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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Mar 13. 2024

함께 함으로 위로가 되는

브로콜리 너마저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는 그의 10~20대에 듣던 노래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말이 사실이나 통계에 기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맞는 이야기다. 나의 10대와 20대에 공부와 취업에 치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갈 길을 모를 때 듣던 노래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남아있다. 그 시절 고민들을 위로하는 가사들이 마음에 와닿았고, 다시금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다.



2008년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에서 이런 생각들을 곡에 담은 '브로콜리 너마저'는 별다른 홍보나 활동 없이도 4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렸다. 같은 생각을 하던 청춘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었다.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는 특이한 이름으로 한번 들으면 기억에 잘 남는다. 영어명은  "Broccoli, you too?".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을 때 했다는 '브루투스 너마저?'에서 따오지 않았냐는 말을 듣고 영어명을 이렇게 지었다는 장난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사실 뜻이 없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며 밴드이름을 고민하며 적은 단어들 중 '브로콜리' 단어 옆에 '너마저'가 같이 적혀 있었던 것을 보고 해당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보였던 밴드 이름이 127개였다는데 살펴보면 그 작명센스에 기함하게 된다.


*(공식홈페이지에 댓글로 그 후보들이 나와있다. - 초광폭 발코니, 좌우호박,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체하리, 코막힘, 울지마, 고자질, 엄마 쟤 흙먹어(?), 아빠 야근 그만해, 형아 공부좀 해, 덩기덕 쿵덕, 자진모리, 강약 중강약, ABOUTCHU, 직원 할인, 환불 불가, 최근의 금잔디, 광어9900, 지구는 무거우니까, 지구는 둥그니까, 달려라 하니, 비상구는 엑시트, 구르는 돌, 매너모드, 애인미만 가족이상, 반인간적인세계, 주스무료, 정기구독신청, 맥박상승, 미안하다 싫어한다, 미다래 맛없어, 미루기, 구파발 물미역 등)



영어, 외국어 하나 없이 한글로만 가사를 쓰기로 유명한데 평범하고 보편적인 언어로 탄생한 빛나는 '보편적인 노래'의 가사는 시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말로 선정되었다.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보편적인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는 서울대 재학생을 중심으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만든 밴드인데 2007년 가내수공업방식으로 만든 EP <앵콜요청금지>가 입소문을 타면서 정규앨범을 내고 전업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다. 덕원(보컬, 베이스), 류지(드럼), 잔디(키보드) 중 류지만이 유일한 실용음악 전공자로 덕원이 곡과 가사를 만들면 함께 모여 노래를 수정한다.

밴드이다 보니 2005년 결성된 이후 멤버 이동이 여러 번 있었다. 3명에서 4명, 4명에서 5명이다가 다시 4명, 그리고 지금의 3명이 되었다. 2009년 보컬을 담당하던 계피가 나간 이후로는 주로 윤덕원이 베이스를 치며 노래를 부르지만 성량이나 기교가 뛰어난 가수는 아니라 처음 들으면 보컬이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고음이나 기교를 선보이는 노래가 아니라 음색과 정서, 가사가 중요한 노래이다보니 담담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밴드에선 대개 멜로디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보컬을 같이 하는데 리듬악기를 다루는 덕원, 류지가 보컬을 맡는 건 상당히 이색적이면서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예전엔 브로콜리 너마저를 아마추어 같은 밴드로 말하는 사람이 많았고 본인들도 늘 불안했지만 무대 경력 10년이 넘어가면서부터 좀 더 단단해졌다 말한다. 이제는 페스티벌에 참여하면 연주가 깔끔하다, 음원이랑 똑같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을 가장 잘하는 팀으로 특유의 감성을 가장 잘 재현한다.


정규 1집 발매 후 보컬 계피가 탈퇴하고 이후 1집 재발매를 반대하면서 이들의 대표곡인 '앵콜요청금지'를 한동안 들을 수 없었는데 5명의 파트를 4인 구성으로 편곡해 다시 연주, 녹음한 <골든 히트모음집>을 내면서 새로운 버전의 노래를 을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6년에 해당 저작권 문제가 잘 풀려 다시금 1집이 재발매되는 풍파도 있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은 이별에 대한 노래라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 윤덕원은 첫 EP앨범 때부터 비가역성에 대해 썼다고 한다. 끝나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느낀 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한 인터뷰에서 우리 노래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듣는 사람들은 '아, 좀 진솔한 사랑 노래구나'라고 생각한다나.


'춤'은 '우리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라며 삐긋대는 관계의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을 담았다면 '이젠 안녕'은 자살에 관한 노래라고 밝혔다. 결국 노래는 듣는 사람이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어떤 선입견 없이 가능성을 열고 들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마음의 문제'도 사람들이 네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꼭 당신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맞아. 내 마음의 문제 였어!'라고 받아들이는 분이 많아서 걱정이란다.


난 아무리 고민을 하고
또 많이 물어도 봤지만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다
그건 너의 문제니까 어쩔 수 없다 말해요
그래도 된다면 같이 울어줄까요?
어쩔 수 없어요 그건 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이니까
<마음의 문제>


이들의 위로는 독특하다.

그런 말이 있어
그런 마음이 있어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진 이에게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건네는 방식의 위로. 위로하지 않음으로 위로하는 이들의 감성은 따뜻하다. 공감을 해도 감히 손 건네기 어려운 아픔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함부로 괜찮다, 잘될 거라는 말을 건네지 않는 자체로 위로하는 이들의 감성은 함께함과 이해다.



2005년부터 20년간 이어져 온 밴드생활에 20대였던 그들도 어느새 40대가 되었고 노래를 듣던 팬들도 함께 나이를 먹었다. '졸업'과 젊음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들은 '서른'을 이야기하고 '속물들'과 '행복', 부모가 된 마음을 노래한다.

너를 업고 동네 길을 걷는다
너는 잠깐 잠이 들었나 하고 돌아보면
한 바퀴 도는 사이에 너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
달콤했던 꿈은 어디로 갔나
<너를 업고>



함께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는 이 순간에 대해 노래하는 그들이 있어 감사하다. 나와 함께 고민하고 나와 함께 해주는 소중한 이들. 당신들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구나. Broccoli, you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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