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글쓰기-전쟁의 아픔

기념관에 전시된 물건이나 사진이 되어 전쟁 상황을 보여주는 이야기 쓰기

by 꿈꾸는 임

저는 피난민들이 잃어버린 장난감입니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가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들이 남한에 쳐들어 왔습니다.

엄마 아빠 아이는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아이는 장난감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피난민들이 너무 많아 아이는 결국 장난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엄마 아빠는 빨리 피난을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는 장난감을 잃어버려 울면서 피난하였습니다.



<마지막 신발>


저는 한 아이의 신발입니다. 그 아이는 저를 아끼고 잘 보살펴 주었지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 아이 엄마는 아이를 급하게 깨웠지요.

아이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신발장으로 뛰어가 나부터 챙겼지요.

나는 그때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고

“혹시 나를 피난길에 버리고 가는 건 아니겠지?”

라는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요.

그런데 아이 엄마가 폭탄을 밟아서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답니다.

아이는 너무 놀아 울음을 터트렸어요. 아이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피난을 계속 갔지요. 그러자 아빠까지 세상을 떠나버렸어요. 아이는 털썩 주저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았지요.

그때, 나도 무슨 기분일까 고민했지요. 아이는 눈물을 닦고 피난을 계속 갔지요.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이모를 만났지요. 그래서 너무나도 기뻤지요. 아이는 이모를 보고 나를 보관할 상자가 있으면 달라고 했다. 그리고 2023년 지금까지 나는 그 상자 안에 있고 아이는 지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할머니가 되어 있었지요.



<저는 반지예요>


6월 25일 새벽, 밖에 펑! 하고 소리가 나서 주인님은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어요. 주인님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가게 되었어요. 주인님의 부인은 헤어지면서 서로의 반지를 건네주었어요. 그리고 약속을 했지요. 꼭 살아남아 반지를 서로 끼워주자고 약속을 했어요. 주인님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며 전쟁터로 나갔어요. 총을 들고 뛰다가 주인님은 발목을 다쳤어요. 하지만 아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참고 견뎠어요. 어느덧 전쟁이 끝나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어요. 아내는 울며 주인님을 끌어안으며 말했어요. “살아서 다행이에요.” 하며 서로를 끌어안으며 기뻐했어요.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군모>


나는 군인의 머리를 지켜주기 위해 있는 모자입니다.

어느 날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침하였습니다.

나는 군인의 머리를 적의 총으로부터 지켜줘야 합니다.

전쟁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나를 쏘고 있는 군인은 아주 용맹하게 적에게 맞서 싸웠습니다.

나도 마지막까지 이 군인을 지켜줘야 합니다. 그리고 꼭 그럴 것입니다.




저는 UN 박물관에 전시된 군복입니다. 저는 군인을 지키는 옷입니다.

군인들이 절 입고 싸웠어요. 처음에는 군인들이 절 무거워하고 입기 힘들어했어요. 근데 군인들이 적응해 나가자 저도 힘들지 않았어요.

어느 날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쳐들어 왔어요. 군인들이 절 입고 전투에 참여했어요. 심하게 싸웠지만 나를 입었던 군인들이 쓰러졌어요.

6년 뒤에 박물관에서 절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전시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절 보고 많이 울었어요.




나는 남겨진 강아지예요.

가족들은 전쟁이 났다고 피난을 갔어요. 나만 빼고요. 너무 슬퍼요.

하지만 나도 피난을 가야 해요. 아니면 내가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빠르게 뛰었어요.

나는 혹시나 가족이 있을까 봐 두리번 두리번거려요.

어! 우리 가족의 얼굴과 비슷한 사람을 찾았어요.

가족들도 나를 보고 나를 끌어안았어요.

이제 난 혼자가 아니여서 기뻐요.





<저는 우리 국군의 수통입니다>


저는 우리 국군이 항상 저를 허리에 달고 다녀요.

주변에서 포탄 소리, 비명, 총알 소리에 놀란 군인이 제 뚜껑을 열어 마시곤 해요.

제 주인은 제 몸에 있는 물을 다 마시지도 못하고 적군의 총알에 의해 영원히 잠들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피부를 가졌지만 지금은 푸르슴한 녹이 온몸이 퍼져 아주 볼품이 없어요. 하지만 저는 또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누구보다 먼저 우리 국군의 작은 힘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저는 버려진 총입니다.

저는 전쟁이 나면 사람들이 저를 쏩니다.

6월 25일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저를 많이 쏘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총도 많이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총 덕분에 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이 많이 버려져 있어 슬펐습니다.




<한 군인의 버려진 낡은 총>


안녕하세요. 저는 한 군인의 버려진 낡은 총이에요. 어떤 박명수란 사람이 절 돌봐줬어요.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났어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전쟁 사이렌이 울려 왔어요. 박명수란 사람은 저를 껴안고 전쟁에 참여했어요.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저희는 느리게 대처했죠. 박명수는 저를 북한군한테 쐈어요. 그래서 북한군 2명이 죽었어요. 하지만 북한군도 총으로 박명수를 쐈어요. 박명수는 끝내 숨을 거두었고 저는 아무도 만져 주지 않는 낡은 총이 되었어요. 지금은 UN 평화 기념관에 있답니다.





나는 어두컴컴하고 낡은 창고 구석에 박혀있는 군인 모자다. 친구들과 같이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탱크와 또 다른 군인들이 있었고 총을 들고 우리를 향해 쏘고 또 쏘았다. 그러다 보니 군인들의 비명 소리와 엄청나게 큰 탕! 탕! 소리가 끝도 없이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군인을 위해 끝까지 이 사람을 지킬 것이다.




나는 전쟁에 사용하는 총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 사용해. 근데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너무 무서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으면 어떡하지?

전쟁이 시작할 때보다 지금이 더 무서워. 차라리 내가 부서지는게 좋겠어.





저는 보따리입니다. 6·25전쟁에 피난민이 썼던 보따리예요.

저에게 쌀, 중요한 물건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피난 갈 때 짐을 챙겨 다닙니다. 전쟁에서 부딪치기도 해서 찢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쥐거나 머리에 이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나는 군대 안에 있던 수많은 총 중의 하나다. 어느 날 6·25전쟁이 일어났고 나는 군대 밖으로 나가자 두려웠지만 용감하게 싸우는 도중에 내 주인이 나를 떨어뜨리고 없어져 버렸다. 나는 바닥에 혼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주인은 내가 없어서 불안하고 무서웠을 것 같다. 내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발 살아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저는 6·25전쟁 당시에 김대한이라는 27살의 강한 군인의 총이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 군인이랑 싸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군인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국군과 UN군의 대반격을 해냈습니다. 38선도 돌파했습니다. 근데 중국의 불법 개입이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다시 뺏겼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어서 UN과 다시 반격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도 북한도 힘들어서 휴전했습니다. 제가 죽인 북한군은 84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공격한 북한이어도 총을 북한군한테 쏠 때는 너무 힘들고 슬펐습니다.




<군인들의 모자>


군인들은 항상 나를 쓰고 다녔어. 잘 땐 나를 군인 자기 자리 옆자리에 날 항상 두고, 훈련받을 때, 연설을 들을 때 난 하상 옆에서 지켜주었지.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어. 나를 머리에 쓰고 북한과 전쟁을 했지. 나는 총도 맞고 치고받았지.

3년이 지나고 38도선을 긋고 잠시 전쟁을 멈추었어. 그렇다고 전쟁이 끝난 건 아니야.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어. 그래도 날 쓰고 항상 군인 옆에 있는 게 꿈만 같았어. 다음에 또 멋진 군인을 지켜주고 싶어!



<피난민의 신발>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피난길에 오른 7살 리한이의 신발이야.

6·25전쟁이 터져서 리한이는 남쪽으로 걷고, 또 걷다 아빠에게 안겼다가 발이 퉁퉁 부어서 내가 발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너무 힘들게 피난길을 걸어가고 있는 리한이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어.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수많은 피난민들 사이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힘들어도 꿋꿋하게 걷는 리한이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어. 지금은 무사히 도착해서 10살이 된 리한이가 나를 신지는 못하지만 리한이 동생 로운이가 커서 다시 신어줬으면 좋겠어.



<피난길에 잃어버린 장난감>


저는 피난길에 잃어버린 장난감입니다. 제 눈앞엔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로 뛰어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나를 꼭 안으며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장난감보다 습득력이 빨라서 알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나의 가족 같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 전쟁 때문에 나는 한순간에 주인님을 잃고 말았습니다. 전쟁은 아주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전쟁이 사라졌으면, 끝났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휴전입니다. 하지만 주인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가족사진>


나는 가족사진이에요. 가족은 맨날 저를 보고 있죠. 아빠가 전쟁이 나갔는데 총을 맞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가족은 모두 슬퍼했어요. 엄마는 항상 저를 보면서 맨날 울어요. 그때 나의 마음은 속상했어요. 그런 엄마도 탱크에 죽었어요. 너무 슬퍼요. 아이는 항상 울었습니다. 아이는 물건을 들고 가 혼자 어딘가로 슬프게 살았습니다.



<피난길>


1950년대 6·25전쟁 일어났다. 어느 가족이 피난길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군을 보았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북한군을 유인할 테니 먼저 가거라.”

엄마랑 아이들은

“꼭 살아서 와요”라고 했다.

엄마와 아이들은 도망가고 있는데 갑자기 북한군이 몰래 밑에 폭탄을 놔두었다. 엄마가 그걸 밟았다. 엄마가 이렇게 아이들에게 말했다.

“밑으로 쭉 가서 땅을 파서 거기 숨어 있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거기서 살아라.”

1년이 지나고 아빠가 왔다. 아이들은 아빠한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아빠는 펑펑 울었다.

통일 전망대에서 본 영상을 봤을 때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고 북한이랑 빨리 통일돼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면 좋겠다.




저는 육군의 아주 위대한 총이에요. 저는 6·25전쟁 때 18실 심광진의 총이었어요. 심광진은 아주 착했어요. 군대에 가서 사격했을 때 저를 처음 만났어요. 하지만 전쟁 때문에 심광진은 저와 같이 더 이상 못 있게 되었어요. 저는 박물관에 살고 있습니다.



<피난민의 가방과 신발>


한 가족은 매우 슬펐습니다. 왜냐면 마을에 전쟁이 일어나 마을을 떠나려 했지만, 아버지는 전쟁에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금방 가겠다 하였지만 나만 발견되고 아버지는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저씨를 찾고 싶지만 못 찾는다는 것이 매우 슬펐습니다.



<피난민의 장난감>


저는 피난민의 장난감이에요. 제가 제일 행복했을 때는 제 주인이 저를 구매했을 때예요. 왜냐면 저를 구매했을 때 행복해했거든요.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북한군의 침입으로 제 주인의 가족은 떠나야 했어요. 그래서 헤매다가 사람들이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배가 있었어요. 근데 그 배는 사람들을 태우려 온 게 아니고 미군의 무기와 군수품을 옮기기 위해 온 것이었어요. 그래서 미군 민정 고문인 현봉학 박사가 부탁하자, 유엔군 책임자인 에드워드가 허락해서 제 주인이 많은 사람들이 그 배를 탔어요. 그때 제 주인이 저를 손에서 떨어뜨렸어요. 주인을 못 만나도 괜찮아요.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남겨진 강아지예요>


그 당시 상황을 말하자면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저는 사람들을 따라 피난길에 갔어요. 사람들이 너무 북적거려 걸려서 머리가 어질어질했어요. 군인들인 총과 폭탄을 던지고 쏘았어요.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가족들이 저를 버리고 가서 집에 남겨져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착한 사람들 덕에 살 수 있었지요. 우리 가족들은 전쟁에 끝나고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그렇게 혼자가 되어 사람들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 걸 봐야 했어요. 너무 슬펐어요.

저는 그 상황에 가족들을 찾고 있었어요. 그 어린 꼬마 3명이 저를 많이 이뻐해 주었거든요. 저는 정신이 너무 없었어요. 저는 울부짖으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아직도 슬퍼요.

북한군들이 저를 끌고 갈려고 할 때였어요. 착한 사람들이 저를 구해주고 대신 희생해 주었어요. 그때 당시에 너무 울컥하고 고마웠어요. 그때 맨눈으로 사람들이 돌아가시는 걸 봐야 했어요. 저는 가족들이 저를 대신해 희생한 것을 전쟁이 끝나고 알았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희생하신 분들께 감사하고 또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울면서 전쟁이 끝이 났어요.




저는 어떤 군인의 총입니다. 총으로 북한군을 쐈을 때 슬펐고 미래에는 북한과 남한이 통일하면 싸울 일이 없어서 안정되거나 아주 기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용감한 군인의 모자>


나는 용감한 군인의 모자예요. 6월 어느 날 새벽 4시에 무서운 정쟁이 일어났다고 했어요. 그래서 군인들은 나를 쓰고 전쟁에 참여했어요. 그러다 저는 뒤로 넘어졌어요. 그런데 군인은 나를 봐주지도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전쟁에서 이기려고 뛰어다닌 거예요. 너무 슬펐어요. 얼른 전쟁이 끝나고 나를 다시 쓴 용감한 군인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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