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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사라진 노트

미나의 노트

by 꼬르륵

학교에 있는 동안 미나는 내내 집에 돌아갈 시간만 기다렸다. 집에 돌아가서 노트를 꺼내고 적을 것들을 몇 번을 곱씹고 곱씹었다.


'최수빈이 깨어나서 다시 학교에 돌아오게 됐으면'


이 소원을 가장 먼저 적을 생각이었다.


'채린이와 다시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기를'


두 번째로 이 소원을 적을까 하다가 그동안 노트에 적은 소원의 결과를 떠올려봤다. 괜히 적었다가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까. 미나는 채린과의 일은 직접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채린이는 미나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다. 괜히 탈 나게도 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채린이라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받아줄 것 같다는 믿음도 있었다.

좀 있으면 있을 기말고사 성적이 너무 떨어지지 않게 전교에서 6등 정도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해볼까... 그것도 적으면 결국 또 벗어날 수 없는 짐이 되어 돌아올 것 같았다. 막상 그동안 노력 없이 그냥 얻었을 때 겪은 대가를 생각해보니 딱히 적을 것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의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시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마지막 하교 시간을 알리는 종을 기다리며 미나는 자꾸만 가방 속에 손을 넣어 노트를 만지작거렸다. 쉬는 시간에 쓸까도 생각했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노트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훑는데, 문득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지만 모두 제 할 일에 바빴다. 미나는 조심스럽게 가방 지퍼를 닫았다.


"미나야"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미나가 고개를 들었다. 최수빈의 절친 정지소였다.


"어?"


"아까 담임 선생님이 너 찾으시는 것 같던데"


"어? 그래. 아까 아침에는 아무 말씀 없으시던데..."


"아니야. 아까 너 찾으시더라고. 교무실에 한번 가봐"


정지소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았다. 지금까지 따로 부르시는 일은 없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미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복도를 따라 걷는데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왜 정지소가 그 이야기를...?'


보통 담임 선생님의 전달사항은 반장을 통해서 전달됐다. 미나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멀찍이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정지소가 보였다. 정지소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미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화면을 내렸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엎드려 잠을 자거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미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확인하려다 멈췄다. 괜히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만약에 담임 선생님이 미나에게 할 말이 있으시면 하교 시간에 들으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을 마친 후, 담임이 교실로 들어섰다.


"자, 오늘은 특별한 전달사항 없다. 다들 기말고사 준비 잘 하도록"


담임은 그 말만 하고 바로 교실을 나섰다. 미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도 아무런 기색도 없었다. 미나는 정지소를 바라봤다. 미나와 눈을 마주친 정지소가 되려 왜 그러냐는 듯 미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가서 물어볼까도 싶었지만 미나에게는 학교 후 할 일이 있었다.

학교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미나는 집을 향해 뛰었다. 이제 집에만 도착하면 모든 것을 되돌려놓을 셈이었다. 집에 가까이 갈수록 미나의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그동안의 죄책감을 다 떨쳐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설레기까지 했다.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선 묘한 불안감이 꿈틀거렸다. 괜한 기분일 거야. 미나는 애써 그 느낌을 밀어냈다.


"하아... 하아... 하아..."


현관문을 열고, 방문을 열고 미나는 서둘러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가방 속으로 손을 뻗었다. 수학 자습서, 필통, 그리고 학원 교재들. 손끝이 익숙한 감촉을 찾아 가방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있어야 할 노트... 노트가 없었다.


'뭐지? 왜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미나는 계속해서 가방 속을 뒤적였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가방을 뒤집어 바닥에 털기 시작했다.


"쨍그랑"


쏟아지는 물건들끼리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그곳엔 노트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미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 사이로 노트는 보이지 않았다. 손은 계속 떨렸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노트가 사라졌다.


그 순간 정지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황급히 휴대폰을 내리던 모습, 묘하게 긴장했던 눈빛. 미나는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설마... 정지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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