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지내며 그림책에 익숙해졌다. 그림책은 전부터 좋아하긴 했다. 아이 없는 20대 때부터 마음에 드는 그림책 몇 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 마음에 들 책을 고르다 보면 더 꼼꼼히 보게 되고 특별히 마음에 드는 몇몇 작가리스트를 가지고 새롭게 나오는 그림책들은 기다리기도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은 대개 그림이 선명하고 내용에 위트가 있는 것들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고 숨은 변화들을 발견하거나 이야기가 예상밖으로 진행되어 궁금해지는 내용이다. 대개 한국 작가 위주로 보곤 했는데 책 추천이 있으면 저장했다가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알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한 번씩은 접했을 것이다. 혹은 일러스트 에세이책을 좋아한다면 알 수도 있다.
요시타케 신스케. 1973년생인 그는 츠쿠바대학 대학원 예술연구과 종합조형코스를 수료하고 광고회사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십여 년간 퇴근 후 낄낄거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스케치집을 낸 이후 어린이책 삽화, 표지 그림, 광고 미술등을 다양하게 어우르다 한 편집자의 권유로 마흔 살에 처음 낸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가 베스트셀러가 된다. 사과 한 알을 깊이 있게 관찰하며 생각의 꼬리를 무는 어린이 이야기는 출간 첫해 일본에서만 13만 부, 3년 만에 22만 부가 팔렸다. 이후 내는 책들마다 다양하게 사랑받고 상을 받았다.
믿고 읽는 요시타케 신스케. 한 번 알게 되면 그 기발함에 멍~해진다.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달까. 둥글둥글 단순한 캐릭터들이 글과 어우러지면 이야기 속으로 잡아끄는 것만 같다. 대충 그린 듯 정교하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딱 맞게 그려내는 건 재능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따라 그릴 것 같은 그림인데 어쩜 이렇게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것 같을까?
그의 책은 쉽다. 그리고 어렵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기도 하고, 혹은 이런 생각도 한다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사과에 대한 생각들이거나 컵에 대한 생각이거나 혹은 죽음이나 나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가볍지 않은 주제들마저 유쾌하고 기발해서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만든다.
어른들은 밤늦게 자면서 왜 아이들은 일찍 자라고 하냐며 얌체 같은 어른에 대해 불만을 말하는 아이에게 눈 하나 깜빡 않고 능청스러운 대답을 하는 아빠는 동심을 지켜주는 건지, 어른들의 대변자인지 모호하지만 유쾌하고 재치가 넘친다. 아하! 아이한테 이렇게 대답하면 되는구나! 치트키를 얻은 느낌?
자고 일어나면 머리도, 옷도 헝클어지고 침자국이 나 있는 까닭도 밤새 남모르는 방문객들과 함께 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 하고 기발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그의 작업노트가 70권이 넘는다니 매해 쉼 없이 나오는 작가의 작품은 이 덕분인 듯하다.
가나가와현에서 가장 눈에 안 띄고 마음 약한 아이였다는 작가는 어릴 때부터 '뭘 해도 안 될 거야.'라는 걱정을 많이 했기에 정반대로 어떻게 하면 즐거워질까, 덜 심심할까 생각했다. 걱정 많은 어린이 요시타케 한 사람만을 웃기기 위해 그린 그림이 그림책이 되었다며 나만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전 세계 독자들이 웃고 있는 사실이 신기하다 말한다.
어릴 때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어리광 부리는 어른이 되었다며 모든 그림책의 주인공이 자신이라 말한다. 걱정이 많아 집 근처 반경 5km 벗어나는 것도 무섭다는 그는 자신처럼 걱정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웃겨준다. 걱정이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편할 만한 모든 표현을 배제할 뿐 착한 사람이아니라는데 왜 이리 순박해 보이는 건지.
정답을 알면 생각이 멈추기 때문에 끝까지 검색도 해보지 않는다며 얕은 자신의 지식 안에서 가설을 세워 해결해 본다는 그는 몰라서 더 이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걱정을 상상력의 원동력으로 삼고 무한한 꿈을 꾸다니. 혼나지 않으면서도 혼나는 게 무서워 온갖 상상을 펼쳤다는 그의 행적을 보면 걱정을 부정적인 눈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도 그렇다. 걱정만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과 웃음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걱정할 게 너무 많은 어른에게 보내는 마음처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