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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로 Sep 11. 2024

3. 세상의 종말(3)

2026년, 가을


내가 본가를 떠난 뒤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횟수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휴일에 가끔씩 들를 때면 굳이 엄마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 홀로 지키는 집은 갈수록 찬기가 돌았다. 그러나 내 거처가 원룸에서 오피스텔로 바뀌는 동안에도 엄마는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켰다. 

그녀의 처지를 다 알면서 기댈 곳이 나뿐이라는 사실이 나는 가엾고 두려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이해자이자 청자로 남게 될까 봐. 그건 너무나 고독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엄마를 마음껏 원망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마냥 나쁜 사람이 아니라 더 힘들었다.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을, 모든 걸 헌신한 사람을 외면하면 내가 더 나쁜 놈이 되는 거니까. 어떻게 이토록 치졸한 이유가 떠오를 수 있는지. 스스로의 구차함이 혐오스러워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 이기심과 자책으로 무너지는 밤도 며칠씩 생겨났다.

그리 밤을 지새울 때면 나는 괜스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이 오르는 핸드폰을 붙잡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거무튀튀한 내 죄책감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내 잠 못 드는 밤을 함께해 주었다. 때때로 청중은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법이었다. 그러다 일주일 전 통화에서 엄마는 문득 말했다.


나도 엄마 보고 싶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살았다. 엄마의 친정은 광주에 있었다. 버스로 서너 시간, 기차로 한두 시간. 하루의 팔 분의 일 정도 되는 시간을 투자할 여유도 없어 엄마는 고향 땅을 밟은 지도 까마득하다고 했다. 유례없는 전염성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까다로워진 탓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약속했다.


이번주 금요일에 나 월차 내니까 밥 먹고 같이 내려가자. 오랜만이니까 아빠한테도 얘기해 볼게. 할머니 보러 가는 건데 가족으로 가면 좋잖아.


옷가지와 위생용품이 든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서자 뿌연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나는 밑으로 처진 마스크 부리를 미간까지 확 올렸다. 파란 하늘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매캐한 모래바람과 두꺼운 먼지, 회빛 구름만이 전세계인이 공유하는 유일한 날씨였다. 빈부격차가 그리도 극심하던 인류는 언제부턴가 하늘만큼은 똑같이 나누게 되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같은 풍경이었다. 누렇게 시들어가는 초목 사이, 먼지가 다닥다닥 붙어 빼곡히 솟은 고층 빌딩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나라는 매 해마다 그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벌써 몇 년째 이어진 극심한 가뭄 탓이었다. 표독스런 두꺼비 입처럼 쩍쩍 갈라지는 땅은 황토색 기후에 박차를 가하기 바빴다.

불행히도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종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 또한 몹시 빨라졌다. 이미 닥친 팬데믹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변이된 바이러스가 다달이 등장했다. 지구는 마침내 신음하는 중이었다. 그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인간들이 변종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리 볶고 저리 볶아도 참 끈질기게들 살아남는구나.

나는 마트에 들려 간단히 장을 본 뒤 집에 도착했다. 현관 비밀번호는 언제나처럼 내 생일이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다섯 걸음만에 부엌에 도착했다. 식탁 위에 돼지고기와 두부, 버섯, 계란 따위를 차례차례 내려놓자 엄마는 간단한 추론 끝에 물었다.


“김치찌개 하게?”

“응. 계란찜도.”

“맛있겠다. 안 그래도 네가 끓여주는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왜 나는 그 맛이 안 나나 몰라.”

“나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하는 건데. 밥통에 밥은 있어?”

“아, 깜박했네.”

“쌀부터 씻어야겠다.”


씽크대 앞에서 밥솥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내 곁으로 엄마가 쪼르르 따라붙었다.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저녁을 차리던 엄마 옆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뭐가 좋다고 별 것도 아닌 밥하는 광경을 구경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네가 오니까 온 방이 다 환해지네. 너무 예쁘다, 우리 해수.”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내 만류에도 엄마는 아이처럼 헤실거렸다. 그러다 돌연 기침을 터뜨렸다. 심상치 않은 소리였다. 한 두 번으로 그칠 것 같지 않은 거친 쇳소리가 났다. 여상한 감기로 치부하기엔 꽤나 굵직했다.

아무리 백신을 맞았다 한들 현재 감염자는 타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이미 검문소를 통과할 지역 허가서까지 받아 놓은 마당이었다. 몇 년 만에 가는 고향인데. 엄마가 불안해할까 그녀의 증상을 의심하는 의문을 구태여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일까 부러 눈도 내리깔았다.


“엄마, 앉아있어. 다 되면 부를게.”


엄마는 여전히 추스리지 못한 기침을 억지로 삼키며 소파 밑에 깔린 이부자리에 누웠다. 안방이 있는데도 밤새 티비를 켜 놓고 자는지 엄마는 꼭 거실에 둥지를 틀었다. 적막한 집이 싫다더니, 무슨 소리라도 배경에 깔려야 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깨 너머로 엄마를 일별하고서 밥을 앉혔다. 불 위에 올린 냄비가 어느 정도 달궈질 즈음엔 기름을 살짝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았다. 고기가 반쯤 익는 동안은 광주에서 외할머니가 보내준 김치 한 포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 두어 마디 간격으로 썰었다. 톡 쏘는 효소 냄새가 시원했다. 이것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이라며, ‘사이다 김치’를 예찬해 마지않았던 어린 내 목소리가 떠올랐다.

김치찌개의 미학인지 뭔지, 한 번 꼬리를 문 옛날 생각은 줄줄이 이어졌다. 갈수록 등이 굽어가는 엄마와 엄마보다 커진 내 모습이 이젠 적나라해져서 그럴지도 몰랐다. 나는 돼지고기와 함께 김치를 볶으며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회상 영화가 흘러가도록 두었다. 추억이라 이름 붙여도 될 기억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했다. 내 삶은 가끔 엄마 때문에 죽고 싶었고 그보단 자주 엄마 덕분에 살고 싶었다. 엄마는 내 삶을 난도질한 강탈자이자 내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주였다. 감히 내 세상의 전부였다. 그건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었다. 모든 율법이나 교리, 법칙 따위를 가뿐히 웃도는 절대적인 이치였다.


“맞다. 엄마, 콩나물도 사왔는데 넣어줄까?“


장바구니에서 꺼내는 걸 깜박한 콩나물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물었다. 돌아오는 답이 없어 거실 쪽을 돌아봤다. 엄마는 그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콩나물을 물에 담가 두고 엄마 앞으로 다가갔다. 내 세상에서 가장 컸던 사람이 너무도 작은 옹송그림으로 낡은 이불 아래 있었다. 나는 등지고 누운 몸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몇 번 더 엄마를 불렀다. 엄마. 밥은 먹고 자야지. 다했어, 일어나. 계속해서 부르는 데도 엄마는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몇 초가 더 지나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겨우 깨달았다. 엄마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참 신기하지. 가슴팍이 고르게 부풀었다 꺼지는 움직임도 없었다. 풀지 못할 절대적인 불가사의를 마주한 기준이 들었다. 묵직한 쇠방망이가 경추를 딱 때려 맞추는 충격이 등줄기를 타고 퍼졌다. 기이한 경종이 두개골 안에서 다각다각 뛰었다.

이상하다. 분명 자고 있는 게 맞는데. 엄마는 잠귀가 밝아서 새벽에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에도 깼던 사람인데.

엄마는 내가 뺨을 쓸면 다디단 휴식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잔잔하다 못해 고요한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로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엄마, 빨리 안 일어나면 내가 다 먹는다?”


나는 손을 뻗어 확인해볼까 망설이다 다시 손을 거두었다. 맙소사, 지금 무슨 의심을 하는 거야. 당연히 따듯하겠지, 따듯하고 말고. 살아있는 사람의 뺨인데 어떻게 차갑겠어?

꾹 그러쥔 주먹 탓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머릿속으로 주문처럼 되뇌는 온기와 막상 손끝에 닿을 차가움의 대조를 감당할 자신까지는 없었다. 나는 세상의 가장 오래된 침묵처럼 존재하는 엄마를 바라보기만 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구의 반대편까지 뿌리내린 나무가 되어버린 듯 그저 제자리를 지켰다.


“엄마.”


벌써 열 번째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아 엄마아!”


열 한 번, 열 두 번, 열 세 번. 눈에 뭐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자꾸만 시야가 캄캄해졌다. 발이 저리지도 않으면서 밑으로 쑥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독한 허무가 영원을 달려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머나먼 구덩이로 떨어지고 있었다.


"왜 대답을 안 해, 엄마! 내가 부르잖아, 어? 내가 엄마 부르잖아!"


난 본능처럼 알게 됐다. 시간이 약이 되어 어떻게든 내 삶을 살아갈 지라도, 길을 걷다 돼지고기 볶는 냄새만 맡으면 지금 이 순간으로 부질없이 끌려올 것이란걸.

부엌에서 한창 끓는 중인 김치찌개 소리만이 아득한 공간을 채우는 백색소음 이었다. 냄비 뚜껑이 김 때문에 달각거렸다. 귓속에서 이명이 삐이 울렸다. 곧이어 경쾌한 여자 목소리가 말을 했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밥을 잘 저어주세요.

잘려 나간 공간과 함께 멀어졌던 소음이 하나 둘 돌아왔다. 텔레비전 소리가 문득 선명해졌다. 그제야 마비되었던 다리에도 감각이 생겼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삐걱대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붉은 헤드라인이 네모난 테두리 안에서 요란하게 번쩍이며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한 예능이 한창이었던 채널은 온통 긴급뉴스로 도배되어 갔다. 곧이어 아나운서의 다소 격양된 목소리가 지구의 운명을 읊기 시작했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한 시 경, 미 항공 우주국 나사는 지름 5km이상의 소행성이 2040년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더불어 현 궤도에서 소행성 아마겟돈이 이탈할 가능성은 1퍼센트 대인 현저히 낮은 수치라고도 밝혔습니다. 시속 70000km의 속도로 근지구천체가 충돌 시 발생할 피해는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크기와 반경이며…….


밥솥이 한 번 더 말했다. 밥을 잘 저어주세요. 갈수록 떨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달리 꾸준히 밝고 평이한 음성이었다. 그것이 마치 엄마인 것처럼 나는 기계적으로 그 앞에 다가가 섰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밥솥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찬찬히 저었다. 너무 질지도 되지도 않게 지어진 밥 냄새가 고소했다. 엄마, 들었어? 지구가 멸망한대. 신기하다, 그치?

고봉으로 밥을 담고 가스불을 끈 뒤 김치찌개도 그릇에 담아 식탁을 차렸다. 나는 식탁보 위에 한 사람 분의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서 집을 나왔다. 마치 다시 돌아왔을 땐 차린 식사가 사라져 있을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

밖은 소란스러웠다. 사방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터졌다. 나는 그 사이를 정처없이 지나쳤다. 발이 닿는 모든 곳이 도떼기 시장처럼 어지럽기만 했다. 하염없이 울부짖는 사람, 돈을 흩뿌리는 사람, 골프채로 차를 부수는 사람, 카트에 닥치는 대로 식료품을 쓸어담는 사람, 굳게 믿는 종교를 구원으로 외치는 사람…….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절박했고 같은 이유로 절망했다. 나는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많고 많은 말들 중 어째서인지 14년 후면 지구가 폭발할 거라는 말이 가장 현실적으로 들렸다.

세상은 이토록 쉽고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내 세상은 그랬다. 점점 얕아졌던 엄마의 숨결처럼 느리게, 허름한 이부자리를 한번 훑는 것으로 외면하고 지나간 내 눈길처럼 확실하게.

빛 바랜 누런 벽지와 그보다 더 노란 하늘. 넓디 넓은 세상 아래 두 사람 몸뚱이만 오롯이 들어찬 사각형의 공간 안에서 이미 내 세상을 종말을 맞이했다.

모두의 세상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터였다. 지구는 이제 자정 능력을 완전히 잃었다. 곳곳에서 나의 빈티나는 악취보다 더 진득한 종말의 징후를 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운명은 이제 운에 의해 결정될 터였다. 운이 좋으면 살고 운이 나쁘면 죽었다. 엄마도 그저 이 망해가는 세상의 불운한 희생자 중 하나였다. 그녀에게 던져진 운명의 주사위가 하필이면 재수없었을 뿐이었다.

정말 그랬을 뿐이었다고. 그게 다라고. 나는 쉼없이 되뇌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의 인생을 보상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믿지 않는 신에게조차 간절하게 매달리고 싶었다.


이봐요. 왜 사람 인생을 이따위로 만들어 놔요. 이렇게 쉽게 끝낼 거면, 허무하게 보낼 거면 조금만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그랬어요. 티끌만큼이라도 좋으니 호상으로 마무리 지어주지 그랬어요. 전지전능하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녜요? 자비는 개뿔, 당신이 그러고도 신이야? 물어내, 되돌리란 말이야!


집에 돌아왔을 땐 달라진 게 없었다. 차갑게 식은 김치찌개도, 종일 지구 멸망에 대해 읊으며 깜박이는 텔레비전도, 그 앞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엄마도. 전부 내가 집을 나설 때와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차린 것이 이젠 치워야 할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퀴퀴한 냄새만 가득한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대강 발로 찬 대문은 끽끽거리는 쇳소리를 일으키며 겨우 닫혔다. 닫힌 문에 등을 기대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손끝에 담뱃갑이 걸렸다. 마침 문틈 구석에 버려진 라이터가 보여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가느다란 흰 연기가 해질녘의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나는 한참동안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담배를 태웠다. 숨통이 뻑뻑해질 때까지 빨고 또 빨았다. 그래도 술렁이는 속은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꼬나물던 담배를 뱉곤 발로 비벼 껐다.

어두워진 사위 속에서 벌건 불빛이 깜박이다 사그라들었다. 왜 이리 꺼져가는 것들은 애처롭고 부질없기만 한지. 담뱃불마저 죽자 골목은 정말 새까매졌다. 소행성 좀 떨어진다는 게 별거라고 가로등도 고장난 모양이었다. 짙은 어둠이 내 손톱 밑까지 파고들어 내려앉았다. 당장 내 눈앞의 세상만 어두운 건지, 온 세상이 그런 건지는 몰랐다.

그야말로 세계가 축하해주는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내가 묻고 싶은 건 단 한가지 뿐이었다.


이럴 거면 날 왜 낳았어, 엄마?

이런 새까만 세상만 보여줄 거면 날 대체 왜 낳았어?

엄마의 삶과 모조리 맞바꾼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어?


아마 내가 본 가장 첫번째 세상은 이리 어둑하진 않았을 텐데. 대체 언제부터 이리도 컴컴해 진 것일까. 이젠 세상이 검은 것인지 내 눈이 더러워진 것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도 전에 그를 알려줄 어른이 전부 내 곁을 떠났다. 기실 겪어본 적 없으니 제대로 된 어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빠 역시도.


“늦었네.”


아빠가 주름진 얼굴을 내비친 것은 정각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내가 태어난 날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약속 시간이 오늘인 건 알고 있었어?”


그땐 분만 대기 시간이 따분해서 운동 갔다가 늦었다더니. 아빠는 기어이 우리의 처음과 끝 어느 곳에도 함께하지 않았다. 친할머니를 쏙 닮은, 고집 센 얼굴로 아빠가 내 곁을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그를 보니 쭉 뻗은 일차선 도로처럼 오로지 한 가지 이유만 보였다.

아아, 사랑! 그 어찌나 숭고하고도 고결한지. 폐허가 된 세상에도 남는 건 아름다운 사랑뿐이었다. 그 애틋해 마지않는 사랑 덕분에 아빠는 다른 여자와 곁을 나누느라 엄마의 마지막을 놓쳤다. 

나는 보폭을 넓혀 아빠보다 먼저 현관에 섰다. 찌푸린 얼굴로 날 보는 아빠의 앞을 막고서 검문처럼 물었다.


“왜 늦었어?”

“…….”


아빠는 말없이 눈썹만 추켜올렸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 아빠 잘 시간이었지. 참 그랬겠다. 아빤 아침잠도 밤잠도 많으니까.”


아빠. 아 하고 빠. 

.

단 두 글자를 발음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고난한 일처럼 느껴졌다. 목구멍에 달군 바윗덩이가 콱 들어앉은 양 목젖이 후들거렸다. 이 단어를 담는 내 입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아빠를 마주하는 내 두 눈은 죄많은 눈이었다.

나는 죄많은 눈을 아빠에게서 거두어 거실로 들어섰다. 아무도 불을 켜지 않은 실내는 어두웠다. 치직거리는 텔레비전 불빛 앞에 고요한 무덤처럼 자리잡은 누군가의 시체만 겨우 분간됐다.

나는 죄짓는 입을 조용히 열어 아빠에게도 세상의 종말을 알렸다.


“엄마가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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