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남기는 삶의 작은 이로움

라이트 에세이 Chapter.5

by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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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하다 보면 아무리 나를 비틀어짜도 사랑이라는 것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때가 있다. 빡빡한 사회생활을 하며 매일매일 해야 하는 밥, 설거지, 빨래, 아이들의 유치원 가방 챙기기, 소풍과 견학 챙기기, 집안 청소. 그러다 지쳐서 '누가 더 많이 하고 있나' 남편과 팽팽한 기싸움까지 하는 날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짜증과 화만 그득해진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이 화까지 낸 날이면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자책하느라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처럼 육아가 힘들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고됨을 덜어주는 것도 역시 '육아'였다.
깨끗하게 씻은 말간 얼굴을 들이밀며 오늘 하루 유치원 생활을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첫째, 잠들기 전 불 꺼진 방에서 한참을 노래 부르는 둘째. 그런 아이들을 볼 때는 '아, 나는 그동안 행복이 뭔지 모르고 살았었구나. 행복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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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어느 토요일 낮이었다. 남편이 첫째를 데리고 외출한 사이, 나는 다섯 살 아들과 함께 집 근처 한강을 찾아 산책을 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근처 카페에서 바나나주스까지 야무지게 사 먹고 집에 들어오니 노곤함이 밀려왔다. 둘째가 동화책 그림에 빠져 있는 사이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잠시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둘째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마구 비비더니 계속 뽀뽀를 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내가 일어나지 못하자 둘째는 "엄마, 힘들어?"하고 와다다다 침실로 뛰어갔다. 그러더니 아이가 자기 몸만 한 베개를 내 머리맡에 받쳐 주고, 이불을 폭 덮어주었다. 그 뒤로 아이는 떼 한 번 쓰지 않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책을 보며 놀았다.

정말 완벽한 평화였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내 아들이 나에게 베개를 받쳐 주고, 이불까지 덮어주었다'고 자랑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도 자기 아들(?)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이틀 전, 피곤해서 먼저 잠든 남편 입에 뭔가 차가운 게 쑤욱 들어오더란다. 비몽사몽 눈을 떠보니 둘째가 자기가 먹던 포도 알을 아빠 입에 넣어주었던 것. 아들은 다섯 알을 아빠 입에 다 밀어 넣고서야 만족하고 거실로 나갔다고. 자고 일어나 보니 포도 한 알이 이불에 떨어져 다 터져 있었지만 남편은 그저 행복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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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도전하게 됐다. 가장 먼저, 나는 기계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운전을 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에 데리고 다니기 위해서였다. 뒷좌석에 아이들을 태우고 처음 운전을 하던 날, 나는 바들바들 떨며 운전대를 잡고 신께 기도하며 달렸다. 하지만 이제 내 코너링은 예술이다. 훗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나 자신을 더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의 엄마, 선생님, 소아과 간호사님, 아파트 단지 아이들의 엄마들. 내 몸뚱이 하나만 챙기며 살면 굳이 말을 걸지 않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나의 삶은 더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고 나니 가장의 무게가 보였고, 엄마들의 고민이 보였고,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낳은 후, 나는 사람들이 더 공감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조직 내에서 동료를 대할 때도 더 기다릴 수 있게 됐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도 돼요"라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육아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채워준 셈이다. 더 넓게 세상을 보는 눈, 더 따뜻하게 사람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더 잘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중에 단연코 최고는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었다. 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안다는 것. 나는 그것이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맞다. 육아는 쉽진 않다. 하지만 삶에 이롭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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