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Jan 05. 2023

나는 금사빠다

나는 왜 금사빠가 되었을까?

금사빠가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쯤은 많은 사람들이 알 정도로 대중적인 줄임말이자 신조어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금사빠를 첫눈에 반한 남녀 간의 사랑에만 빗대어 말을 한다.

하지만 금사빠는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동성을 비롯해 동료나 선후배, 사제지간, 이웃, 종교인, 정치가, 연예인 등등.

전반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모든 대상을 포함하며 아울러 사람이 아닌 일상에서 겪는 모든 일에 적용이 된다.


금사빠들은 매사에 뭔가를 시작할 때면 당장 끝장을 내고 말 것처럼 호기롭게 시작하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고 포기도 빠르다. 

마치 양은냄비처럼 금방 끓고 금방 식는다.

금사빠 아이들은 새 장난감을 선물 받으면 몇 날 며칠을 그것만 가지고 놀다가도 이내 싫증이 나 구석에 쳐 박아둔다.


무언가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쉽거나 간단한 것들은 미처 싫증이 나기 전에 다행스럽게도 끝마칠 수가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것, 복잡한 것은 만들다가 집어치우고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사이에 이미 흥미나 관심이 식어 버린 탓이다. 

그래서 금사빠의 집은 만들다 만 물건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널려 있을 것이다. 

금사빠의 대상은 뜨개질일 수도 있고, 장난감일 수도 있고, 공부일 수도 있고, 노래일 수도 있고 취미생활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었을 때는 금전적인 지출 이외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사람이었을 때는 문제가 된다.

굳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금사빠들은 한마디로 속도조절이 안 된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가 맞지 않는다. 

첫 만남에 둘 다 호감을 가졌을 경우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속도가 둘 다 시속 10km이고, 두 번째 만남에는 30km, 세 번째 만남에는 50km로 다가가고......

이렇게 만날수록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가 같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금사빠들은 첫 만남에 상대방이 마음에 들거나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심봤다.~!!!' 

'이 사람이다. 이제야 나의 영혼의 단짝을 찾았다.' 

외치며 터보엔진을 가동하여 시속 200km로 상대방에게 돌진한다. 

다행스럽게 상대방도 금사빠라면 순식간에 호형호제하며 급속히 친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시속 200km로 직진하는 금사빠와는 달리 상대방은 시속 10km로 서서히 속도를 올려서 

'괜찮은 사람 같기는 한데~'  

'몇 번 더 만나면서 좀 더 알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서서히 예열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둘의 거리는 절대 좁혀지지 않는다. 

왜냐면 금사빠의 속도에 밀려 상대방은 빠르게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가 맞지 않을 때는 금사빠도 상처를 받고 상대방도 상처를 받는다.




금사빠들은 매우 친화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처음 본 상대라도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상대방과 빨리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 기저에는 낮은 자존감이나 불안감이 있어서 한시라도 빨리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어 안정감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려면 빨리 내가 가진 패를 보여주고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퍼줘서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내가 가진 모든 패를 다 까서 보여 준다. 

거기에 더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가진 것들을 마음껏 퍼준다. 

그것이 마음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알고 있는 정보나 노하우까지 아낌없이 전부 퍼준다.

'내가 그렇게 하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하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는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당연히 상대방도 나 같으려니 하는 혼자만의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사빠들은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설마 나한테 사기를 치겠어.' 하며 상대방의 말을 잘 믿는다.

믿음만큼 배신감이나 충격은 훨씬 크다.

나 역시 사기를 당한 적도 여러 번이고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몇 번의 사기를 더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금사빠들은 나는 이미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기 때문에 상대방과 엄청 친한 것 같은 착각을 하며 거침없이 상대방의 영역으로 침범한다.

그런데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런 행동은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나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내 영역으로 훅 들어오면 누구라도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쁘지 않겠는가?



금사빠에게 있어 최악의 궁합은 천천히 사랑에 빠지는 천사빠, 사람을 사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은근하게 덥혀지는 은사빠와의 만남이다.

이 둘의 만남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앞에서 말했듯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금사빠로서는 '나는 이미 너에게 나를 다 보여줬는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알려줬는데 너는 왜  아직도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거지?' 하며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내가 싫은가? 내가 실수한 것이 있나?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지독한 상처를 받은 채 심한 마음 앓이를 한다.


상처를 받는 것은 금사빠뿐만이 아니다. 천사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금사빠에 대해서 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데 왜 저렇게 혼자서 일방적으로 들이대며 직진을 하지?' 

'내가 그렇게 쉬워 보이나?' 

'혹시 나를 우습게 보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하며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더 꽁꽁 닫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금사빠로서 금사빠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비록 상대방이 원치 않았지만, 나름대로 호의를 갖고 일방적으로 많은 것을 퍼줬지만, 비록 나만의 감정이지만, 그래도 배신감이나 자책감도 크고 심한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살아온 세월만큼 헤아릴 수 없는 금사빠질을 하면서 수많은 천사파나 은사빠를 만났었고, 그만큼 여기저기 생채기가 많다.

하지만 경험을 했다고 해서 '다음부터는 절대 사람에게 정을 주지 말아야지. 먼저 다가가지 말아야지. 다 퍼주지 않을 거야' 하고 굳게 마음먹는다고 금사빠질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금사빠는 타고난 기질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타고난 기질은 연습이나 학습을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생득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같은 상황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단, 상처를 덜 받으려고 하고,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라고, '오늘도 난 금사빠질을 했구나' 생각하고, 툭툭 털어내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금사빠가 되었을까? 

쉽지 않은 고백이지만 내가 금사빠가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들어본다면 나와 같은 금사빠들도 한 번쯤 자신의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원인을 알면 해결도 할 수 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심리학을 배우고 전공하면서 얻은 소득이 있다면 나에 대한 자기 분석을 확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왜 배가 고프면 이유도 없이 화가 나고 제어가 안 될까?' 

'내가 왜 금사빠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여기에는 나의 출생의 순간과 영아시절이 깊은 관련이 있다고 나는 분석했다. 



나를 낳으면서 산모인 엄마는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지금처럼 병원에서 출산을 하던 시기가 아니었고 산파의 도움으로 가정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상황이었다.

산모를 살리려고 의사를 불러오고, 몇 박스의 수혈을 하고, 온 가족이 뜬 눈으로 산모를 병간호하는 긴박한 순간이 3일이나 이어졌다. 

딸 많은 집안에 또 딸로 태어난 나를 돌볼 정신은 가족 중 그 누구에게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난 날은 12월 29일로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절절 끓는 아랫목에는 산모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갓 태어난 나는 웃풍이 있는 윗목에서 이불에 덮인 채로 방치 됐다.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3일 만에 겨우 엄마의 의식이 돌아왔고, 가족들은 그제야 "아차~!!! 아기는" 하고 신생아 생각이 났더란다. 

아무도 보살피지 않았으니 죽었으려니 하고 3일 만에 이불을 들추고 봤더니 신생아는 희미하게 실낱같은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가족들은 다시 나를 살리기 위해 노력을 했을 터이다. 

나는 아직 몸을 추스르지 못해 환자인 엄마의 젖을 먹지 못했다. 

마치 심봉사 등에 업힌 심청이처럼 겨우 열 살짜리 큰언니의 등에 업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웃에서 출산을 한 산모들의 동냥젖을 얻어먹었다. 

그 집 아이가 먹고 남은 젖을 먹어야 했기에 당연히 양껏 먹을 수가 없었고, 배불리 먹지 못해 항상 배가 고팠을 것이다. 

허기에 지쳐 울면 미음을 쒀서 먹였고 나는 동냥젖과 미음으로 연명을 했다.


그렇게 젖배를 곯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배가 고픈 것을 참거나 견디질 못하고 공연히 화가 났다.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잘 보여야 한다는 불안함을 온몸에 장착했을 것이고, 그래서 금사빠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분석을 했다. 


이유가 어쨌거나 나는 금사빠다.

그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나의 패를 꺼내서 보여주는 것을 될 수 있으면 천천히 하려고 노력하고, 나의 속내를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도 쓴다. 

상대방의 속도에 내 속도를 맞추려 노력하고, 기다려주려 노력하기도 한다.


나의 글을 보면서 눈치를 챘겠지만 내가 하는 말의 끝은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저 나와 속도가 맞지 않은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는 나의 각오이자 다짐이지 타고난 금사빠의 기질은 어쩔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금사빠일 테지만 나와 속도가 다른 은사빠·천사빠들을 재촉하거나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부류인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


"나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금사빠이다."



이전 10화 나는 널 부른 적이 없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