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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Dec 14. 2023

당당하게 살아

그 빵 한 봉지

깔끔하고 멋진 하얀 대문의 2층집.

이제부터 살 곳이다.


전도사님 댁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그간의 사정과 사건 이야기를 들은 전도사님이 셰어 구하는 집을 수소문해 주셔서 올 수 있었다. 2층엔 주인 장로님 가족 3명이, 1층엔 방 두 개에 남자 5명이 있었고 나는 혼자서 입구 옆 가장 큰 방을 쓰게 됐다. 1주일에 140불, 1주 치는 보증금으로 먼저 내고 나니 수중에 남는 건 두 주 치 방값정도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간단히 소개를 했더니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묻는다. 1명 빼고는 모두 오빠들이다. 워홀 오자마자 폰 잃어버리고 길바닥에 나앉을 뻔한 이야기를 듣더니 다들 놀라며 뭐라도 챙겨주려고 한다.

-이 치약 너 써
-휴지는 있어?

셰어생들은 원래 주에 10불씩을 모아서 같이 장을 보고 요리해서 밥을 먹었다는데 내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10불 내는 것도 부담이다.

-넌 그럼 너 먹을 거 따로 장 봐서 먹어.

눈치챈 A오빠가 제안한다. 말은 그래놓고 반찬이며 식재료를 자꾸 나눠준다. 미안하게.
과일, 고기는 생각도 못했다. 빵도 하나 3~5불이었기에 그림의 빵(?)이었다. 나는 99센트 밀가루 한 봉지를 사서 일주일을 살았다. 전과 수제비, 대충 구운 빵(밀가루 덩어리?)이 끼니였다.  오빠들에게 얻은 채소 조금과 조미료로 요리 흉내를 내며 지냈다.



맘 편히 놀고 쉴 형편이 아니었기에 이력서를 내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녀야 했는데 주변길을 하나도 몰랐다. A 오빠가 자신도 이력서를 내야 된다며 동행해 주기로 했는데 2, 3불 되는 버스비도 부담이었다. 버스 타면 몇 정거장이면 될 길을 왕복 1시간 이상씩 걸어 다녀야 했다. 이번에도 A오빠는 나를 배려해 같이 걸어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길을 안내해 줬다. 큰 공장에 들어가면 수입이 안정적이라는데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마음이 위축됐다.

그날도 공장지역을 돌며 이력서를 내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빵공장이다. 마트 꽤 좋은 자리에 존재감을 자랑하며 진열되는 꽤나 비싼 빵 브랜드였다. A오빠는 저기도 이력서를 내자며 경비실을 찾아 무작정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은 별 감흥 없이 이력서를 두고 가라고 했다. 여기도 안 되겠네. 힘없이 돌아나가는 길에 비닐도 뜯기지 않은 빵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유통기한도 남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굴삭기 같은 중장비로 옆에 있는 커다랗고 파란 산업용 쓰레기통에 버리다 떨어진 것 같았다. 버리는 거면 우리 줘도 되는 거 아닐까?


-저 이거 혹시 가져가도 되나요?


갑자기 희망에 차서 뒤를 돌며 말했다. 방금 그 직원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옆에서 주춤하던 오빠도 나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른 빵봉지를 하나씩 주워 뛰어나왔다.


-우와 득템이다.
-곰팡이도 없고 멀쩡한데 왜 버린 거지?
-하나 더 가져올 걸 그랬나?


빵봉지 하나에 둘 다 기분이 좋았다. 비싼 식빵을 먹은 며칠 뒤, 이력서가 어떻게 됐나 물어볼 겸 빵이 있으면 또 주워올 생각에 다시 빵공장으로 향했다. 사람이 필요없단다. 바닥에 떨어진 빵은 폐기해서 사료로 쓸 거라며 가져갈 수 없다 했다. 빵을 사료로? 잘 이해되지 않지만 아쉬웠다. 빵을 주워간다는 소문이 나면 안 되긴 하겠다. 그래도 아쉽다.


그런 소소한 일기를 SNS(싸이oo)에 가끔씩 올리고 있었다. 내가 일일이 전화해 소식을 전할 순 없으니 소식이 궁금한 사람은 들어와서 보라고. 댓글이 달렸다.


성은아, 당당하게 살아


엄마다.
가장 부끄러운 이야기를 엄마가 읽고는 당당하게 살라 했다. 돈 한 푼 두 푼에 주눅 들고 위축된 내게 그 말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부끄러웠다. 빵봉지 하나에  울고 웃는 나를 안타까워하는 게 느껴졌다. 돈이 없다고 양심도 체면도 없다니.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내가 뭐 장발장도 아니고.

그래. 안 되면 돌아가지 뭐.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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