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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로 Sep 04. 2024

1. 세상의 종말(1)

문 밖에선 한창 고성이 오갔다. 핸드폰 액정을 두드려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한 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다문 채 코로 긴 숨을 내쉬었다. 출근 전 모닝커피 한 잔, 주 3일 운동, 식후 비타민 먹기처럼 일어나는 ‘루틴’같은 상황이었다. 특별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 놈의 지긋지긋한 집구석. 부모님의 말다툼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다. 이따금 이웃에게 들릴까 심장이 달군 팬 위의 콩처럼 툭툭 튀는 것만 빼면, 제법 견딜 만한 그런 지긋지긋함.


“넌 항상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단순하게 사는 줄 알아? 너 그럴 때마다 나도 확 다 버려버리고 싶어. 너 광주에다 던져 놓고 알아서 살고 싶다고.”


아빠의 목소리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유독 우렁우렁한 편이었다. 시끄러운 인파 속에서도 귀에 쑤셔 박히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러니 굳이 문에 귀를 바짝 붙여 엿듣지 않아도, 듣기 싫어 아예 귀를 틀어막아도 쇠꼬챙이처럼 날아왔다. 그렇게 내 가슴팍을 쿡쿡 헤집고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그럴 때면 난 내게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속이 아렸다. 짖을 테면 짖어라, 식으로 체념하고 앉아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져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침에 세상 무너진 것처럼 시끄럽게 나 깨우지 좀 마. 네가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나는 이런 거 할 사람이 아니야. 나도 내가 잘 하는 거 하고 싶어. 가게 키워서 프랜차이즈 관리, 마케팅, 창업주 계약, 그런 게 내가 잘 하는 거라고. 내가 너만 안 만났어도 이러곤 안 살았어.”


뭐가 그리도 억울하고 분한지 아빠의 넋두리는 한참이나 멀고 먼 길을 떠났다. 아빠에겐 참아온 세월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빠의 곁을 지킨 엄마의 세월은 늘 그 모양이었는데.

참는 법을 모르는 아빠는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숨이 가쁠 정도로 열변을 토했다. 아주 바닥을 닥닥 긁을 때까지 토하고 또 토해냈다. 해선 안 되는 말과 정말 해야 할 말이 구분되어지지 않은 채 새까만 진흙처럼 철퍽철퍽 떨어졌다. 그리고 사이. 호흡을 가다듬는 잠깐의 정적이 떨어졌다. 아빠가 숨을 씨근덕거리며 말을 멈췄다.

덕분에 제법 수십 초에 가까운 틈이 벌어졌다. 파고들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그러나 그 틈에도 아빠에게 반기를 드는 엄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대꾸해 봤자 의미 없는 논쟁만 길어질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다. 박정녀 여사께선 20년이 넘는 세월로서 뼈저리게 깨우쳐온 참이었다. 애당초 같이 대거리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터였다.

내가 겨우 ‘엄마’란 단어를 발음하기 시작한 때부터 엄마의 하루는 오로지 아빠를 위해 쓰였다. 아빠의 사업이 몇 번의 실패를 거칠수록, 내가 하늘을 향해 커갈수록 엄마의 등은 땅을 향해 곱아갔다. 어느 정도 빚을 갚고 가정이 차츰 안정기에 접어든 건 2년 전이었나. 그 즈음 아빠는 장사를 제안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엔 정말 잘 될 거야,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날 믿어봐.

그 꼬드김에 넘어가 덜컥 개업한 게 치킨집이었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대한민국에 많다는 닭 튀기는 집. 그곳에서도 늘 주방에 처박혀 있는 건 엄마였다. 빚을 내 시작한 장사이기에 인건비라도 건지기 위한 처사였다. 자정이면 엄마는 눈썹부터 발톱까지 허옇게 튀김가루칠을 한 채 현관문을 열었다. 한여름에도 163센티미터의 눈사람은 매일매일 그렇게 뒤뚱거리며 찾아왔다.

그 웃기지도 않는 꼴을 마주할 때면 언젠가 인터넷에서 심심풀이로 봤던 아빠 사주가 떠올랐다. 신 정 택. 그 세 글자가 말하길 아내 복이 있다더라. 참으로 참말이었다. 아빠는 평생 타인으로 잘 빌어먹고 등따숩게 살 팔자였다.

자연히 엄마의 체력은 꼬박 하루동안 닭뼈 치대는 일로 나날이 소진되었고,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지금처럼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탁월한 대응이었다. 그 순순한 침묵을 아빠는 수긍으로 받아들인 분위기였다. 짖는 속도에 열과 성이 더해졌다.


“나는 내가 잘 하는 거 하면서 살 거야. 내가 가게 일찍 나와서 청소하고 음식 좀 포장한다고 돈이 벌리니? 세상에 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 하면서 돈 벌디? 평생 설거지나 하면 돈이 모여? 멍청하게 당장 눈앞의 것만 보니까 내뱉는 게 항상 그 모양이지. 제발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 마. 너랑 얘기하면 너무 지쳐. 지치는 소리만 해 네가. 제발 생각 좀 하고 나한테 말하라고.”


거기까지 듣고서, 나는 참다 못해 소리쳤다.


그 설거지, 청소, 가게랑 집안일 모두 아빠가 엄마한테 다 전가하고 있잖아. 엄마가 왜 지치는 소리만 하는데. 아빠가 지치게 만드니까 그렇잖아. 가게 명의며 통장은 전부 자기 앞으로 해 놓고, 당장 물건 값도 안 내주면서 장사하라는 건 무슨 악덕이야. 근데 그거 알아? 그렇게 일하면서도 엄마가 원한 건 안 힘드냐, 미안하다, 우리 그래도 잘 이겨내 보자. 위로해주는 말 몇 마디가 전부였어. 지금껏 평생을 살면서 그 몇 마디를 안 해줬잖아. 물론 아빠가 좋아 죽는 그 여자는 좋아 죽는 말만 해줬겠지. 인생이 안 지치니까, 살기 편하니까. 아빠한테 바라는 게 꿀발라서 배배꼬는 혓바닥 말곤 없으니까. 오늘 아침에 먹은 베이컨이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을 데었다, 면세점에서 이 향수 찜해놨는데 어떠냐, 내가 선물한 옷 입으니까 당신 신수가 훤하다, 이딴 붕 뜨는 소리만 해주겠지.


아빠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퍼졌다. 제 외도 사실을 언제부터 알았냐는 충격과 내가 나설 줄 몰랐다는 놀라움이 동시에 읽혔다. 아빠가 달싹이는 입술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만 떠듬거렸으나 난 그치지 않았다.


근데 아빠. 우리는 그러기엔 삶이 너무 묵직해. 어떻게든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데 달군 쇳덩이 같아서 뜨겁고 무겁고 아프다고. 이 와중에 아빤 자기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 하며 살고 싶다고. 그럼 엄마는? 엄마는 뭐 14시간 서서 설거지하고 기름때 닦고 허연 가루 뒤집어써가며 치킨 튀기는 게 잘 하는 일이라 하는 거야? 그게 엄마 인생에 다시 없을 천직이라 십 수년을 별별 뒷바라지 다 하는 거야? 아빠 잘 하는 일 하나 해주려고? 그러면서도 자기 힘든 건 꾹 참고 아빠 귀에 다디단 말만 부어줘야 하는 사람인 거야, 엄마는? 엄마가 아빠한테 사람이 맞긴 해?


씨근덕거리며 뱉은 숨을 끝으로 상상은 막을 내렸다. 적어도, 머릿속 무대 위에서의 나는 그렇게 행동했다는 말이다. 할 말 못할 말 시원하게 탈탈 털어 날려 주고선, 뒤도 안 돌아보고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값싼 상상 속에서 만큼은 엄마에게 난 히어로가 됐다. 아빠는 못된 마왕, 엄마는 탑에 갇힌 공주, 난 그녀를 구해내 탈출하는 용맹한 기사.

하나 상상이 달콤한 이유는, 현실이 지독히 쓰기 때문일 터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란 걸 뼛속 깊이 알고 있으니까.

현실을 사는 내 모습은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겁한 소시민정도면 다행이겠지. 아빠에게 따져 물으며 쏟아내고 싶은 말이 한 바가지였지만 입술은 미동조차 없었다. 둘의 말다툼에 끼어들어서 내 감정을 소모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피곤했다. 굳이 일을 사서 벌리고 싶지 않았다. 돈도 체력도 없는데 사야할 건 참 많기만 했다. ‘귀차니즘’은 분노를 가뿐히 압도했다.

그러면서 양심은 또 찔렸다. 나설 체력은 없는 주제에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기력은 남아있었으므로. 나는 작업 중이던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풀썩 뛰어올라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곧 아빠의 노성이 잦아들고 최신가요가 그 자릴 대신해 뚱땅거렸다. 나는 눈을 감고 사랑이니 이별이니 하는 시시껄렁한 가사에 집중했다. 그러면 현실에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었다. 머리 아픈 고민들이 조각조각 찢겨 흩어지고 오로지 나만 남았다. 전쟁터인 밖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공호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구멍을 찾아 더 깊이 굴을 팠다. 곁에 찾아오는 친구가 어둠뿐일수록, 끝없이 외로워질수록. 외려 숨을 쉬고 사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숨통은 예상보다 일찍 트였다. 대학을 졸업하고선 형편이 좀 나아졌다. 기실 나아진 지는 모호했으나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집이 싫어 뛰쳐나와 살기 시작한 건 막 첫 직장을 잡았을 무렵이었다.

출퇴근 시간도 줄일 겸 일터 근처 원룸을 계약했다.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만원이라는 스펙 답게 의식주만 빠듯이 해결되는 공간이었다. 기지개를 쭉 펴면 손끝 발끝이 닿는 누런 벽, 습기가 차 눅눅한 공기, 수도꼭지가 무릎 높이에 달린 세면대와 밥그릇 한 두개로 끝나는 씽크대.

아침이면 바삐 옷을 입다 책상 다리를 걷어차기 일쑤였다. 그럼 나는 눈꼬리에 글썽이는 눈물을 매단 채 까치발로 깽깽대면서도 비실비실 웃고 말았다. 그냥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이유 없이 즐겁고, 이유 없이 즐겁다는 이유로 또 즐거웠다.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자유가 이 비좁은 방안에 뉘인 내 몸뚱이보다 더 빠듯이 가슴 속에 들어찼다. 그건 때때로 현기증이 일 만큼 행복한 감각이었다. 문고리에 걸어 둔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출입 카드를 볼 때면 더 그랬다. 

나는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어도 기죽지 않을 만한 연구소에 보조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연구소는 마치 다른 행성 같았다. 그 안의 연구원들은 요상한 언어를 구사하는 외계인이었다. 그저 식물유전학을 연구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흙냄새가 나는 오래된 건물에 불과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같은 외계인이 됐다. 여전히 지구인인 부모와는 통신이 끊겼다. 투명한 유리창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지구로 돌아갈 날은 기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록새록 실감났다.

그럴 때마다 또 입꼬리에 어쩔 수 없는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상관없었다. 지구가 아닌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이 달마다 통장에 꽂히는 월급만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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