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처분해야 할 것도 더 챙길 것도 많지 않은 엄마여서 물 흐르듯 지나갔다. 몇 없는 참관객부터 간이 밍숭맹숭한 육개장까지 그랬다. 좀 거창하게 가도 좋으련만. 간사한 시간은 무슨 죽음이 이리 쉬운가 싶게까지 만들었다. 뭐 하나 쉬운 것 없는 세상에 유일하게 쉬운 일처럼 보여서 더 억울했다.
나는 한산한 빈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의 영정 사진에 멍하니 시선을 보냈다. 손톱 밑둥에 난 거스러미가 거슬려 뜯길 때까지 연거푸 헛손질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엄마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더라. 엄마는 어떤 장면을 끝으로 눈을 감았을까.
틱, 은근히 날 괴롭히던 거스러미가 드디어 뜯어졌다. 뜯긴 자리엔 핏방울이 동그랗게 올라와 맺혔다. 나는 그것을 쪽 빨았다. 눈물보다야 피가 나는 게 나았다.
다행스럽게도 화장할 땐 더 털어낼 눈물이 남지 않았는지 눈가가 버석했다. 버석한 세상 따라 감정도 말라붙는 모양이었다.
이튿날 나는 엄마의 유골함을 품에 꼭 안고 광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때 푸른 초원이었던 철길은 먹이 서서히 스미는 화선지처럼 끄트머리부터 누렇게 물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휑뎅그렇게 드문드문 서있었다. 이대로라면 황야가 될 날도 머지않아 보였다.
“야속하네.”
엄마와 난 아직도 그대론데, 이렇게 고여 있는데. 세상은 몹시도 빠르게 변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아무리 시선을 고정해도 결국 휙 지나가버리는 창 밖의 나무 같았다. 붙잡는다고 잡힐 게 아니었다. 나는 오십 번 째로 놓친 나무를 끝으로 창에서 눈길을 돌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가 꿈꾸던 미래는 뭐였을까.
한때는 모두가 너도나도 입을 모아 찬란한 미래를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과, 그를 꽃피워낸 먹이사슬 최정상의 지적생명체 인류.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찬란한 미래’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무슨 병이든 고치는 만병통치약도, 저 깊은 심해에 세운 수중도시도 없었다.
현재에 남은 거라곤 온통 볼썽사나운 것들 뿐이었다. 뿌연 하늘과 검은 바다, 병든 땅. 그 멸망한 잔해 위에서 추악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죽은 사람과 그 내장을 파먹고 산 사람들.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목이 매인 채 미쳐버린 사람들.
이 모든 얼룩진 명예 속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사람은 없었다. 있었다 한들 이젠 가로 세로 20센티미터 남짓의 함으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광주역에 도착합니다. 열차에서 내리실 때는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좌석 주변과 선반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광주역에서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잠깐 선잠에 들었나 싶더니 목적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왼손엔 유골함을, 오른손엔 쌀포대로 싼 묘목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엄마가 55년간 살다 간 흔적 전부가 내 품 안에 다 들어왔다. 엄마의 모든 족적을 껴안고도 걸음이 척척 떨어졌다.
나는 엄마의 고향집에 들리기 전 삽을 챙겨 뒷산에 먼저 올랐다. 마냥 낮은 산은 아닌지라 제법 쌀쌀한 기온에도 턱 밑으로 땀방울이 뚝뚝 흘렀다. 지금쯤 고향집에 있을 외삼촌이나 이모에게 부탁하면 흔쾌히 동행해줬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까 봐 일부러 말없이 혼자 왔다. 이건 오롯이 내 몫이어야만 했다. 이것 봐, 엄마. 내가 엄마를 이렇게 거뜬히 안고 다니고 있어.
띄엄띄엄 자리잡은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미니어처처럼 보일 무렵 나는 등산을 멈췄다. 쭉 뺀 소매를 이마에 문지르자 땀으로 즉시 젖어 들었다. 내 체력이 나쁜 건지, 그냥 산이 높은 건지, 엄마가 초인이었던 건지. 어릴 적 동산 마냥 이곳을 뛰어다녔다는 엄마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과장을 잘 했으니까.’
늘 온갖 의성어와 몸짓을 버무려 맛깔나게 이야기를 푸는 건 엄마의 특기였다. 말재주로 사람을 홀리던 그 얼굴이 떠올라 픽 웃음이 샜다. 나는 마중물처럼 나온 웃음을 동력 삼아 다시 움직였다. 적당히 평평한 곳을 찾자 메고 온 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2년 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직 숨이 차 더 쉬고 싶었으나 해가 넘어가기 전 일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했다. 잠시 멎었나 싶었던 구슬땀이 다시 송글송글 맺혔다. 구덩이가 깊어질 수록 엄마의 심정을 조금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각종 변이 바이러스의 발병과 함께 먼지구름이 세상을 막 덮기 시작하던 때였다. 온갖 음모론이 빗발치고 정부의 통제조차 무용하던 종말의 초기. 집단적인 혼란 상태 속에서 엄마는 태연하게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때 난 엄마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팔짱을 끼고 서선 아니꼬운 소릴 냈었다.
“이거 지금 심어서 뭐해.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뭐 그런 거야? 지구는 내일이 아니라 내년까지도 멀쩡하니까 그런 청승 안 떨어도 돼.”
“그래. 그러니까 나중에 누군가는 먹겠지.”
“그 전에 말라비틀어져 죽을 걸.”
“그럼 내일 두 그루 더 심지 뭐. 감나무는 이제 질리면 배나무 심을까?”
“관둬, 내일 심으면 나무가 안 죽기라도 한대?”
“글쎄다, 죽을지도 모르지.”
엄마는 누리끼리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더니 다시 묘목 주변의 흙을 꼼꼼히 눌렀다.
“뭐, 죽긴 좀 죽겠다. 세상이 어지간히 각박해야 말이지.”
“근데 왜 자꾸 쓸데없는 짓을 해, 진 빠지게.”
“언젠간 살아남는 놈도 몇 나오겠지. 아무리 각박한들 세상이 죄다 죽으라는 법만 있는 줄 아니. 너는 얘네 키워서 밥 벌어먹고 사는 애가 왜 그리 매정해.”
“엄마, 제발 현실을 좀 봐.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좀 보라고.”
나는 무채색으로 뒤덮인 사방을 양팔 벌려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증거가 이렇게나 빤한데, 아주 대문짝만 하게 보란듯이 세상에 쓰여 있는데. 똥고집이나 부리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망할 놈의 이 세상이 전부 뒈지라고 날마다 공성중인 거 안 보여?”
“해수야.”
“왜.”
“아니, 너 말고. 얘.”
엄마는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방금 막 식재를 마친 묘목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얘 이름은 이제부터 해수야. 너도 앞으로 해수라고 불러.”
“아 왜 재수없게 곧 죽을 나무한테 내 이름을 붙여!”
“죽는다고 누가 그래? 얜 오래 살 거야. 너처럼.”
엄마의 손에 들린 모종삽이 허공을 휘이 저었다. 실없는 웃음소리가 그 꽁무니를 따라붙었다.
“또 아니? 저어 하늘부터 바다 끝까지 꾸역꾸역 뿌리 내려서, 세상에 다시 없을 열매를 맺을지. 어쩌면 바다처럼 광활한 숲을 이룰지도 모르지.”
바다 해에 나무 수. 내 이름은 그런 이름이었고, 엄마는 정말이지 그런 사람이었다. 사막 한복판에 어느 날 뚝 떨어져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사람.
적어도 그 땐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