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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Mar 21. 2024

내일 더 빛날 당신을 위해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실상은 연애하는 사람들이 두루 애용한다는 이 시는 짧지만 묵직하고 따뜻하다. 이 짧은 시는 해외에도 소개되었는지 알제리에 갔을 때 '풀꽃'의 저자가 맞냐는 물음과 함께 같이 간 작가 5명 중 나태주 시인 혼자 인기를 독점했다고 한다.



"나 좀 태워 주세요."의 줄임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나태주 시인은 운전을 못한다. 차를 살 돈이 없어서라지만 길을 걸으며 주위를 살피고 종종 생각에 잠기는 그는 주변사람들이 보기에도 운전할 틈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차 대신 자전거를 애용하는데 모자에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탄 모습이 트레이드마크라고 한다. 공주 풀꽃문학관 앞에 자전거가 있으면 나태주가 있고, 자전거가 없으면 나태주도 없다고 할 만큼 자전거가 곧 나태주가 되었다며 웃는다.



그가 있는 풀꽃문학관에 가면 풍금을 치고 노래를 불러주는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 외로워 치게 되었다고 한다. 바람으로 부드럽게 감싸는 소리가 나는 풍금은 푸근한 그와 그의 시처럼 딱맞게 어울린다.

나태주 시인을 보면 아빠가 생각난다. 작은 키에 안경 낀 둥글둥글한 얼굴, 선한 눈매에 장난기 어린 미소까지 비슷해서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이다. 예전 유퀴즈에 나온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모습마저 참 정겹고 유쾌하다.

이미지출처: 우먼센스


풀꽃시인이라 불리는 그는 젊은 10대들도 알만큼 이 시대 가장 유명한 시인이라지만 사실 오래 무명이었다. 딸 나민애 교수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교사임에도 따박따박 돈을 못 벌면서 책 사는데 아끼지 않아 엄마를 힘들게 한 사람이었다. 딸이 학업을 마칠 때에도 무명의 시인이었고 독립해 사회에 자리 잡을 때에도 돈이 없어 쩔쩔맸다는 그가 이토록 널리 알려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16살에 전하지 못한 연애편지 때문에 시를 쓰게 되었고, 26살 사랑에 버림 받은 슬픔 때문에 쓴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이제 시가 세상에 보내는 연애편지라 말한다. 연애편지를 쓰듯 좋은 말, 예쁜 마음을 정성껏 꾹꾹 눌러 담는다.



나태주 시인은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호기심과 그리움과 사랑이라고 한다. 시인들이 나이가 들어 시를 못 쓰게 되는 것은 아이 같은 호기심이 사라지는 까닭인데 그는 아직도 호기심천국이라 앞으로도 한참 너끈하겠다.

또 그리움은 나에게 있었으나 사라진 것들에 대한 마음인데,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이 짙어지면 시가 된다고 한다. 그는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현재 내 곁에 있는 것을 아끼는 마음은 사랑이다. 그의 시에는 이런 따뜻한 사랑의 시선이 고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열정이 있어야 멈추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 5천여 편의 시를 꾸준히 써내고 시집, 산문집, 동화집, 전집, 시선집 합해 150여 권정도의 책을 냈다. 잔잔하고 한결같은 열정이 아직도 그를 대중에게로 이끌고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시는 독야청정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여야 한다고 말한다. 유명한 시 대신 유용한 시여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힘들고 지치고 답답한 때 위로와 축복, 악수, 기쁨, 꽃다발이 되는 시를 전해줘야 한다며 이렇게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것이 시인의 삶이라 한다.



나태주 시인은 많은 결핍이 있었다. 키가 작고 시골 깡촌에서 지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장남이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 집을 떠나 외할머니댁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당시엔 쉬운 것을 가르친다는 초등학교 선생에 대한 시선들 때문에 스스로 부족하다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지내왔기에 지금껏 순박한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핍을 단점으로만 바라보진 말라. 모자란 부분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 부족한 부분을 사랑하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미워하고 포기하진 말라한다. 스스로 부족하다 느낀다면, 조금 더 좋아질 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 보라는 그에게선 따뜻한 사랑, 삶에 대한 긍정이 전해진다.



<풀꽃>시는 나태주 시인이 43년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풀꽃 그리는 법을 알려주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봄에 아이들과 풀꽃을 그렸는데 너무 금방 대충 안 닮게 그리기에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다 알려줬다. 가꾸는 사람 없이 흔하고, 향기 없고, 크지도 않고 그저 그런 꽃들도 사랑스러운데 하물며 너는 더 아름답지 않냐는 간결한 글귀는 작고 하찮은 것을 뛰어넘어 깊은 감동으로 쑤욱 밀려온다 .



그는 62세 교장 정년퇴임을 6개월 남긴 봄에 쓸개가 터져 입원했는데 병원에서 포기하고 진료를 거부할 정도로 심각했다. 쓸개즙이 내장의 모든 기관으로 번져 치사율 95%인 범발성 복막염이 된 탓이다. 장례를 준비할 정도로 15일간 사경을 헤매던 그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던 때문일까. 보이는 것만큼 멀쩡하지 않은(?) 그는 뇌동맥 꽈리가 여러개 있고 간, 쓸개, 췌장, 콩팥 등을 절제했다.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이라 매일 충실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하나님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
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주십시오.
_나태주 <잠들기 전 기도>


'너'를 부르고 '사랑'을 말하며 '배려'를 이야기하는 그는 젊은 세대에게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은 낮은 세대. 만족을 모른 채 잘하려고만 하는,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진 시대. 예쁘고 완벽하게 잘 진행해 성공까지 하려기에 번의 실패에도 모든 것을 망쳤다는 좌절감에 빠지는 세대에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은 잊어버리라 한다.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달려왔으니 한번 넘어졌다고 인생을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아홉 번 실패했다면 아홉 번 노력했다는 것'이란 말과 함께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으니 성공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 실패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가는 것이라 덧붙인다. 금수저, 은수저처럼 집안환경을 탓하지 말고 스테인리스수저라도 좋으니 꾸준히 오래가면 좋겠다고 한다. 한번의 실패에 좌절하며 본인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말라. 잘하고 있는데도 못한다, 모자라다 생각하지 말라는 그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겐 자극적인 말 대신 '괜찮다, 다시 하면 돼'라는 용기를 전한다.  



쉬운 단어와 담백한 표현, 사소하고 가까운 것으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시인그는 젊은 감각도 놓치지 않는다. 호기심과 도파민이 그의 철들지 않는 감성이 된다. 시 쓰는 사람이 되어 어린 독자를 만나다 보니 시를 만화책으로 만들고 싶어졌다며 작년(2023)엔 웹툰 작가 다홍과 함께 만화시집 <오래 보고 싶었다>도 출간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만들어가는 몽글몽글한 감동이 시와 잘 어우러진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_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이야기하듯 조금 더 앞서 인생을 살아가는 시인의 깨달음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가슴에 딱 맞게 전해지기 바란다. 나태주 시인의 지성과 유쾌함이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살아갈 때도 지혜와 울림이 된다. 따뜻하고 무해한 나태주 시인의 시는 필사하며 익히기에도 좋다. 필사할 시를 직접 시를 골라도 괜찮지만 이미 나온 필사시집들도 이용해보자. 그의 시를 종이에 옮겨 쓰고 마음에 담으면 어느 순간의 다짐처럼, 힘든 순간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는 이 맑은 긍정의 힘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래 보고 싶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_나태주 <행복>


지금 사람들 너나 없이
살기 힘들다, 지쳤다, 고달프다,
심지어 화가 난다고까지 말을 한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기댈 말과
부탁할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낌없이 사랑해야 하고
조금은 더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림의 까치발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날마다 아침이 오는 까닭이고
봄과 가을 사계절이 있는 까닭이고
어린것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이유이다.
_나태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말고 살아
꽃 피워봐
참 좋아.
_나태주 <풀꽃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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