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의 노트
하늘은 높고 바람은 가벼웠다. 하지만 미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평소처럼 편의점 알바를 나간 엄마.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고 현관문 쪽으로 가는데, 미나는 문득 멈춰 섰다. 신발을 신으려는데 안방 문이 열렸다.
"미나, 학교 가니?"
아빠였다. 며칠 새 야윈 아빠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이 시간에 아빠가 있을 리가 없는데... 놀란 미나가 시계를 봤다. 8시였다.
"아빠, 회사 옮기려고 그만뒀다... 잠깐 쉬었다 다른 곳으로 갈 거야."
"...? 뭐? 왜?"
"자세히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 아무래도 그게 더 나을 것 같더라고. 우리 미나랑 행복하고 즐겁게 살려고 일하는 건데 미나 보기도 점점 더 힘들어지고, 사람도 너무 힘들고..."
어쩐지 승진 후, 아빠의 얼굴은 뭔가 더 까칠해지고 어두워져만 갔다. 아빠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스쳐갔다. 지난 며칠 동안 뭔가 고민이 많은 듯 말이 없던 엄마의 얼굴도 스쳐갔다.
"알겠어. 아빠....."
"그래 잘 갔다 와라. 저녁에 뭐 먹고 싶은지 아빠한테 연락 주고. 오늘은 아빠가 요리사다."
아빠가 억지로라도 밝게 웃어 보였다. 잠깐이지만 힘을 내려는 아빠의 기세에 미나도 웃어 보였다.
'노트에 적었던 소원이 이렇게 되어버렸잖아....'
문을 열려던 미나가 잠깐 멈칫한 채 아빠를 돌아봤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직접 말할 순 없지만, 아빠라면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 이건 내 친구 얘기인데."
미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 친구를 괴롭히던 애가 아프대. 그런데 아픈 애가 내 친구보고 도와달라고 그러나 봐. 그러면... 괴롭히던 애를 도와줘야 돼? 아님 계속 아프길 바라야 돼?"
"...?"
아빠는 잠깐 고민에 잠긴 듯했다. 미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마음으로는 아프길 바라는 게 당연하지. 누가 뭐래도 그건 사람 마음이니까. 하지만 말이다..."
아빠가 미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도움을 주길 계속 거부하면 아마 미나 친구 마음도 계속 어두워지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를 미워하기만 해도 마음에 그늘이 진단다. 아빠라면 차라리 그 친구의 소중한 시간을 '미움'보다 '행복'을 선택하는 데 쓰라고 하고 싶구나."
아빠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도와준 후에 괴롭히던 애가 다 나으면 너 그때 왜 그랬냐 정식으로 맞짱을 뜨는 거지. ㅎㅎㅎ"
아빠가 갑자기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격투를 준비하는 모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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