행복하고 싶다! 행복할거다! ('데이식스-happy 노래처럼)
반드시, 한결 나은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글에 등장하는 노래)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 - 윤도현
https://www.youtube.com/watch?v=6VjtRnvCgsQ
데이식스-happy
https://www.youtube.com/watch?v=sWXGbkM0t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