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망 Jan 18. 2024

상처받을 용기, 실패할 용기

Not going Anywhere | Keren Ann

쌀쌀한 바람 부는 날씨에 어울린다. 감성적이고 싶은 날. 모두가 깊이 잠든 밤이면 더욱 좋겠다. 정감 있는 기타 선율이 발랄하게 뛰놀고 목소리도 편안하고 잔잔하게 이어지지만 왠지 모르게 이 노래에선 찬 바람이 부는 것 같다.



Keren Ann(본명: Keren Ann Zeidel)은 2000년 데뷔해 프랑스와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스라엘 출신 싱어송라이터다.

Not Going Anywhere은 2003년 발표한 타이틀곡으로 SK텔레콤 CF와 더페이스샵 CF에 사용되어 국내에선 익숙한 곡이다. 케렌은 기자회견에서 프랑스에선 자신의 음악을 CF에 사용하도록 허락한 적이 없지만 해외에서 낯선 언어로 표현된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사용을 허락했다고 밝혔다.


이 곡은 원래 발매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케렌 스스로를 위해 만든 곡이라 한다. 다행히 케렌이 마음을 바꾸면서 그녀의 대표곡이 되어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게 되었지만 말이다.


평이하고 잔잔한 멜로디, 어쿠스틱 현악기 중심으로 심플하게 구성되어 듣기 편안하지만 가사를 곱씹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다. 쓸쓸하다.


수없이 오고 가는 인연에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나는 떠나지 않고 사랑을 주겠다며 되뇐다. 단단하려 애쓰지만 여려서 슬픈 다짐이다.


가사와 달리 방랑자로 살았던 케렌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같다. 러시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자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11살에 파리로 이주한다. 다양한 국가에서의 경험과 문화적 특색이 그녀에게 언어적 재능과 음악의 장을 넓게 열어주었지만 정체성의 고민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다국적 혈통이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여러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 같은 이미지를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한다. '음악에 쓸쓸함이 묻어있는 건 선원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이라니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노래였을까.




한창 변화하고 성장하는 시기,

20대의 나는 왜 이 노래를 좋아한 걸까?

흔히들 피어나는 꽃 같다는 푸른 봄, 청춘에 말이다.

몇 시간이고 쓸쓸한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었던 나는.



만화캐릭터마냥 엉뚱하면서도 쓸데없이 진지한게 단점이라 했었다. 행동은 가볍고 머리는 무거웠다.

Not going anywhere. 그냥 그랬다. 어떻게든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매일 행복하고 즐겁지도 않았건만, 무엇을 해야 할지 취업준비로 한 치 앞도 모르며 살고 있지만 머물러 있고 싶었다. 변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머무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 생에 이렇게 치열한 시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다시금 이렇게 뜨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두가 떠나가도 나는 이 자리에서 묵묵히, 그러나 치열하게 내 길을 걸어가며 언젠가 돌아올, 혹은 스쳐갈 다른 이들을 기다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랬어야 했는데. 변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행동은 무겁고 머리는 가볍다. 움직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 미지근함을 후회하며 산다. (아직 새해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1월부터 질척대는 후회의 글을 남기는 부담이 있다. 최대한 미뤄온 거란 변명을 덧붙이지만 말이다.) 뜨거움이 식고 치열함이 무뎌지는 것이 막지 못할 당연한 변화라 해도 있는 힘껏 버텨봤으면 싶은 마음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외면하고 단단해지려 노력하는 가사지만, 이제 난 조금 깨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막지 못할 일도 거슬러 볼 요량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타고 남은 연탄재마냥 발에 차일지라도 새해의 다짐을 움켜잡고 다시금 미련하게 읊조려본다. 처음 마음 그대로. 어디로도 가지 않겠다고. 깨지고 실패해도 멈추지 않겠다고.



2003 원곡 들어보기

익숙한 원곡버전



2023 Reedition 들어보기

2023년 1월 올라온 Not Going Anywhere Reedition버전

발매 당시 29살이었던 케렌 앤이 20년이 지나

49살의 녹진한 목소리로 다시 부르는 노래가 새롭다.



This is why I always wonder
I'm a pond full of regrets
I always try to not remember
rather than forget
내가 항상 궁금해하는 이유는
후회로 가득 찬 연못이라 그런 거죠
항상 잊으려 하기보다는
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This is why I always whisper
When vagabonds are passing by
I tend to keep myself away
from their goodbyes
내가 항상 속삭이는 이유는
방랑자들이 스쳐 지나갈 때
그들과의 작별로부터
피하려 하기 때문이에요

Tide will rise and fall along the bay
and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파도가 해안 따라 오르내려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People come and go and walk away
but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사람들이 오가고 떠나버려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This is why I always whisper
I'm a river with a spell
I like to hear but not to listen,
I like to say but not to tell
내가 항상 속삭이는 이유는
마법에 걸린 강이라 그런 거죠
듣기 좋아하지만 귀 기울이긴 싫고,
말하기 좋아하지만 이야기하긴 싫어하죠
This is why I always wonder
There's nothing new under the sun
I won't go anywhere
so give my love to everyone
내가 항상 궁금해하는 이유는
해 아래 새로운 건 없기 때문이에요
난 어디에도 가지 않으니
내 사랑을 모두에게 나눠주세요

Tide will rise and fall along the bay
and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파도가 해안 따라 오르내려도
그래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People come and go and walk away
but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사람들이 오가고 떠나버려도  
하지만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Tide will rise and fall along the bay
and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파도가 해안 따라 오르내려도
그래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They come and go and walk away
but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그들이 오가고 떠나버려도  
하지만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이전 07화 걱정은 즐거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