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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희 Aug 02. 2024

그녀의 밥

양상추와 제육볶음


며칠 전의 호박전 소시지 전이 맛있어서 오늘은 집에서 저녁을 해 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퇴근길에 슈퍼에 들렸다 

딱히 메뉴가 생각나지 않아 슈퍼 안을 배회하고 있을 때 소리가 들렸다    

  

" 혹시 옆집 아가씨? " 

"네? 아! 옆집 분!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주신 전 맛있게 잘 먹었어요 "

"그래요? 다행이네요~ 나는 혹시나 부담스러울 까봐 

걱정했는데~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줘서~"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만 인사하고 슈퍼를 빠져나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걸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적당한 게 있나 해서

 둘러보고 있었어요 "

"아~ 그럼 혹시 제육볶음 어때요? "

"어... 뭐.. 괜찮은 것 같아요."   

괜찮은 것 같다니...  나는 솔직히 별로다. 

제육볶음은 회사 김 과장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점심 메뉴로 자주 먹는다. 

조금 지겨운 느낌이랄까?

김 과장은 집밥 같아서 좋다고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지만 딱히 정해진 메뉴도 없던 터라 좋네요라고 대답했다. 


슈퍼를 나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그냥 라면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그때 그녀가 말했다.

 

"제육볶음이 그래요 사실 흔한 메뉴 기는 하지만

집에서 금방 한 하얀 밥에다가 상추랑 쌈장, 

마늘이랑 청양 고추를 넣고 싸서 한입에 와구~~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그 첫 입이 가장 맛있지요 "   

  

뭐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입에서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별로였던 음식이 그녀 말 몇 마디에 군침 도는 음식으로

변하다니....    

 

"네 그러게요. 진짜 맛있겠네요 "

나도 모르게 호응을 하자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실은 나 장 다 봤는데 내가 저녁 해줄까요?

 우리 집에 와서 제육볶음 먹을래요?"


"네? 아!  아니에요!! 저번에도 신세 졌는데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죠!!"


갑작스러운 그녀의 제안에 부담이 된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뭐 어때요~! 제육볶음이라는 게 일 인분만 못해요.

 남겨 뒀다 먹어도 처음 그 맛이 아니고...

결국에는 쓰레기통행이더라고요.

 오늘 산 고기도 양이 너무 많아요.

 같이 먹어요 집에 가서 씻고 오면 내가 밥상 

딱 차려 놓을게요~! "   

 

그렇다. 나도 수많은 음식들을 냉장고 속에서 고이 썩혔다가

음식 쓰레기로 버린 게 한두 번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깐 얼군 본 사람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고???

그건 절대 불가!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얼굴을 봤지만 

초롱한 눈빛, 오늘 저녁은 꼭 너에게 제육볶음을 먹이고 음식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그녀의 눈빛에 

나는 기가 죽고 말았다    



집에 도착한 나는 샤워를 하며


' 뭐라도 가져가야 하는데 뭐 좋을까?'

'그냥 라면이나 먹어도 되는데 괜히 귀찮게 되었네 '


라는 생각을 했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딱히 줄만 한 게 없다. 

아까 슈퍼에서 정신없이 끌려 나와서 장을 본 것도 없다 


'과일이라도 사 올걸 그랬네...

아! 맞다!!!

며칠 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한 팩이 있지! 

그거라도 가져가야겠다!'

      

그녀의 문 앞에 서있다 

갑작스러운 약속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인데

며칠 전까지 얼굴도 몰랐던 옆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다니...

작은 쇼핑백에 팩을 담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문 밖으로 압력솥의 밸브 소리가 들린다. 


'압력 밥솥... 밥이다.'     

나는 무심코 내뱉었다 

나는 압력솥에 한 밥을 정말 좋아한다.

그 하얀 밥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갑작스러운 식욕이 또 밀려온다. 

배속에서 꾸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도 모르게

서둘러  현관벨을 누르고 있었다

      

띵동~!

 

"어서 와요~! 마침 밥도 딱 됐어요~! "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가 차려 놓은 식탁 위에는 

양상추와 쌈장, 청양고추, 마늘  그리고 빨갛게

윤기가 흐르고 통깨가 뿌려진 제육볶음, 

그리고 하얀 쌀밥이 김을 내고 있었다    




  





"맛있게 먹어요~! 

참! 상추쌈보다 더 맛있는 게 이 양상추쌈이에요.

여기다 싸서 한번 먹어봐요.

아삭하고 진짜 잘 어울려요 "   


"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양상추는 정말 잘 어울렸다.

샐러드로만 먹었던  양상추의 재발견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갓 지은 밥에 먹는 제육볶음의

첫 입은 가장 맛있었고, 환상적이었다. 

낯설게 느껴졌던 그녀의 집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압력솥의 김 때문인지 하얀 밥의 윤기 나는 냄새 때문이지 

마음도 순간 편안해졌다.      

내가 김 과장이 좋아하는 제육볶음을 싫어했던 이유는

밥 때문이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식당에서 먹었던 입속에서  흩어지는 밥알에 나는 싫었다 

압력솥의 하얀 밥은 한입 한입 

먹을수록  행복감을 주었다  

맛있는 밥을 먹어서 느끼는  행복감에 

내가 너무 단순한 인간인 것 같아 순간 부끄러웠다

      


"저 아가씨 이름이 뭐예요? 이름 정도는 알고 싶은데”


“네 한지영 이에요 ”


“어머 그래요? 나는 한지숙인데~! 이름이 비슷하네요?!” 


“어! 그러네요 이름이 한 글자만 다르네요~”


“하하 이것도 인연인가 봐~

저기...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갈래요?

요즘  저녁은 집에서 차려 먹으려고 하는데 

항상 많이 남아요. 

그래서 같이 먹을 사람 있으면 좋겠다 했거든요”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저녁은 회사에서 자주 때우고 오니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것 같고, 무엇보다 오늘 같은 저녁밥이라면 

오히려 너무 감사할 것 같았다. 


“그럼... 같이 먹고 싶으신 날 문자 주시겠어요?

제가 회사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도 많아서요.”

나는 핸드폰을 들며 말했다


“그래요~!! 좋아요~! 너무 귀찮게 하지는 않을게요~!” 


식사 후 뒷정리를 돕고 챙겨 갔던 팩도 

전해주고 집에 돌아왔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는 않는다. 

몇 분 전까지 핸드폰을 뒤적여서일까?

자기 위해 불을 끄고 티브이를 끄고 나면

갑작스러운 적막이 싫어 시작한 핸드폰 보기는

나의 잠들기 전 습관 중에 하나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왜 혼자 살지?' 


오늘 들렸던 그녀의 집에 그녀 외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주부처럼 보였던 혼자 살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하긴 하지만 나는 절대로 먼저 물어보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는  물어봐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녀 역시 나에게 이름 외에는 나이도, 직업도, 그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밥을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다음에도 그녀 집에서 밥을 먹게 되면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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