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검진일이라고 신경 쫌 쓰라는 딸, 무심한 엄마
모처럼 일요일 하루를 주부로서 충실하겠다는 마음으로
침실의 이불 호청도 갈고,
가죽 소파가 자꾸 몸에 달라붙는다고 투덜대는 윤스퐁을 위해 리넨 블랭킷으로 뽀송뽀송하게 만들어 주고
리모델링으로 이사를 나갔다가
4월에 다시 이사 들어오고 마무리해야지... 하면서 미루어 두었던 짐 정리를 드디어 끝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정리를 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걸 언제 다 정리하지...."
이런 생각도
"걱정이야."
이런 말도 하지 않게 되면서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조금씩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정리가 다 되었어요.
집 정리를 하고 있는데
독립해서 살고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저 내일 병원 가는 날이에요. 신경 쫌 쓰라고 전화했어요."
희귀난치성 질환 대상자인 딸에게 신경 쫌 쓰라고.
"신경을 왜 써요? 병원 가서 진료받으면 되는 건데."
"또 수술해야 하면 병원비 내주시겠죠? 의료비 지원이 많이, 난치성 환자니 많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다 컸으니 알아서 해라... 이러진 않겠죠?"
"그러지는 않겠지만 미리 수술 걱정할 필요없는디요."
(중략)
"언니랑 가서 진료 끝나고 돈가스 먹을 거예요. 엄청 비싼... 이만 원도 넘는..."
"어머, 그건 신경 쓰입니다요. 그케 비싼 걸 꼭 먹어야 하는지... 몹시도 신경이 쓰입니다."
까르르~~웃는 아이.
선천성질환을 가지고 우리에게로 온 아이.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해줄 것이 없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하지만 수술해 줄 곳을 찾았고,
10시간이 넘는 수술들을 하면서.... 그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걱정거리는 내가 만드는 거라는 것을.
내가 만들지 않으면 걱정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술처럼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지요.
피하지 못하고 내 발등에 떨어지는 불이 있어요.
안 떨어지면 좋겠지만... 떨어지면...
그건 내 발등에 떨어지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1996년,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대구서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수없이 오가며
수많은 날을 가슴 조이며
자식을 죽음의 문턱까지 몇 번을 보내보면서
내가 깨달은 걱정 없이 사는 방법입니다.
나의 육아의 목표는
<독립된 생활인>이었고
아이는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다시 일반 병실로
그렇게 엄마의 품으로 돌아와 주었고
"국영수사과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꿈을 꾸며 잘 자라주었습니다.
해바라기 화분이 집에 온 날.
"해바라기가 화분에서 살겠나?"
"잘 보살피고... 그 너머의 일은 내 몫이 아닌 걸로요."
해바라기는 꽃을 피우며 잘 크고 있답니다.
우리 딸이 26살의
자칭
"꽤 괜찮은 사회인"인 것처럼요.
엄마 샘정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걱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