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은 이마에 눈처럼 하얀 혹이 솟았고 낫처럼 구부러진 아래턱을 가진 오른쪽 꼬리에 세 개의 구멍이 뚫린 흰 향유고래 이야기입니다. 석유가 상용화되기 전에는 향유고래에서 나오는 기름을 주로 썼기 때문에 인간들은 향유고래를 무차별적으로 포획했습니다. 기름과 용연향(고급 향수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고정제)을 얻기 위한 고래잡이들과 향유고래의 목숨을 건 대결을 소설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생의 터전에서 삶과 죽음을 품은 바다는 때로는 공포로 때로는 기회로 굽이치고 있습니다.
• 탄생
우리나라에서는 산모들이 출산 후 미역국을 챙겨 먹는데요 이러한 풍습이 자리 잡은 것은 고구려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구려인들은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미역을 먹으면서 상처를 치유했고 이점에 착안해 산부에게 미역국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미역은 피를 많이 흘린 뒤 회복을 돕는다고 하니 산후조리에 꼭 필요한 음식입니다. 역사적으로 고래가 엄마들의 출산을 돕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죠.
먼바다의 신비한 동물 고래의 출산과 육아를 『모비 딕』에서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뱃전 너머를 굽어보니 바다 밑에서는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투명한 바다여서 나는 물속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오! 그 고요한 호수는 바로 육아실이었다. 젖먹이를 키우는 어미 고래들, 장차 어미가 될 고래들이 물아래에서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고래잡이에 이력이 난 퀴퀘그조차 아직 탯줄을 끊지 않은 채 연결된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를 보고 "저기, 밧줄, 밧줄!"이라고 경탄을 내지를 정도였으니 그 얼마나 신비한 광경이었던가! 그렇게 당황하고 겁에 질린 무리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이 고래들은 조용하게 영원한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영원한 고요함과 평화를 즐겼고 거기에 내 몸과 마음을 담갔다.
사람은 바다에서 태어나지 않는데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생명체가 바다의 주인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이슈마엘을 태운 고래잡이배 피쿼드 호는 예수님이 탄생한 크리스마스에 만세 삼창을 하며 출항합니다.
• 지도자
고래잡이 배 피쿼드호에는 오직 고래에 대한 복수가 인생의 목표인 선장, 에이해브가 타고 있습니다. 과거 그는 모비 딕 (흰 향유고래)에게 돌진했다가 다리를 잃고 현재 의족을 차고 있습니다.
이후 흰 고래는 에이해브 선장의 깊은 영혼을 좀먹는 사악한 권능의 화신이 되어버렸다. 에이해브 선장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악의 근원을 이 흰 고래에게 덮어씌웠다.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고통에 빠지게 하는 모든 것, 저열한 짓을 하게 만드는 것, 우리의 근육과 뇌를 마비시키는 것, 우리 안에 은밀하게 존재하는 악마적인 행동과 생각 등, 요컨대 정신이 나간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이 세상 모든 악이 모비 딕으로 가시화되어 나타나서 모두와 맞서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그 고래의 하얀 혹 위에 아담 이래 전 인류가 느꼈던 모든 분노와 증오를 쌓아 올렸다.
복수심에 가득 찬 지도자는 그의 영혼을 좀먹고 선원들의 영혼까지 앗아갑니다. 에이해브의 뜻은 구약 성서의 아합 왕과 이름이 같습니다. 아합은 우상숭배를 지지했고 엘리야를 대적했습니다. 그는 신의 진노를 샀고 이스라엘 땅에는 가뭄과 기근이 오게 됩니다.
저는 앞서 서평 『제4의 물결, 답은 역사에 있다』에서 인문적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진정한 리더라고 했는데요, 에이해브 선장은 목표를 쫓기 위해서라면 선창에서 기름이 새고 있어 배가 가라앉을 위험에도, 12살 아들을 실종한 선장의 지원요청도 시간낭비로 여길 뿐입니다. 비록 에이해브 선장이 향유고래가 출몰한다는 전 세계의 해역을 들르고 일본 먼바다까지 항해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일지라도 개인의 복수로 무장한 용기는 결국 선원 모두를 죽음의 바다에 먹히게 합니다.
• 스타벅
에이해브 선장의 위험한 지시에 마지막까지 경종을 울린 항해사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타벅으로 신중한 사람이며 용기란 고기나 빵처럼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지만 경솔하게 낭비하지 않습니다.
선장님, 그놈의 찌그러진 아가리, 무시무시한 아가리 따위와는 맞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래를 잡으려고 이 배를 탄 거지, 선장님의 복수를 위해 이 배를 탄 게 아닙니다. 선장님, 만일 복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우리가 얻을 기름이 얼마나 됩니까? 낸터컷 시장에서 벌어들일 돈은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짐승한테 복수라니요! 그냥 맹목적인 본능으로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인데! 선장님! 짐승한테 원한을 품는 건 신성모독과 같은 겁니다!
모비 딕과 마지막 전투까지 스타벅은 선장에게 전투를 단념시키려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본선을 지키던 스타벅과 선원들은 결국 모비 딕과 부딪쳐 침몰했고 배의 침몰로 주인공 이슈마엘을 제외한 전원은 깊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당신은 누구와 한 배에 타고 있나요? 스타벅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잘못된 지도자와 한 배에 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지도자는 그의 영혼을 좀먹게 하다가 결국 죽음으로 내 몰테니 까요.
• 새로운 인생
고래의 물기둥, 주인 피터 코핀(Coffin : 관) 여관에서부터 미국인 이슈마엘과 코코보코 섬 원주민 퀴퀘그는 룸메이트자 친구가 됩니다. 퀴퀘그의 말로는 그들은 결혼을 했고 그 뜻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그가 기꺼이 이슈마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퀴퀘그의 삶의 이력을 보면 여러 번의 이정표가 있습니다.
1) 코코보코 섬에 살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대추장이었고 그의 삼촌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2) 그러다 우연히 롱아일랜드 새그항에서 출발한 배 한 척이 섬에 들어왔고 퀴퀘그는 기독교인들과 생활하며 고래잡이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들의 동포가 악하다고 생각했지만 기독교인들도 불행하고 사악하며 훨씬 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3) 퀴퀘그는 뉴베드퍼드 고래 물기둥 여인숙에서 이슈마엘을 만나 낸터컷의 포경선 피쿼드호에 오릅니다.
4) 스타벅의 작살잡이 생활을 하던 중 열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갑니다. 그는 통나무형태의 관(Coffin)을 요구했고 관 속에 누웠다가 아직 못다 한 일이 있어 살기로 결정합니다.
5) 모비 딕과의 전투에서 배가 파선되면서 퀴퀘그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6) 본선이 침몰하면서 이슈마엘도 바다로 빨려 들어갈 차에 퀴퀘그의 관으로 만든 부표가 흘려들어옵니다. 이슈마엘은 그 관에 매달려 아들을 잃은 레이철 호에 구조됩니다.
이슈마엘은 퀴퀘그를 많이 의지했습니다. 영원히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지만 이슈마엘은 퀴퀘그로 인해 두 번째 삶을 선물 받습니다.
솜씨 좋은 대장장이 퍼스는 안락한 가정생활을 하던 중 강도를 만나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립니다. 예순 살의 노인은 다시 재기할 기력이 없습니다. 아이와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집도 팔아야 되는 신세가 되자 상복을 걸친 채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그때 그를 맞아들인 것이 바로 바다였다. 죽음만이 눈앞에 놓여 있는 듯 보이는 그에게 바다는 마치 상상을 초월하는, 죽음 이상의 공포가 그곳에 있다는 듯,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모험이 그곳에 있다는 듯 그를 유혹했다.
생애부터 죽음까지의 시간을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에이해브 선장은 복수를 쫓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흰 고래 모비딕의 소식만 들으면 선원들의 안전과 심지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도 헤아릴 시간이 없습니다.
요즘 저는 과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더군요. 포모도로 시계로 시간을 관리해보기도 했어요. 연말이니 연락도 많이 오고 모임도 많아지자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에게 속으로는 불평도 하고 있었죠. 에이해브 선장이 제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새벽에 기도를 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시간은 상대적인 카이로스라고요. 어느 때는 1분도 굉장히 길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신의 시간은 카이로스입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삶을 통해 많이 증명했는데 스스로를 또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질 때 더 나은 방법이 항상 떠오릅니다. 그렇게 해결해 왔던 문제들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목표지향적으로 시간에 쫓겨 살지 않기로 후회하기 전에 카이로스로 두 번째 인생을 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