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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Aug 18. 2021

어머니와 프리지아

일상아름답게보기1

내가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다. 2주간의 조리기간이 얼추 끝나갈 무렵 반나절만 집으로 외출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후 3주 차인 신생아 아기를 바로 데려가 누이기에는 집 안이 준비가 덜 된 게 신경 쓰였다. 둘째는 예정일보다 보름 정도 더 일찍 태어나서 아기 속싸개 세탁은커녕 출산 가방도 다 못 싸고 분만실에 들어갔더랬다.   


집에서 어머님이 첫째를 보고 계실 때였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면 무리하지 말고 아기침대 커버랑 새로 산 속싸개, 가제손수건을 다 세탁해야지. 그리고 내일 청소도우미를 불러서 침대 밑, 창틀, 장롱 위 먼지청소도 하고, 욕실 곰팡이 제거도 해야겠다. 신생아는 아직 호흡기능이 약하니까 가습기도 다시 작동시켜보고, 그것도 더러우면 씻어야겠네...'


조리원을 나서서 집으로 향하는 길, 바닥을 발로 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발목 통증에 '아직은 무리하면 안 되겠다. 오늘은 빨래 위주로 챙겨야지'하며 집 근처에 도착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는데 길가 꽃집이 보였다. 평상시에는 있는 지도 잘 몰랐던 꽃집이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앞 진열대에 꽂힌 프리지아 꽃다발들 때문이었다. 3월 말, 노란 프리지아 꽃잎이 너무도 기분 좋은 색채감을 띠며 가게 앞 진열대를 한껏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다발의 프리지아가 건너편에서 길을 걷던 나에게까지 그 향을 퍼뜨렸다. 길가에 벚꽃은 분홍빛으로 피어있고, 파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찐 노란 프리지아까지.


산후조리원에서 산후풍과 소양증을 앓으며 겨울을 사는 것같이 싸매고 다녔는데 밖으로 나오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싱그러운 장면에 나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오천원. 프리지아 다발에 한글로 오천원이라고 쓰여진 골판지가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오천원으로 오늘 하루 행복할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좋지'


길을 건너 가게로 들어가 프리지아 꽃 한 다발을 샀다. 꽃을 들고 걸으면서도 자꾸만 품 안에 노란 프리지아로 눈길이

갔다. 그러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골목, 벚꽃과 하늘을 배경으로 내가 산 프리지아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와~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딱이다~'


이제는 발목 통증도 잊은 채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렇게 도착한 집 앞. 띠띠띠-띠띠띠띠띠. 현관 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집 안에서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침 통화가 안되셨던 어머님은 내가 오는 줄 모르고 계셨다. 번호를 마저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어머님~저예요."

하고 웃으며 들어섰다. 그러자 우리 어머님,


"아이고, 내가 너한테 줘야 되는데 니가 나한테 꽃을 사주나"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는 게 아닌가. 순간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지. 생각하다가 재빨리

"아, 네;;;. 헤헤. 프리지아가 너무 예쁘게 피어서요."

라고 답했다. 너무 오래 생각했으면 어머님이 눈치채셨을 텐데 다행히도 내 눈치가 빨랐다. 어머님은 기분 좋게 내 손에 있는 프리지어 꽃다발을 받으시고는 어머님이 주무시는 방 안으로 들고 가셨다. 어머님의 뒷모습이 경쾌했다.


"우에 밥은 먹었나, 네가 오는 줄 알았으면 너 좋아하는 부침개라도 해놨을 텐데"

다시 방을 나오시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첫째는 오랜만에 본 엄마를 보고 생긋생긋하였다. 바닥에 앉아 아이를 안으며 나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조리원에서 먹고 출발했어요. 둘째 오기 전에 이것저것 정리 좀 해두려고요"

"그래 그래. 안 그래도 내가 알면 준비를 해놓을텐데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코로나때문에 밖에 잘 안 나가신다는 어머님은 갑작스러운 며느리의 등장도 썩 좋으셨나보다. 아니면 프리지아 꽃 덕분인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제야 피식 웃음이 났다. 열린 문 사이로 어머님이 책장에 올려 둔 노란 프리지아가 보였다.


'저 프리지아는 원래 어머님을 위한 거였던 걸로 하자.'


그러면 어떠랴.


때때로 저 하늘의 별도, 저 들판의 꽃도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내 감상용 꽃이 어머님을 기분 좋으시게 한다면야. 우리 어머님은 아직도 그 꽃이 어머님을 위한 내 선물이라고 알고 계신다.


그리고 나는 일이 렇게 된 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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