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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Jan 31. 2024

글을 쓴다는 건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 이오덕

글은 왜 쓰는 걸까? 초등학교를 다니며 일기를 쓰고 독후감을 쓴다. 숙제를 하기 위해 리포트를 쓰고 취업을 위해 자소서를 쓰고, 업무를 위해 보고서를 쓴다. 글쓰기는 어쩌면 살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인 듯하다. 그럼에도 쓰는 일은 어렵고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다.

학교 다닐 때처럼 글 쓰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떠한 일이 있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면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보이려는 생각 없이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넘칠 때면 글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끓어 넘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선교단체에서 일할 때 글쓰기에 대해 강의를 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갓 졸업한 파릇한 20대가 글쓰기로 뭔가 이뤄본 것도 없으면서 글쓰기를 말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여러 강의 주제 중에 나에게 맡겨진 것이었고 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자료를 찾고 준비했다.
대상은 대학생. 글을 잘 쓰는 방법론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을 다루기로 했다. 방법을 다루기엔 청자의 필요와 관심도가 달랐고 무엇보다 내가 능숙하지 않았기에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글쓴이 이오덕 선생님은 경북 영천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4년부터 1986년까지 43년간 초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으로 지내며 동화와 동시를 쓰고 한국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듬는 일을 해서 우리말 지킴이로 불렸다.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고, 퇴임 후에는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다. 지식인들이 쓰던 어눌한 번역말투와 일본말투의 잔재를 걸러내고 우리말과 글을 다듬은 <우리 문장 바로쓰기>(1992)와 <우리글 바로쓰기>(1989)는 명저로 꼽힌다. 또 '글짓기'를 '글쓰기'로 고쳐 쓸 것을 주장하고, 어린이의 말과 글이 훌륭한 문학이라는 믿음으로 10여 권이 넘는 어린이 문집을 간행했다. 1965년에 출간한 첫 저서 <글짓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외에도 <삶을 가꾸는 글쓰기교육>(1984),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1993) 등 5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이오덕 선생님과 저서<삶을 가꾸는 글쓰기교육>(1984)


<우리글 바로쓰기>(1989) 전에 나온 책들은 당시 지식인들이 쓰던 한문 투, 일본어, 영어번역 투 말 그대로인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선생님도 그런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그대로 남겨두었기에 이 책은 바른 글쓰기와는 조금 다르다 한다. (가끔 '미감아' 같은 낯선 한자어가 툭툭 걸려 매끄럽게 읽히지 않기도 한다) 경북글짓기교육연구회 회보, 교육자료, 교육신보 등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라 460페이지에 달하지만 실제 글 종류에 따른 쓰기 방법과 좋은 글, 나쁜 글에 대한 예시와 비평들이 포함되어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이오덕선생님은 글은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한다. 읽는 사람을 의식하면 잘 보이려 아닌 것을 꾸며내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쓰고 싶어서 써야 하고 쓰지 않을 수 없기에 쓰는 것이란 말이다. 아이들도 남에게 칭찬받을 만하지 않아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정직하게 써야 한다.



글이 곧 사람이다. 글에는 쓴 사람의 마음과 생활과 인품이 나타난다. 아이들의 그림에서 환경, 성격, 건강상태를 알 수 있고 글씨체에도 성격이 드러난다. 자신을 숨기려 재주로 쓴 거짓말에는 거짓된 인간이 그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글쓰기교육이 곧 인간교육이 되어야 한다 말한다. 생활을 가꾸는 일을 떠난 글쓰기교육은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교육이 된다. 동심은 헛된 욕심이 없고, 정직하며, 인간다운 감정이 풍부하다. 작가는 생각으로 진실을 만들지만, 아이들은 체험하고 살아가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것이다.


예부터 선생님을 글 가르치는 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림, 체육, 수학, 과학, 음악 등도 모두 말과 글로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이라며 모든 학습의 기본이 말과 글임에 주목한다. 또한 모든 학습의 마지막 목표는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깨닫고 행하는 것인데 이 길을 글로 가장 효과적이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고치는 것 또한 어린이의 느낌과 생각이 정직하고 순수하고, 살아가는 태도를 진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한다. 삶을 가꾸기 위해 글을 고치고 다듬는 것이다. 약삭빠르고 꾀부리고 영리한 어린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순박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진 어린이, 싱싱하게 살아 개성적이고 야성적인 어린이로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아동의 글쓰기를 강의자료로 가져온 것이 이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오덕 선생님은 어른들의 글쓰기도 아이들과 같은 방법으로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다. 몸으로 보이고, 말을 먼저 바르게 하도록 지도하며, 형식적인 말 대신 순화된, 살아있는 말을 쓰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고, 거짓말을 찾아내는 연습도 필요하다. 글감이 쓰는 이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삶 속 무언가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삶을 깊게 바라보고 정리하되 친근한 자신의 말로 진실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라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맨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며칠 전 남편과의 일화를 올리고 여러 댓글로 질타를 받았다. 내가 쓴 글에 대해 심각성을 제기하고 나의 비상식을 꼬집는 글에 티 내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너졌다. 밤마다 '내가 나쁜 엄마, 아내인가. 쓰지 말아야 할 걸 썼나. 글을 아예 안 쓰면 되는 걸까' 온갖 자책도 했다. 새로 글을 쓰는 것이 무섭기도 했다.  왜 쓰게 됐을까. 다른 글들은 논리적으로 정돈되지 않고 맴도는데 비해 경험한 일이라 감정적으로 쉽게 쓰였다. 깊게 다루기엔 무거워서 가볍게 쓰려했는데 오히려 내가 상황을 우습게 보는 것이 되었다. 현상 뒤의 마음과 문제를 깊이 헤아려보지 않고 내 마음과 짐작만 풀어낸 것이 원인인 듯하다. 그저 써 내려간 두리뭉실한 글 속에 빠져있는 이해와 이질감을 느껴 불편한 표현이 돌아온 것 아닐까. 솔직하게 쓴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았던 것 아닌가. 다시금 이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생각한다. 의미 없는 껍데기 글 대신 내 생각과 삶을 가꾸는 글을 쓰기로.

깊게, 진실하게,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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