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 어반자카파
나 그대의 외로움
모두 알아 줄 순 없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
안아 줄 수 있다면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면
(어반자카파 '위로')
어반자카파의 노래처럼, 우리도 때때로 말없이 안아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복직을 앞둔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어느 날, 한 모임에서 복직을 앞두고 있는 한 여성분이 말했다.
"그냥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얼마 뒤 그 길로 출근을 해야 된다는 걸 생각하니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여성분의 목소리에는 마치 지금 겪는 일인 듯한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복직을 앞둔 그녀는 업무도 업무지만 사람이 힘들다고 했다. 회사에 유난히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녀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시어머님과 단둘이 있을 때마다 그래요. 제가 뭘 해도 틀린 것 같고, 숨이 막혀요."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대화가 끊겼어요. 말을 걸 때마다 혹시 또 싸우게 될까 봐 불안해요."
"남편과 퇴근 시간이 맞아 같이 집에 가는 날이면, 차 안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부터 서로 할 말이 없어졌거든요."
각자의 목소리에는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인 듯한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직장에서는 후배와의 세대 차이로 고민하고, 집에서는 가족과의 관계로 아파하고, 친구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쟁에 지쳐가는 우리들. 나는 그들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그 증상이 너무 이해가 됐다. 나도 겪어봤기에.
이제는 아주 먼 옛날이 된 고등학생 시절, 나는 1학년 때부터 방송반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와 네 명의 동기 중 한 명과 사이가 어그러졌다. 팀장 자리를 두고 사이가 틀어진 그 동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집에 놀러 갈 정도로 가까웠던 친구였다.
중학교 때 어머니를 잃은 그 친구는 고등학교에 와서 많이 달라졌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거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변해가는 친구를 보며 먼저 사과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지는 것 같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서로 인사도 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 뒷담화를 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어느 날 그 친구가 '방송반에서 보자'는 말을 전해왔다. 화해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방송반에 갔지만, 그곳에서 나는 공포를 느꼈다. 초등학생 시절 내 편이 되어주던 그 친구는 이제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나는 그 친구의 눈을 묵묵히 바라보며 '너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거야?'라고 눈빛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온 후로 나는 다시는 방송반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증상이 시작됐다. 방송반이 있는 복도만 지나가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갑자기 오한이 느껴지고 어지럽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 때문에 힘든' 공황을 처음 경험한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한편으로 그 아이에게 연민을 느낀다. 사람은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면 사나워진다고 한다. 그 아이도 그때 인생의 폭풍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사람은 교통사고 당한 환자처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발가락을 다쳤을 때도 약을 바르고 진통제를 먹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고통은 그저 참고 넘기려 한다. 그러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느끼는 뇌의 영역이 비슷해서 진통제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일 후로 오랫동안 그 친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이제야 알게 됐다. 나는 그때 경증 교통사고 환자였다는 것을.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더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때로는 일상생활이 버거울 만큼 큰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새벽 글쓰기를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들도 돌아보게 됐다. 나의 어리석었던 행동들을 반성하며, 나도 다른 이들을 용서하게 됐다.
이런 상처들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 같은 불안을 느끼게 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각자만의 공황장애를 안고 살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교통사고 환자처럼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차에 치인 환자 말이다. 회복을 위해 나의 상처를 알리고, 스스로에게 쉼과 위로를 주는 건 어떨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조용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건 필수다.
그리고 그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이 사고는 네 탓이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이 상처가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때의 상처로 성장한 당신이, 그 시절 아파했던 자신을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시절의 아픔을 안아주는 날까지, 천천히 걸어가도 좋다.
(글에 등장하는 노래)
위로-어반자카파
https://www.youtube.com/watch?v=yOHv5yjsk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