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희 Aug 02. 2024

그녀의 밥

01. 분홍 소시지 전과 애호박 전은 세트 


노을 지는 골목길

집집마다 저녁밥 냄새가 난다.  청국장 냄새, 김치찌개 냄새, 생선구이 냄새...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배고프네 집에 가서 뭐 먹지? 장 봐 놓은 것도 없는데.. 

오늘도 배달 음식?

아니면 장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동네 슈퍼에 들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 하루 먹자고 산  재료들이 썩어져 버릴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 그냥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한 나는 깜깜한 방에 노란 스탠드 불빛을 먼저 켠다. 

나의 작은방... 가구도 별로 없고 비싼 물건 하나 없는 방이지만 

퇴근 후 피곤한  내 몸을 누일 작은 집이  나에게는 위로이다. 

작은 노란 스탠드 하나면 썰렁한 나의 자취방도 꽤 아늑한 느낌이 난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습관적으로 냉장고를 열어 보다.

역시나 텅 빈 냉장고에 실망하며 차가운 냉수 한잔을 들이켰다.

얼마만의 정시 퇴근인지 모르겠다. 

늘 저녁은 회사에서 때우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오늘같이 갑자기 일찍 집에 들어온 날은 

따듯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밥을 차릴 힘도, 재료도 없다.      

회사에서 퇴근할 때는 그저 지친 몸을 빨리 내 침대에 눕히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는데 

골목길에서 나던 저녁밥 냄새들이 내 허기를 자극했다.      



배달 음식은 지겹지만 그래도 주린 배를 달래려 적당한 가격의 음식을 고르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씻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내 몸은 이미 침대 위의 편안함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조용한 방이 싫어 일단 티브이를 틀고  

음식이 오면 볼 먹방이 뭐가 있을까 이리저리 너튜브 세상을 탐색한다.    

처음 독립을 시작하고 몇 달은 퇴근 후 먹방을 보며 먹는 저녁밥이  행복하게 느껴졌지만 

요즘은 그것도 시들하다. 

언제부터 인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많이 먹으면 부대껴서 기분이 나빠진다.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애꿎은 리모컨을 돌리고 있을 때 갑자기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

"띵동 띵동"



갑자기들리는 현관문 벨소리에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방금 전 시킨 음식이 벌써 올 리 없고

찾아 올 사람도 없는 나의 자취방의 벨소리는 불쾌한 감정과 함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도대체 누구지?'

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현관 손잡이를 붙잡 물었다. 


"누구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옆집 사는 사람이에요~

오늘 전이 먹고 싶어서 했는 많이 남아서요

분명 내일은 제가 안 먹을 것 같아서 나눠 먹을까 하고요~"


옆집 사는 사람?

몇 주 전 주말 아침 이삿짐 옮기는 소리가 나더니  그때 이사 온 사람인가 보다. 


문을 연 현관문 앞에는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서있었다 

얼굴이 동글하고 인상은 좋아 보인다. 

그녀의 두 손에는 분홍소시지와 애호박 전이 들려 있었다.   

  


 

"감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며칠 전에 이사 왔어요.  인사도 하고 전도 나눠 먹을 겸 해서요~"



"아 네..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그렇게 나의 두 손에는 전이 쥐어져 있었다.

전은 따뜻했다. 

달큼한 애호박 전과 익숙한 맛의 소시 전의 고소한 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집어 입으로 넣었다. 


     

'분홍 소시지랑 애호박 전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소소한 반찬이지만 일에 치여 사는 나에게는 해볼 엄두도 나지 않는 음식이다. 

썰기, 씻기, 밀가루 계란 묻히기,  붙이기.... 그리고 설거지...

생각만 해도 매우 귀찮은 음식이다.

요리를 잘하는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지 모르겠지만 

퇴근 후 서 있을 힘도 없는 나에게는 따뜻한 전은 사치이다. 

배달시킨 음식에 전까지 오랜만에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퇴근 후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잠깐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시계는  한밤중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티브이 앞에 누워 시간을 보내며  이상한 자괴감이 들지만 

멀리 던져 놓는다.

번쩍거리는 티브이의 빛이 싫지만 끌 용기는 나지 않는다. 

적막함이 몰려오면 괜스레 견디기 힘든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흘러나오는  티브이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들겠지... 

잠이 슬슬 몰려올 때 나지막이 중얼거려 본다. 


'내일 하루도 무사히 보내게 해 주세요. 

내일 하루를 견딜 힘을 주세요. 

저는 너무 피곤해요.'


누군가 내 바람을 들어줄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중얼거려 보며 내일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 보려고 한다. 

'제 소원은 아주 작은 소원이니 들어주세요...' 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