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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20. 2021

남편이 준 꽃이 먹을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아름답게보기2

나는 꽃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도 꽃으로 해놓았을 때가 참 많았다. 어른들이 찍으시는 그런 현실적인 사진이 아닌 나만의 감성이 담긴 어딘가 몽환적인 꽃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보며 그 꽃을 본 순간을 추억하곤 했다.


그래서 남편과의 연애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자주 꽃 사진을 올렸던 것 같다. 백일을 기념하며 받은 꽃이며, 이백일, 일주년, 화이트데이, 다투고 화해할 때 받은 꽃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받은 꽃을 나는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서 프로필로 했었다. 교회에서 만나 연애를 했던 우리는 결혼 전까지는 조심스러워 비밀로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커플사진만 안 올렸지 '나 연애 중이에요~'라고 광고를 했던 게 아닌 가 싶다.


어쨌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초반에는 우리는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 결혼기념일에 꽃과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점점 꽃다발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이유였다. 결혼을 하고 막상 가계를 꾸려나가다 보니 큰돈이 아니더라도 내가 지금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늘 생각하게 됐다. 그렇지만 꽃을 받고는 고. 사오지 말라고 하면 평생 못 받을 것 같고.


"여보, 나 이제 장미꽃 한 송이만 받는 게 더 좋더라. 뭔가 더 우아하고 세련된 것 같아. 그게"


내 나름대로의 자구책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남편은 내 말을 그대로 믿고 때때로 장미꽃 한 송이로 내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했다. 그렇게 결혼 4년 차, 첫 아이를 임신하고, 또 5년 차에 두 번째 아이까지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시간이 꽤 흘렀다.


그리고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남편이 꽃을 사 왔다. 장미꽃 한 송이가 아닌 꽃다발이었다. 오다 주었다면서. 결혼기념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축하할만한 사건도 없었다. 현관에서 손에 든 서류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꽃을 쭈욱 내밀며 남편은 어색해했다. 나도 웃고 남편도 웃고. 그렇게 꽃을 주고 남편은 씻으러 갔다. 남편이 준 꽃 뭉치(?)를 식탁에 두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차라리 먹을 걸 사 오지'


불쑥 올라온 마음이었다. 그리곤 흠칫,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뭐랄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이제 정말 아줌마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머릿속엔 이 나라의 부동산 정책과 전셋값. 이달 카드값, 그리고 카드값을 뺀 나머지 여유자금. 당근 마켓에 올릴 물건, 그리고 살 물건, 키즈카페 정기권 등등 돈과 관련된 것들만 있다.


그래서 장미꽃도, 꽃다발도 돈으로 보였다.


(다시)그래서 이제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나이는 들지언정 아줌마, 엄마라는 내 신분에 패배감과 삭막함을 끼어넣지 않을 거다.


꽃을 좋아하는 아줌마, 사랑받고 표현하는 것을 여전히 가치 있게 생각하는 아줌마.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얼마나 싱그러운가.


내가 브릿지에 일상 아름답게 보기 시리즈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며 나이 드는 삶. 현실적이나 감성은 살아있는 삶. 될까?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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