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p. 458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우리의 삶도 화살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로 하여금 하루하루를 귀하게 알고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제강점기 시기를 그린 논픽션 책《호박목걸이》를 소개하려고 해요. 저자의 남편, 앨버트 테일러는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을 외신에 알리는데 힘쓴 인물이에요. 그는 당시 고위층이자 미국 UP 통신 기자로써 조선을 돕고 서대문 감옥에 수감도 되었다가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하고 죽어서 유골은 서울 양화진 묘지에 묻힌 분이에요.
저자인 메리 테일러는 보석 중에서도 유난히 호박을 좋아했습니다. 호박은 신생대의 멸종한 소나무의 송진이 오랫동안 바닷속에 잠겨있다가 여러 가지 색조를 지닌 보석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호박을 문지르면 정전기가 나는데 이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호박이 귀했고 호박은 호랑이의 영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배우였던 영국인 메리는 인도에서 남편에게 호박 목걸이를 예물로 받고 결혼합니다. 그 뒤 남편이 금광사업을 하는 조선으로 함께 넘어오게 됩니다.
서대문에서 살고 있던 메리는 성곽길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성곽길 은행골에서 마음에 드는 400년 된 은행나무를 발견합니다. 사실 이는 권율 장군(행주대첩을 이끈 장군)의 생가에 심어져 있던 나무였습니다. 이 은행나무가 메리를 끌어당겼습니다. 은행나무는 서양에는 없는 나무고 고생대 식물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호박처럼 오래되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은행나무 맞은편에 테일러 부부는 터를 잡고 당시 조선에서 제일 큰 벽돌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집 이름은 딜쿠샤(인도의 기쁜 마음의 궁전)라고 짓고 주춧돌에 딜쿠샤 1923년 시편 127장 1절을 새겨 넣습니다.
1919년 2월 말,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앞두고 메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전국에서 조선인들은 고종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메리는 출산 후 침대에 있었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종이뭉치를 메리의 침대 이불 밑으로 숨깁니다. 그 종이뭉치는 기미독립선언문이었습니다. 남편 앨버트는 이 사본을 동생 빌을 통해 구두 뒤축에 감춰서 도쿄로 가 미국에 전신을 보냅니다. 바깥 거리에는 비명 소리, 총성 소리,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 만세라고 외치는 커다란 함성이 반복되었습니다. 만세의 뜻은 한국이 천년만년 계속되라는 독립에 대한 염원이었습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앨버트는 포로로 서대문 감옥에 끌려갑니다. 동시에 메리는 딜쿠샤에서 가택연금을 당하게 됩니다. 일본 순사들이 딜쿠샤를 자주 드나들자 하인들도 식량을 못 구해 개사료로 죽을 쑤어먹기도 합니다. 다행히 남편은 5~6개월 뒤에 풀려나는데 자신이 포로로 있는 한 절대로 일본에 금광을 팔지 않겠다고 버텼기 때문입니다. 일본 순사들이 딜쿠샤에서 그토록 찾던 부동산 권리 증서는 메리가 개 사료를 담아두는 커다란 독에 잘 숨겨두었기 때문에 앨버트가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딜쿠샤에서 집사로 일하던 김 주사는 양반 출신으로 당시에 영어가 가능했습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기 전, 왕이 한국을 다스리던 시절에 맡았던 궁정 관리직의 직함이 '주사'입니다. 그는 주사 시절 통역과 서기의 역할로 워싱턴에 몇 달 파견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에 일본이 조선총독부에 관직 하나를 맡기려고 했는데 김 주사는 거절합니다.
그는 테일러의 사무실에서 골동품 판매도 했는데 관복에 수놓은 흉배 위로 허리춤에 차는 각대 하나는 절대로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김 주사의 환갑잔치에서 이 각대 비밀이 풀리게 됩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조선이 청나라에 마지막 조공을 바칠 때였습니다. 청의 황제가 조선의 임금에게 마지막으로 하사 한 선물이 바로 이 홍옥수 각대였기 때문입니다. 이 각대가 사라졌다가 김 주사의 눈에 발견된 것입니다. 김 주사는 반드시 조선의 독립을 상징하는 이 각대를 지키기로 결심했고 테일러 부부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테일러 부부가 미국으로 방출된 후에 김 주사는 종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죽기 직전에 지게에 실어 집으로 보내집니다. 그가 없는 동안 일본은 집을 수색하고 서류를 다 빼갔는데 김 주사가 천장 속에 숨겨둔 국기만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연극배우이자 화가, 작가였던 메리는 당대 조선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노후에 그녀는 태평양 너머 서울이라는 곳에 살았던 시절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책을 썼지만 출판 기회를 찾지 못했습니다. 메리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은 시기는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 1948년이었습니다. 그는 앨버트의 유골을 한국 땅에 묻기 위해 마지막 방문을 했고 1982년에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소용돌이치는 시대 속에서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삶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운에 많이 남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고통이 작아지고 정말 어려운 시절에도 용기와 정의 그리고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로 위로와 감동을 많이 받았네요. 모두 감사한 일들 가득하시고 다음 서평에서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