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애플TV 드라마로도 반영되었던 격변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그린 소설 <파친코>를 읽어왔습니다.
• 파친코
식민 지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희망은 암울한 현실에 부딪쳐 무용지물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하는데 소설은 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사람들은 파친코 기계의 다이얼은 돌릴 수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운명을 시험합니다.인생이란 게임이 끝난 뒤에도 재밌었다고 해볼 만했다고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요?
• 30년의 준비 과정
작가 이민진의 근성을 보면 파친코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전환한 뒤 96년 재일교포 이야기인 <모국>이라는 단편 소설을 집필합니다. 이때 소설은 완성형은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10년 후 남편의 발령 때문에 일본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 수십 명의 재일교포를 인터뷰하고 이민진 작가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 수십 명을 현장에서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고, 나는 소설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선계 일본인들이 역사의 피해자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을 만났을 때 누구의 삶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의 폭넓고 복잡한 인생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결국 그녀는 기존의 원고를 치우고 처음부터 새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약 30년이 지나서야 파친코 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 노아의 선택
소설에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노아일 것입니다. 주인공 조선인 엄마 선자와 조선인 아빠 고한수 사이에서 실수로 태어난 아이, 노아는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에 합격할 만큼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성경에서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여 사람과 대표 동물을 한 쌍씩 태울 수 있는 거대한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의 이름은 믿음을 갖기 어려울 때도 믿음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어린 시절부터 비밀스러운 꿈을 가집니다. 학생 때는 일본인이 되고 싶었고 영문학을 공부할 때는 유럽인이 그리고 취직할 때는 가족의 기대와는 다르게 사립학교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노아에게는 계획이 있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노아는 자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부모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이합니다. 큰삼촌 요셉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조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용서 없이 사는 것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마치 성경에서 요셉이 총리가 됐을 때 자신을 이집트에 판 형제들을 용서한 것처럼 말이죠. 노아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틀어진 인생에 대한 깊은 절망으로 인생을 다시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 어리석은 노아의 엄마, 선자
선자는 고한수와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선자네 하숙집에서 죽을뻔하다 간호를 잘 받고 살아난 목사님, 백이삭이 선자의 남편을 자처합니다. 미혼 임산부 선자는 남편을 따라 쫓겨나 듯이 사랑하는 섬, 영도를 떠나 오사카 이카이노에 정착합니다. 이카이노에서 노아를 낳고 부부 사이에 곧 모자수(모세)도 태어납니다. 하지만 둘째가 아기일 때 이삭은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남편의 부재 속에서 선자는 시장에서 김치를 내다 팔며 강인한 생활력을 보여줍니다.
"김치! 맛있는 김치 있어예! 김치! 맛있는 김치 있어예! 오이시데스! 오이시 김치!"이 소리가, 자신이 내는 소리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자기 목소리라서가 아니라 어렸을 적에 장에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아가씨가 돼서는 혼자, 그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간절히 바라는 여인으로 갔다. 그 시절 큰 소리로 물건을 팔던 여자들의 소리가 항상 선자의 주위에 들렸고, 이제는 선자도 그 여자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노아가 부정한 어리석은 엄마, 선자. 하지만 그녀는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누구보다 강한 생활력을 보여줍니다. 어려운 현실조차 뺏어갈 수 없는 그녀의 단단함은 친아버지 훈의 기억으로부터 온 것일 겁니다. 노아는 자신을 보살펴 줄 친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자랐지만 선자의 친아버지 훈은 선자를 애지중지하며 키웠습니다. 훈은 선자의 다정한 아버지이자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산 영도 섬의 아름다웠던 기억은 선자의 단단한 자존감입니다.
책 <마음의 지혜>에서 김경일 교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의 비밀 중 하나는 행복을 자주 또 많이 경험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든든한 아버지의 울타리 아래 자랐던 선자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 스스로 자란 노아와 다른 삶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까요? 아버지는 주권이 있는 나라로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선자가 이 세상의 악에 대해 물었을 때 이삭이 이 구절을 가르쳐 주었다.
행복한 기억을 차곡차곡 모았던 선자는 시련 앞에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른 태도로 바라보고 악도 선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파친코의 주인공은 인생이라는 게임을 재미있게 즐긴 승자로써 그려집니다.
파친코 소설은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 속 인물관계가 복잡해지면서 현실 고증 같은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밝힌 듯이 누구의 삶도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거쳐 수정하고 다듬으면서 써 내려간 노고가 담겨 있는 소설 파친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