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시계는 더 빠르다. 방송국에 출근하는 엄마의 시계는 더 빠르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사무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작되는 엄마들의 하루. 그리고 방송에 대한 엄마의 진심.
방송국에서 일하는 엄마의 삶과 육아 이야기.
“어머니, 투약의뢰서를 보내주시지 않아서, 약을 먹이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 코를 훌쩍거렸다.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 앞주머니에 콧물감기약을 넣어놓고, 어린이집 ‘어린이 노트’ 앱에 투약의뢰서를 올린다는 게 ‘이재명 당 대표 체포동의안 속보’ 처리 때문에 깜빡했다. 그때부터 나의 자책은 시작된다. 결국, 생각의 끝은 불특정 대상에게 향한다.
‘민생, 민생 하는데 워킹맘이 아픈 애도 챙기면서 일하게 해주는 게 민생이다. 정치인들아!’
워킹맘은 죄인이다. 회사에서는 남들처럼 근무 시간 꽉꽉 채워 일하지 않고, 회식도 번번이 빠지는 죄인, 집에서는 다른 엄마보다 데리러 늦게 오고, 건강한 가정식 챙겨주지 못하는 죄인. 요즘은 그래도 시대가 변해 죄인이라고 하지 않지만, 항상 눈치가 보인다. 아이들 소풍, 도시락, 약, 수영 기저귀, 부모만족도 조사지 등등 잊어버리지 말고 가방 안에 넣어야 할 것도 많고, 회사에서 기억해야 할 일정도 많다. 그야말로 적자(적어야)생존이다. 냉장고 벽은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적힌 종이들이 펄럭인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이런 행복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마치 내가 앉아서 보던 세계를 일어서서 보는 느낌이다. 아이와 하원길에 야경을 함께 보면 그 순산을 박제하고 싶다. 아름다운 그 순간을 내 아이들과 보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이 사회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싫으나 좋으나 이 사회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사회다. 내가 떠나도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 나가야 할 곳이다. 욜로(한 번뿐인 인생, 즐겨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각자도생. 이런 말이 애 키우는 엄마에게는 참 비현실적이다. 나만 즐거우면 그만 일 수가 없고, 이번 생은 망했다며 다 포기하고 받아 들일 수도 없다. 특히 남의 도움 없이도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이 책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엄마에 대한 글이자, 방송국에서 일하는 엄마가 내 아이들이 자라날 사회를 위해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누구보고 뭐라 할 정도로 완벽한 엄마는 아니다. 어느 날은 도저히 밥을 차릴 수가 없어 치킨으로 아이들의 밥을 때우기도 하고, 남편과의 말다툼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늘 배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사회의 모습에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특히 출산율과 출산 지원 정책을 방송에서 많이 다루면서 느낀 것은 ‘엄마들에게는 정치인들의 밥그릇 다툼보다 정책이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먹고 사는 문제, 국민이 아이를 키우는 문제가 부디 공천과 정권 교체보다 우선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더 많은 영역에서 책임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