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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Jan 24. 2024

모두와, 각자의 싸움

별별이야기 | 유진희, 권오성, 5인 프로젝트팀, 이애림, 이성강, 박재

지금 당신이 보는 문제는 무엇인가?


딱히 사회 문제에 앞장서는 운동가는 아니지만 모두들 한 번쯤은 봤으면 좋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하고 6명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2003년 인권에 대해 다룬 영화 '여섯 개의 시선' 애니메이션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영어 제목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If You Were Me: Anima Vision

당신이 나라면, 내가 그 입장이라면 무슨 생각,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인권과 차별을 다루는 이 영화는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과 상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6개의 단편 영화는 (몇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잔잔하고 조용하게 흘러간다. (어쩌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실사영화와 달리 자극적이거나 직접적인 묘사가 없어 몽환적인 분위기도 더해진다. 그러나 주제만큼은 날카롭다. 전체 러닝타임은 72분이지만 10여분씩 나뉘어 있으니 한 편씩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정확히는 박재동의 단편 <사람이 되어라>때문에 별별이야기 전체를 보게 되었다. 그만큼 <사람이 되어라>가 주는 메시지의 신랄함이 강력하다.

사람이 되어라 (출처: 네이버영화)


이 단락은 스포이니 직접 볼 생각이거나 패스하실 분은 패스하셔도 된다.
아이들은 동물이고 어른들은 사람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야 사람이 된다고 모두가 말한다. 주인공은 어느 날 우연히 나비에 이끌려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곤충들과 놀며 사람의 얼굴로 바뀐다. 그렇게 학교에 갔더니 이제껏 사람이 되라던 선생님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하라며 온갖 구박과 폭력으로 다시 동물로 바꿔버리는데, 알고 보니 어른들은 모두 사람의 탈을 쓴 동물이었다는. 뼈아픈 이야기다. 스포 끝




당시만 해도 박재동의 인지도와 파워는 대단했다. 한겨레신문 창간 때부터 8년간 만평을 그리다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박재동의 TV만평>이 뉴스에 고정적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해학과 풍자로 두루 인정받았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내 눈에도 꽤나 흥미진진해서 일부러 찾아봤던 것 같다. 시사만화계의 거장이자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꽤나 큰 족적을 남긴 애니메이터인 그는 2011년 미투사건과 2016,17년 한예종 학생 성희롱사건의 가해자이면서, 2020년 박원순 시장 성추행피해자들을 만평으로 공개 조롱하며 물의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아직 경기신문 만평을 내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에서 제명될 정도로 사건이 심각하지만 그의 창작물마저 쓰레기라 평하기엔 그 내용이 아쉬워 작가와 별개로 봐주길 바란다. 박재동은 1992년 7월 22일 지면을 통해 직장 내 성폭력을 폭로한 만화 <여성이야기 다섯-꽃이라니요>를 그린 적이 있어 아이러니하다.





이애림 감독의 <육다골대녀>는 조용하게 골 때린다. 육(肉)이 다(多)하고 골(骨)이 대(大)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감독 본인의 이야기는 아니라면서도 뼈는 크다며 웃는다.
디지털 컷아웃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이애림의 세계는 어둡고 알싸하고 괴이하다. 애니메이션은 대개 공동작업인데 자신이 느끼는 '감'에 대해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워 혼자서도 퀄리티 있는 작업이 가능한 디지털 컷아웃 방식을 선호한다 말한다. 눈 반짝, 다리 가느다란 그림대신 덩치가 크거나 예쁘지 않은 여자들을 그리면서도(남자들도 덩치가 크다) 취향이니 자신의 눈엔 예쁘다는 감독의 말이 정감 있다. 자연적인 것도 인위적인 것도 취향에 맞으면 다 예쁜 거다.

육다골대녀 (출처: 네이버영화)


색채가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주인공들의 살인, 강간, 근친상간을 그려온 그는 유년기부터 20대 초반까지의 대부분을 악몽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 호빗들이 절대악 사우론과 맞서 싸우듯 이길수도, 극복할 수도, 해답도 없는 것에 쫓기다 에라 모르겠다 죽으면 깨어나는 그런 악몽. 악몽에 익숙해지고 극복하니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말하는 그녀는 강인한 화풍과 유니크한 내용으로 아직도 현실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감독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 담을 수 없지만 수많은 벽과 싸움의 면면이 작품과 감독들 속에 남아있다. 작품 속 인물의 모습 그대로 감독이 추한 얼굴을 가면으로  채 가치로운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고, 직접 온몸으로 부딪쳐 싸우기도 한다.


신체부위가 다 형성되지 않은 무형성장애아를 소재로 한 <낮잠>은 나른하며 따뜻하게 정상인 아버지와 장애인 딸, 주운 장애 강아지가 동등하게 소중한 생명임을 보인다. <자전거여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추억의 장소를 배회하며 이주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와의 싸움이 그려진다. 유일한 클레이 애니메이션인 <동물농장>은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처럼 양 떼의 무리에 낄 수 없는 염소에 대한 차별을 그리고, <그 여자네 집>은 아이를 가진 직장여성이 모든 집안일을 홀로 해내야 하는 평면적인 일상에서 탈출하는 싸움이다.



우리의 일상은 아담하고 수수하지만 모두 자신들의 싸움을 마주하고 있다. 당신의 싸움은 무엇인가? 그 대상이 너무 크다고 좌절하지도, 또는 너무 보잘 것 없는 것과 싸운다고 위축되지 말자. 내가 당신이라면 당신만큼 해내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각자의 몫. 별별이야기. 그러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

오늘도 당신의 건승을 바란다.




볼 수 있어 감사하긴 한데 저작권자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기를, 아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
낮잠 보기
동물농장 보기
사람이 되어라 보기
육다골대녀 보기
자전거여행 보기
그 여자네 집 보기


별별이야기2도 있다. 괜찮았다면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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