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미없는 사람인 탓에 유쾌하고 위트가 있는 것들이 좋다. 진지한 장르에서 이런 가벼움은 변칙이고, 파격이라 주류의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틀을 벗어나는 시도는 창의적인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네 사람이 전부 팔에 깁스를 한 채 등장한다. 팔을 제대로 못 쓰는 와중에도 바이올린을 들고 있다. 제대로 몸을 못 쓰니 등장하는데도 서로 비켜주다 부딪칠 듯 아슬아슬하다. 양손에 깁스를 한 채 바퀴 의자에 앉아 등장한 사람에겐 다른 사람들이 첼로를 양다리와 팔 사이에 끼워준다. 다리로 첼로를 좌우로 흔들더니 깁스한 손의 손가락만 움직여 지판의 현을 튕기기 시작한다.
깁스한 양팔을 X자로 엇갈려 양손에 바이올린 활을 든 남자 옆에는 바이올린을 목에 끼운 남자가 서서 바이올린을 흔들어 연주한다. 비스듬히 누인 활에 맞춰 바이올린을 잡고 한껏 뒤로 젖힌 모습이다. 다른 손의 활은 조금 더 세워진 모습. 이 옆에선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바이올린을 활에 맞춰 흔들고 있다. 이어지는 조금 빠른 연주구간. 폴짝폴짝 뛰며 제 박자에 맞춰 바이올린을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마에 가득한 땀이 힘겨워 보이지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음악에 지켜보는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폴란드의 코미디 현악 4중주 MozART그룹이다. 코미디와 현악 4중주라니 수상한 조합이지만 즐겁고 아름답다. 악동이라 불렸던 모차르트를 닮은 이름의 모즈아트그룹은 유쾌함에 연주실력도 빠지지 않는다. 다만 악기들이 일반적이지 않거나 소품들이 무대에 꽤 많이 등장한다. 개개인의 능청스러운 표정연기도 탁월하다.
1995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전 세계를 다니며 공연한 것이 벌써 30년이 됐다. 4대륙 50개국을 돌며 100만 마일을 도는 2000회의 비행을 했다. 여러 페스티벌(코미디 페스티벌 포함)에서 수상했고 2021년 파리에서 150번째 공연을 했다. 2014년에 한국 공연도 있었다는데 그땐 이 팀을 미처 몰랐던 것이 아쉽다.
Filip Jaślar(바이올린), Michał Sikorski(바이올린), Paweł Kowaluk(비올라), Bolesław Błaszczyk(첼로) 4명 모두 폴란드 바르샤바와 우치의 명문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한 훌륭한 악기 연주자이지만 클래식 음악을 위트있게, 즐겁게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전 첼리스트이자 창립 멤버인 Artur Renion 역시 가사가 아닌 음악으로 기쁨과 웃음을 전하려 했는데 2000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멤버들이 그를 기억하며 매년 콘서트를 연다.
모즈아트그룹의 유명한 공연영상이 많이 있지만 'How to impress a woman'이라는 공연 또한 손꼽힌다. '여자에게 감동을 주는 방법'이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곡은 스콧 조플린의 '엔터테이너(The Entertainer)'로 넘어가는데 바이올리니스트는 퍼커션이 된 듯 탁구채로 공을 치며 노래에 맞춰 박자를 두드린다. 오른손에 든 탁구채를 놓치지 않은 채 왼손에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는 곡은 비제의 <카르멘> 중 '하바네라(Habanera)'. 고운 목소리로 멜로디를 부르더니 홍학처럼 한 다리로 서기까지 한다. 여자에게 감동을 주려면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인 듯.
이어지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에서는 다른 멤버가 풍선을 들고 나온다. 풍선을 커다랗게 불더니 풍선 입구를 좌우로 납작하게 당기며 놀라울 정도로 분명한 멜로디를 연주해 낸다. 이런 기발한 공연들을 기획하는 그들의 재능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연습은 대체 얼마나 한 건지.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익숙한 곡들을 부분 부분 편집해 연주해 지루할 틈이 없는 이들의 공연에는 4인조가 청중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언어와 국가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연결고리, 음악이다.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환호받는 클래식 공연대신 클래식을 두려워하는 락, 팝 팬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 인생은 아름답다 전한다. 나처럼 클래식이 낯선 이들 누구나 즐거울 공연, 클래식을 안다면 아는 만큼 더 보여 놀라울 공연이다. 오늘 하루 팍팍했다면 그들을 보며 잠시 웃음 짓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