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에세이 Chapter.1
방송국 시계는 다른 시계보다 빠르다는 말이 있다.
어느덧 또 다가온 생방송 시간.
‘ON AIR(생방송)’ 불이 켜지기 불과 3, 4초 남겨두고 스튜디오에 뛰어들어갈 때면 라디오 PD 14년 차지만 ‘호러’도 이런 ‘호러’가 없다. 그래도 미혼일 때는, 그리고 신혼일 때는 나의 생활을 이 방송국 시계에만 맞추면 됐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더구나 연년생 남매를 낳아 키우다 보니 나는 나의 일상을 '방송국 시계'와 '육아 시계'에 동시에 맞춰야 하는 난제와 마주하게 됐다.
안 그래도 빠른 방송국 시계에 필수적으로 사수해야 하는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감기와 수면 장애, 나중에는 코로나, 장염 소식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비상비상' 빨간 불이 들어오던 머릿속 시계가 나중에는 급기야 터져버리고, 멘붕 (정신적 붕괴) 상태로 주저앉아 버렸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나도 이제 제법 방송국 시계와 육아 시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섯 살, 첫째 아이의 호기심 넘치는 질문이 버거워지기 시작한다면, 나도 모르게 다섯 살 둘째 아이에게 더 빨리 신발을 신으라고 재촉하고 있다면 나는 생각한다.
'한계가 왔다. 나 힐링이 필요해.'
이렇게 내게 '건강한 영양분'을 공급해 줄 시간이 됐다는 깨달음이 오면 나는 내게 세 가지 힐링 모먼트를 선물한다. 일명 3멍. 풀멍, 물멍, 하멍이다.
첫 번째, '풀멍'(풀 바라보고 멍 때리기)은 가벼운 운동화가 필수다. 그리고 혼자 점심을 먹어도 외롭지 않은, 적당히 외지면서도 맛있는 식당이 필요하다. 누구와도 점심 약속을 잡지 않고 나만의 아지트에 가서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배불리, 아주 야무지게 꼭꼭 씹어 먹는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평소 회사에 출퇴근하며 눈여겨봤던 공원, 둘레길을 걷다 보면 생각지 못한 감동이 있다. 건물 사이에 핀 장미나 타일 틈새에서 자라난 들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와... 너는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올라오니?" 하고 감탄한다. 그렇게 길가 풀과 꽃을 보면 어느덧 마음 한편에 긍정적인 기운이 솟아오른다.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온 들풀처럼.
두 번째 힐링 모먼트는 물멍(물 보고 멍 때리기)을 할 때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무서운 게 '심심하다'는 소리다. 그럴 때 제일 좋은 게 '수영'이었다. 물에서 한바탕 놀고 온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새근새근 잠드는 걸 본 후로 우리 부부는 ‘유레카!’를 외친 뒤 주말마다 수영을 다닌다.
물속만 바라보며 앞으로 앞으로 손을 뻗고 나아가는 동안, 물안경에 비친 푸른 물의 색감과 사방의 소음이 사라지고 물속 고요만이 나의 귓가를 맴돌 때면 육아 시계, 방 송국 시계도 ‘off’가 된다. 나는 짧은 몇 분의 수영 동안 물속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고요'로 나를 다독인다
마지막으로 내게 힐링을 주는 또 하나의 멍은
'하멍'(하늘 보고 멍 때리기)이다. 때마침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집에 살고 있다. 어떤 때는 새벽 하늘을, 어떤 때는 노동을 마치고 터벅터벅 줄지은 차들 위 하늘을 바라본다.
가만히,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해야 한다고 나를 재촉하지 않은 채 그렇게 하늘을 바라 보면 내 마음의 평수도 그만큼 넓어진다. 얼마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데이식스'의 〈Happy〉라는 노래를 선곡해 틀었다. 그 노래엔 이런 절절한 가사가 나온다.
"May I be happy(나 좀 행복해져도 될까요?),
답 좀 알려주세요~"
어디에선가 누군가 이 노랫말처럼 행복하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냐고 한숨 쉬고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다. 나의 '3멍'을. 아니면 자기만의 힐링 모먼트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해야 하니까. 특히나 엄마는 더더더 행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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