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망 Mar 06. 2024

좋으면 좋은 대로, 하면 하는 대로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 키크니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지는 대로 살아갈 뿐, 텅 빈 나인채로 무감각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가고 만다.


이제껏 취향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새삼 느끼는 것은 나는 참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십여 개를 넘기기도 어렵다니, 스스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싶다.


물론 사회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지내는 훈련을 받지 못한 탓도 있다. 아이는 아이답게 놀아야 한다지만 아이답게 놀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학생은 공부가 본업이라며 공부에 흥미나 소질이 없는 학생들도 모두 공부를 향해 등 떠밀렸다가, 어른이 되면 나이에 맞게 어른답게 굴라며 호기심을 가지는 일들을 유치하게 바라본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계속 유지해 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취향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미 조직문화에 밀어 넣어 각자의 독특한 부분들을 다 꺾어버렸는데 뒤늦게 자신만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주무르고 만들고 그리고. 자꾸 하다 보니 늘어서인지 손재주도 있다 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을 남들보다 특출나게 잘하는 건 아니고 막상 이걸로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다 보니 좋아하는 일들이 점점 뒤로 밀려났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밀쳐뒀던 흥미는 색이 바랜지 오래되어서 이제는 예전만큼 좋아한다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만들고 그리는 일이 어색해져서 다시 시작할 엄두가 안 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직접 그려보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툰들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서서히 이름을 알리는 SNS의 여러 일러스트, 툰 작가들은 꾸준하게 작품을 올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작품의 개성만큼이나 꾸준함이 한몫하는 것이다.



키크니 작가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만화를 그린다. SNS에서 소통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싶지만 독자들이 요청하는 사연을 바탕으로 위트 있고 기발하게, 때로는 진지하고 울림 있게 그림을 그린다. 2018년부터 어느새 7년 차다.



112만 팔로워에 유퀴즈에도 출연할 만큼 유명세를 가졌지만 한 번도 얼굴을 공개한 적이 없이 여태 숨기고 지낸다. 그의 필명만큼 키가 크다는 정도만 안 달까. 얼마 전 그동안의 작품들을 모아 열렸던 전시회 <일러, 바치기>에서 키크니 작가의 실물을 궁금해하며 방문한 팬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작가 사진 올리지 않기'라는 주의사항을 하나같이 잘 지켜서 아직도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조차 아들이 키크니인 걸 모르신다고.


키크니 작가 전시회 <일러, 바치기>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은 2018년 7월부터 매주 1~2개씩 연재해왔다. 독자들의 사연을 한 컷으로 답해주는데 언어유희의 기발함에 혀를 내 두르다 보면 갑자기 먹먹한 감동을 가슴에 풍덩 던지기도 한다. 아침에 올라오는 탓에 출근길에 사연 있는 사람처럼 광광 울린다는 팬들의 투정 어린 항의가 빗발치지만 어째 그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키크니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고객의 요청에 따라 어울리는 다양한 업무를 9년여 해왔는데 IMF로 가세가 기울고 어머님이 뇌경색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시면서 혼자 집안을 책임지며 어려움을 겪었다. 막노동으로 돈을 벌며 선배 네 명과 작은 월세집에서 같이 지내기도 했다.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던 탓에 일이 해결되고 난 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심장이 뛰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몸무게가 7킬로 줄고 이러다 죽겠다 싶어 결국 일을 그만뒀다. 하루 종일 뒷산을 7~8번씩 오르며 6개월가량 공황을 극복하려 애쓰다가 친한 형의 권유로 낙서라도 올리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의 키크니가 되었다 한다.



그는 자신을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라고 소개한다. ‘나는 터미네이터처럼 단단한 사람이다, 나는 터미네이터처럼 그림 그릴 수 있는 일러스트 작가다’라는 자기 암시다. 자기를 향해 부단히 이어가는 담금질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그림 한 컷으로 울리고 감동을 주는 재능이 있다는 걸 이제껏 모르고 살아왔다고 한다. 어쩌면 그의 어려웠던 시절이 타인의 어려움을 어루만지고 담담하고 깊은 감동을 전하는 바탕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는데 남은 게 없었기에 그림을 그릴 수 없었고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는 그. 시간이 흘러 다시 그림을 그리고 책도 쓰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는 사는 게 그런 거 란다. 앞으로도 갔다 뒤로 갔다 위로도 가고 아래도 가다가 결국은 제자리로 가는 것.
키크니 작가는 덤덤하게 '제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 정도 거리에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유명해지고 싶진 않아요.'라고 덧붙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좋아하는 일로 사는 것이 꿈이라고도 말한다.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다보면 마냥 좋을 수 만은 없다. 그럼에도 조금 더 편한 방식으로,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을테다. 잘 하고 좋아하던 그림을 더 그릴 수 없었을 때 키크니 작가는 지금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나 역시 흥미가 없던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인생사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다만 아직 마음에 그리고 만드는 일에 대한 미련이 조금 남아있는 탓에 다시금 만들고 그리는 일을 시작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할 때, 키크니 작가의 한 마디를 빌리고 싶다.


일단은 해보겠지만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닷


키크니 <톡이나 할까> 1   2   3

이전 13화 본다는 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