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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희 Sep 03. 2024

그녀의 밥

불안한 날에는 홍차와 케이크 (1)




-지숙의 이야기-  



쥐가 돌아다닌다.

천정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나의 신경을 긁던 쥐는 어느새 내 침대에까지 내려와 앉아 있었다.

나는 잡아 보려고 몽둥이를 휘두르지만 이 녀석은 날쌔다.

한참을 잡지 못하던 나는 겨우 쥐를 내려쳤지만

몽둥이는 쥐를 허무하게 통과했다

날쌘 쥐는 나를 보며 웃으며 무엇인가 말까지 걸기 시작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




그런.. 꿈이었다


그 꿈을 꾼 새벽 나는 불현듯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렇게 홀로 늙어가며 병들어 죽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생각은 마치 실제로 일어날 것처럼 명확했고 실제 같았다.내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기적 같은 일 따위는 내 삶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새벽 끙끙 으며 몸부림을 치다 다시 잠이 들었다      

잠에 취해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관문 벨이 울렸다

다급하게 누르는 벨소리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더니

화를 내며 씩씩 거리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대체 왜 전화를 안 받아!!!”


“무슨 일인데 그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감추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서현이가 사고가 났어! 교통사고”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무무슨 말이야 사고라니 많이 다쳤어?”


“일단  병원에 좀 가줘! 나는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지방에 내려가야 해  당신이 가서 병원에 좀 있어”


아..알았어”


방으로 들어가 대충 옷을 입었다 남편은 대충 나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고 급하게 나갔다      

한 달 만에 보는 서현이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불행중 다행히 팔이 부러진 정도였다 자전거 탈 때 그렇게 조심하라고 이야기했는데

속이 상했다

서현이는 나를 보며 말했다


“뭐야 그 얼굴은 누가 보며 큰 사고 난 줄 알겠네”


“교통사고 났다고 해서 급하게 왔어 몸은 좀 어떠니?”


“아프지 뭐 ”


“그래.. 이만하길 다행이다. 앞으로 자전거 타지마”


“뭐래 탈 거야”


“그래 니 맘대로 해 그러다 또 다치면 엄마 안 올 거야”

서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이게 뭔가.....

오랜만에 만나 딸 더군다나 교통사고 간 난 딸을 앞에다 두고 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는 딸이 밉기도 했다      

서현이는 사춘기가 오면서 자꾸만 나와 멀어져 갔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게 아닌가 싶다 가도 화가 치밀어 올랐고 내 탓을 해대는 남편 때문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 가족은 점점 그렇게 멀어져 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서현이는 서현이대로 어느샌가 우리가 사는 집은

가족 중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그때쯤 나는 집이 답답했다

남편과 집에 있는 게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남편은 하지도 않던 잔소리를 시작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어느새 우리는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며 서현이에게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보이는 것도 빈번했다

입시로 한창 예민하고 힘들었을 서현이에게 우리는 더 짐을 지워 주고 있었다

살얼음판 같았던 시간들이 지나  서현이가 대학을 들어가면서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서현이에게는 직장이 핑계였지만 남편과 나는 암묵적으로 별거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서현이도 어쩌면 알았을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오겠다던 내가 한 달에 한번 집에 갈까 말까였으니까     

 



서현이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 부부 사이는 좋았다

나는 남편을 정말 사랑했다 그는 나에게 남편이자 아빠 같은 사람이었다

결혼 전에 내가 느꼈던 불안감을 안정감으로 바꿔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점점 변해갔다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원래 알던 남편이 모습이 아닌 것처럼 생각도 말투도 눈빛도 모든 게 점점 달라졌다

그렇게 점점 쌓여가는 불만들이 나도 변하게 했고 그때 우리가 사랑했던 서로의 모습은  사라져 갔다      


하지만 싸우고 또 싸우면서도 나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나의 삶의 일부였던 남편을 완전히 끊어 낸다는 게 온몸이 떨릴 만큼, 주저앉아

울고 싶을 만큼 나는 힘이 들었다  

그저 남편이 조금이라도 나를 다시 생각해 주고 사랑을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말해보기도 했다

목구멍이 꽉 막힌 것 같았지만겨우 내뱉은 내 말에 남편의 반응은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어찌어찌 서현이가 대학에 가고 나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며 나도 집을 나왔다


간절히 바라도 이뤄지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그래도 간절히 바라며 집을 나왔다

일단 내가 좀 살아나고 나면 이런 상황을 개선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런 꿈을 꿨나 보다    

            


내 꿈속에 나왔던 쥐는 나의 불안이다

나의 두려움이다. 아무리 잡으려고 애를 써도 잡히지 않고 나를 비웃으며 절대로 사라지지 않겠다는 듯이  어느새 내 침대에게 까지 내려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나는 돌아갈 수 도 이곳에 마음 편히 머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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