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같은 수요일 vs 정신 없는 일요일

사서일기_20251022_입사 377일차

by 천유

수요일,

일주일의 딱 중간,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코너가 있던 날,

그 코너도 요일을 옮겨 낙이 하나 줄어든 날,

제일 지치고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날.

반면 도서관은 대부분 일주일 중 가장 조용하고 무난한 하루다.


시계 초침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이 고요하고 모든 게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은 날이었다. 일을 하고, 이용자 응대하고, 파손 도서를 보수하고, 이용자 응대하고, 책을 보다가 문득 시계를 보면 시계 바늘이 어째 계속 같은 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꾸역꾸역,

그래 꾸역꾸역 시간을 견디고,

움직일 때마다 책장에, 책에, 컴퓨터 모니터에 부딪치는 좁아 터진 공간을 버티다

저녁을 먹고,

목 빠지게 퇴근 시간을 기다리다 문득,

오늘은 데스크로 찾아오는 이용자가 하나같이, 모두, 전부 친절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와우!!

데스크를 찾아오는 이용자는 대부분 무표정이거나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인상을 쓰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째 오늘은 한결같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질문을 하고,

미소로 고마움을 전했다.


도서관 생활 3년여 만에 처음이었다.

이렇게 지루해 미칠 것 같이 무탈했던 하루는.

데스크를 찾는 사람 모두 웃으며 다가왔던 하루는.

인상 찌푸리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고, 친절한 상대방이 고마웠던 하루는.


와우!!

이런 날이 있기는 하구나.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날이.

마법 같은 수요일이었다.


VS.


우리 도서관은 주말엔 어린이실과 일반자료실 모두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평일에는 10시까지 운영하다보니 자주 방문하지 않았던 이용자는 책과 가방 등 소지품을 자리에 놓고 6시가 지나도록 오지 않기도 하고, 운영 종료 시간이 다 되어 대출을 하겠다고 데스크로 몰려오는 경우도 많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 날은 유난했다.

5시 50분부터 대출자, 예약 대출자가 데스크로 몰리기 시작하더니, 아까부터 인쇄 PC를 사용하던 이용자가 인쇄가 제대로 안 된다며 데스크로 문의를 했다.


덕분에 보통 10분 전부터 자료실 정리 등 마감 준비를 하는데 이 날은 두 선생님 모두 데스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마감 3분 전에 회원증을 발급받겠다는 이용자도 몇이나 방문하고, "도서를 대출하고 싶은데 회원증이 있어야 하나요?" 하는 정말 당연한 질문을 하더니 "그럼 회원증을 만들어주세요." 하면서 이번엔 신분증이 없단다. 와우!!


인쇄 PC는 줄까지 서 있었고, 결국 6시 마감 시간을 넘겨버려 기다리던 이용자에게 데스크에 있는 직원용 PC를 사용하도록 했다. 기다렸다 직원 PC를 이용한 분은 고맙고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떠났다. 인쇄가 안 된다고 한 분은 PC 세 대에서나 해봤지만 안 되는 것을 보니 PC 문제가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문제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전산 담당 선생님까지 퇴근을 못하고 도와주었건만, '덕분에' 마감도 못하고 퇴근도 못했건만,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오늘까지 꼭 출력해야하는데 못했다며 뾰루퉁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서는 그녀를 보면서 참, 생각이 많아졌다.


게다가 학습열람실엔 '러브버그'가 창궐하여 시시덕시시덕.

다른 이용자들은 그걸 참아주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자기 공부에 열중하느라 그들은 '아웃 오브 안중'인지 그꼴을 직원에게 '신고'도 안하고 있었다. 이럴 땐 또 너무 선량하단 말이지...

'러브 버그'들은 직원들의 퇴실 안내에도 꿋꿋이 시시덕시시덕, 마감 시간이 지나도 어슬렁어슬렁.

혹시 일부러 저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시덕과 어슬렁을 보여주며 유유히 퇴장하셨다.

아...

기운이 쏙 빠진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조금 이상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뭐 그런거지 하지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 격하게 땡기는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빌런 총량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