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준수의 고민

미나의 노트

by 꼬르륵


일주일 전, 이른 오후.

준수는 교문에서 미나가 뛰어나오는 걸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준수가 손을 들어 부르려는 순간, 미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미나야!"

준수가 뒤따라 뛰었지만 미나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준수는 한숨을 쉬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발밑에 떨어진 노란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미나 거 아닐까?'

준수는 노트를 집어 들었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노트를 펼쳐 주인을 확인하려던 준수는 잠시 망설였다. 남의 노트를 함부로 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연락처라도 적혀 있어야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준수는 조심스럽게 노트를 열었다.

첫 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장에도, 세 번째 장에도. 필기 노트치고는 이상하게 비어 있었다. 그러다 중간쯤에서 드문드문 적힌 문장들을 발견했다.

'최수빈.... 제발 사라졌으면'

준수의 손이 멈췄다. 최수빈. 그 이름을 본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아빠가 승진했으면'

'내가 전교 1등이 되었으면'

'예뻐졌으면'

준수는 노트를 천천히 넘겼다. 많지 않은 내용이었다. 얼마 안 되는 수학 공식 몇 개와 이런 문장들뿐. 마치 소원을 적은 것 같았다.

준수는 노트를 덮으려다 다시 최수빈의 이름으로 돌아갔다. '사라졌으면'. 그 표현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최수빈은 두 달 전쯤부터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준수는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복도에서 가끔 마주치던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오지 않았고,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의식불명상태라고 했다.

'설마...'

준수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노트에 쓴다고 소원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하지만 가슴 한편이 불편했다.

그리고 전교 1등. 미나가 지난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을 때 준수는 정말 놀랐었다. 물론 미나를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미나는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미나가 갑자기 전교 1등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주변 아이들도 모두 놀라워했다.

준수는 노트를 다시 보았다. '내가 전교 1등이 되었으면'. 정말 이게 이루어진 걸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준수는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내일 미나를 만나면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그날 저녁, 준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책을 읽으며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데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팔에는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학생이야?"

"네."

준수가 대답했다.

"아저씨가 지금 카드를 놓고 와서 그런데 나중에 결제할 테니까 일단 저것 좀 줘 봐."

남자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바로 담배 진열대였다. 어쩌다 간혹 이른 저녁에도 진상 손님이 있긴 했지만 거의 한 달에 한 번꼴이었다. 아저씨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간 시선에는 검은 문신이 울퉁불퉁 움직이고 있었다. 준수는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저, 그게... 사장님께 먼저..."

준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려는 순간, 남자가 카운터에 몸을 기댔다. 편의점 조명이 남자의 얼굴을 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응? 뭐?"

그 한마디에 준수의 입이 얼어붙었다. 사장님은 혹시나 이런 진상을 만나면 일단 사장님께 전화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준수가 전화기에 손을 대는 순간 뭘 할지 알 수 없었다.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있다 한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준수는 결국 아무 말 없이 담배를 꺼내 주었다.

"그래, 착하네."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담배를 받더니 편의점 문을 나서며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

문을 열고 나서는 아저씨의 등에 울퉁불퉁한 살들이 꽉 낀 티셔츠까지 춤추게 만들었다. 준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에게 건넨 담배와 똑같은 담배 하나를 들어 찍어보았다.

4,500원.

사장님께 말을 하면 사장님은 뭐라고 하시진 않을 거다. 하지만 준수는 어쩐지 씁쓸한 기분과 무력감에 읽던 책을 읽지 못하고 잠시 편의점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오늘 주운 노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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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들풀 같으나 은근히 강한 사람, 연년생 남매를 키우며 대화를 배우는 사람, 라디오와 음악으로 기쁨과 위로를 주고 싶은 사람 입니다. 건강하고 무해한 글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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